리박스쿨 사태의 교훈은?

[인권의 바람] 극우화 낳는 경쟁교육 해소하고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법 제정해야

지난 6월부터 실체가 점점 드러난 '리박스쿨 사태'는 극우세력의 조직적 움직임과 그것을 가능케 한 공교육의 문제를 동시에 보여준다. 극우성향의 역사교육단체 리박스쿨이 방과후 강사 자격증 발급을 미끼로 댓글공작팀을 조직적으로 모집해 드러난 이번 사태를 단지 대선 여론조작에만 한정해선 안 된다.

리박스쿨은 초등학교 방과후 프로그램인 '늘봄학교'에 강사를 투입했다. 리박스쿨에서 자격 취득한 늘봄 강사 43명이 전국 57개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국민에 의해 독재정치로 판명 난 독재자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추앙하는 내용을 교육한다.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고 일제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는 등 역사 왜곡 교육을 한다. 역사를 왜곡할 뿐 아니라 소수자 혐오와 차별도 가르친다.

극우화를 낳는 경쟁교육

그런데 사실 학생들의 우익화, 극우화를 단지 리박스쿨의 조직적 개입이라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 극우사상이 공교육에 자리 잡을 수 있는 터전은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이 아닌가. 극우단체가 조직적으로 개입해 청소년에게 극우사상을 주입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물론 이들의 조직적 개입을 진상조사하고 재발 방지해야겠지만 말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선이고 성공이라고 가르치는 교육에서 학생들은 극우사상을 받아들이기 쉽다. 극우란 불평등 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적 성향이란 점에서는 우파(보수파)이기는 하지만 제도화된 민주주의조차 부정하고 권위주의를 숭상하며, 권위적 리더십과 급진적인 수단(비상계엄이나 군대)을 통해서라도 기존 질서를 자신들의 이상에 맞게 재편하려는 극단적 성향이 있다.

모든 것을 우열로 가리려 하고 그에 기반해 생존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사고, 잘나고 힘센 사람이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이 바로 극우적 사고다. 무조건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타인을 경쟁의 상대로만 바라보게 하는 경쟁교육은 극우적 사고를 내면화하게 만든다. 약자를 혐오하는 문화에서 배척될까 두려워 다수의 사람들과 같은 행동을 한다. 이러한 힘(권력)을 숭상하는 속에서 다름과 다양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경쟁교육에서는 다양한 모든 존재가 존엄하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가치, 인권과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배우기 어렵다. 실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학생들과 나누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양육자들과 교육 관료들에게서 나왔다. 경쟁교육은 참사마저 외면하라고 한다. 그나마 있던 학생인권조례마저 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성과 인권이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학교는 철저하게 위계적이다. 교사와 학생, 교육관리자(교장,교감)과 평교사, 교사와 비정규 강사, 정규직인 공무원과 비정규직 노동자 등으로 수없이 줄세워지고 차별이 온존하는 학교에서 배제와 차별을 쉽게 익히게 된다. 학생이나 교사의 인권은 보장되지 않고, 노골적으로 학교 비정규직들은 차별받는다. 생각해 보라. 기간제 교사는 교사가 아니라거나 밥하는 아줌마 등으로 급식노동자를 비하하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겠는가. 극우의 특징 중 하나인 권력(힘)에의 복종을 배우기 쉽다. 타인을 배제하는 인종주의나 성별이분법과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성차별주의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

▲보수 성향 단체 '리박스쿨'의 댓글 여론 조작 관련 보도가 나온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한 빌딩에 리박스쿨 사무실 간판이 붙어 있다. 앞서 탐사보도 매체 뉴스타파는 '리박스쿨'이라는 보수 성향 단체가 '자손군'이라는 댓글 조작팀을 만들어 대선 여론 조작에 나섰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연합뉴스

극우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극우세력의 오래된 교육 개입

물론 권력과 결탁한 리박스쿨이 댓글 조작 등 공론장을 왜곡하고 교육의 기본 가치를 왜곡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리박스쿨 손효숙 대표를 교육정책자문위원으로 위촉하는 등 이들은 윤석열 정부하에서 국민의힘과 함께 더욱 성장했다.

하지만 극우세력의 공교육 개입은 윤석열 정권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더구나 반인권적 비상계엄 사태가 발포되고 이를 지지하는 극우세력의 난동까지 벌어진 데에는 극우사상의 확산과 극우단체의 성장이 토대다. 윤석열 정권 이전부터 이들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지원금까지 받아가며 조직세를 확대하고 그 조직세와 돈으로 극우사상을 퍼뜨렸다.

그 중심에 극우 개신교가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공교육을 잠식하려 했다. 하나는 전교조를 불온화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교육정책을 비트는 것이었다. '학부모 단체'라는 이름으로 개신교 근본주의를 교육에 담으려 했다. 그 결과 성평등 교육은 삭제되고 학생인권조례는 비난의 초점이 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2013년 성폭력을 예방하겠다며 추진되고 2015년 발표된 '국가성교육표준안(성교육표준안)'에 개신교 근본주의 세력들이 적극 가담했다. '오직예수진리한국교회총연합',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극우 개신교 단체와 동성애 혐오 단체들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조심하라는 식의 가해자 서사,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강화한 성차별적 성교육 표준안이 나올 수밖에 없던 이유다.

심지어 트랜스젠더를 빼고자 성평등이란 용어 대신에 양성평등으로 용어도 바꾸었다. 지금도 리박스쿨에서 전광훈 목사의 며느리 양메리 씨가 성차별적이고 성소수자 혐오적인 교육을 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그는 학생들에게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임신중지는 죄악, 동성애 비판 등의 교육을 했다.

그러나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교체된 민주당 정권에서조차 이를 바꾸지 않았다. 2020년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표준안의 시행을 담은 '2020학교보건교육분야 정책 추진 기본계획'을 학교에 그대로 배포했다. 극우 개신교의 압력을 고려해 '성평등 계획'으로 바꾸겠다는 애초의 계획도 뒤엎고 성평등과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를 혼용했다.

이렇게 극우화된 교육정책을 시정하지 않았던 더불어민주당 정권의 정책 탓에 아직도 학교의 우익화는 심해지고 있다. 그 이유가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형교회의 표, 극우 개신교의 표를 얻으려는 정치공학적 판단이었다면 오판이다. 비상계엄 사태와 조기대선에서 드러났듯이, 정치화된 극우 개신교들의 표는 국민의힘이나 기독자유통일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국무총리로 지명된 김민석 씨가 2023년 11월 개신교계 행사에서 한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는 발언은 매우 위험하다. 신앙을 가장한 극우 논리일 뿐이다. 그는 국무총리로서의 자격이 없다.

ⓒ프레시안(최용락)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법이 필요하다

리박스쿨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더 많은 인권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법 제정을 막아온 이가 바로 극우단체다. 극우개신교집단, 학부모단체라는 이름으로 조직한 동성애혐오세력들은 '인권' 이름이 들어간 모든 법을 막아왔다. 성별,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인권이므로 당연히 인권 관련 법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음에도 그걸 이유로 인권법은 동성애를 확산시킨다며 동성애 혐오로 인권법안의 제정을 막아왔다. 2013년 이들의 민원에 못 이겨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자신들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을 철회했고, 2014년과 2018년 인권교육지원법안(2014, 2018)은 인권 교육이 동성애를 확산시킨다는 이유로 막혔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존엄하다는 것을 익히게 하는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법 등이 교육 현장의 극우화를 막기 위해 절실하다. 또한 교사들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위계화된 학교를 만드는 학교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학생들이 더 많이 질문하고 더 많이 권한을 줄 때 쉽게 힘에 복종하지 않는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다. 동료 학생과 함께 논의하며 일을 진척시키는 경험을 할 것이다.

학생이 무조건 교사의 말에 따라야 하고, 교사는 교육 관료의 말에 따르는 것이 당연한 서열화된 복종의 공간을 민주주의의 장으로 바꾸려면 교사와 학생, 비정규직 노동자 등 모두에게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학교의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는 학교를 만들려면, 리박스쿨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학생인권법을 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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