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대선 전엔 흑인이었다(I was actually black before the election.)."
2009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NBC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이어 그는 2008년 자신의 대선 승리가 확정된 투표 당일 밤,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 47%를 향해 "나에게 투표하지 않았더라도 당신들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고, 당신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 다짐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연임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퇴임 당시 지지율(59%)이 역사상 네 번째로 높은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인사는 메시지다'
취임 후 보여준 이재명 대통령의 내각 인선은 '인사는 메시지'라는 인사 고유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며 그의 통합 의지를 드러냈다. 취임 직후 관료 출신들을 차관에 임명해 국정 안정을 도모했다. 정치인 안규백 지명으로 국방부 개혁 의지를 보임과 동시에 쿠데타에 대한 국민 불안을 제거했고, 윤석열이 임명했던 관료 출신 송미령을 유임시켜 탕평은 물론 관료조직을 향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새누리당 출신 권오을 지명은 정치적 통합 뿐 아니라 지역적 화합까지 고려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김영훈 지명은 이례적이다. 교육부 장관에 전교조 위원장을 앉히는 발상만큼이나 파격적이다. 노동권에 대해서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먼저 듣겠다는 메시지다. 이와 극적으로 대비되는, 동시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업인들 발탁이다. 네이버, LG 등 첨단 디지털 분야의 리더들을 내각에 포진시켰다. 이제까지 청문회 공포, 주식 백지신탁 등의 문제로 입각 제안에 손사래 치던 기업인들의 승낙을 기어이 받아냈다.
특이한 것은 교수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수가 장·차관으로 가는 경우 현안 파악에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공무원들에게 휘둘리고, 문제해결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결국 정치인, 관료, 기업인 중심의 라인업은 이재명 정부가 중도 노선의, 통합적, 실용 정부라는 메시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내각 인선이 호평을 받는 가운데 집권당인 민주당에서는 생경한 풍경이 펼쳐진다. 의원들끼리 조용히 물밑 접촉하며 뽑아왔던 원내대표 선출에 당원들이 갈려 설전을 벌이고, 박범계 의원이 법사위원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에 강성 당원들이 "절대 안 돼"를 외친다. 화들짝 놀란 김병기 원내대표가 "내정은커녕 논의조차 안 됐다"고 해명해야 했고 전임 위원장 정청래 의원은 "여러분들의 뜻이 반영되도록 조율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약속까지 한다.
거칠 것 없는 집권당 당원들
황당한 것은 당대표 선거에 나선 정청래 지지자와 박찬대 지지자 간 싸움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싸움이 붙었는데 유혈이 낭자하다. 멀쩡한 정치인 몇 명쯤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지난 원내대표 선출부터 권리당원 투표 20%가 합산되면서 정치적 효능감을 얻은 당원들이 당내 모든 당직 선출에 개입하려 한다. 국민의힘이 영남에 휘둘려 문제라면 집권당인 민주당은 강성 당원들이 골치다.
과거 이낙연 총리에 환호하고 이재명 시장을 공격하던 사람들, 시간이 지나 이재명 지사에 열광하고 이낙연을 '원조 수박'이라 저주하던 사람들, 모두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지금 정청래를 '왕수박'이라 비난하고 있다. 당원들이 당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만 이렇듯 변덕이 죽 끓듯하는 당원들이 당 운영 뿐 아니라 국정 운영에도 뛰어들 태세다. 내가 만든 대통령이라는 명분으로.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의원들까지도 당원들에게 휘둘리기 때문이다. 문자 폭탄, 항의 전화 받지 않으려면 소신 발언은 꾹 참아야 하는데 이게 이젠 몸에 밴 듯하다. 특히 염려스러운 것은 당원들에게 잘 보이려는 이들이다. 사이다 발언을 넘어 과격한 발언, 때로는 기겁할 살벌한 발언마저 불사한다. 이러한 발언들은 보통 '이재명을 지키기 위해'라는 명분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사실은 대 당원용이다.
'이재명 지키기'의 본질
그래서인가, 민주당 의원들은 유튜브에 열심히 출연한다. 그곳이 '찐당원' 서식지이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엔 지금도 매일 3~5명의 '현역' 의원들이 아침마다 간다. 개혁신당과 민주당 전직 의원, 지역위원장 제외하고도 이 정도다. 계엄 정국 땐 더 했다. 어느 날은 그 바쁘다는 상임위원장이 세 명이나 불려 나온다. 국회의원 후원금 한도 1억5천만 원을 단숨에 채워주고, 고작 수만 명이던 자신의 유튜브 방송 구독자를 며칠이면 50만 짜리로 만들어준다. 다음 총선 밑천이다. 대부분 공천이 곧 당선인 수도권 의원들이다. 이게 과연 '이재명을 지키기 위해'서일까.
지금의 민주당은 과거의 민주당이 아니다. 당원 500만, 권리당원 150만 정당이다. 호남·다선 의원들이 밀실에서 거래하고 야합해서 나눠 먹던 정당이 아니다. <뉴스공장>, 그리고 '이재명 시장' 때부터 지지해 온 이동형의 <이동형TV>, 유튜브계의 새로운 강자 최욱의 <매불쇼>와 당원들이 당내 인사와 공천을 좌우한다. 바람직한 변화고 시대적 요구다. 그러나 온라인 민주주의, 유튜브 인기 경쟁이 초래하는 '여론의 왜곡'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민심과 멀어진다. 정치는 지지자 보고 하는 게 아니다. 정치인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내가 주장하는 게 아니고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한 말이다.
누구를 향해 정치를 하는가
이재명 정부의 목표는 '내란척결'인가? '적폐청산'의 깃발을 드높였던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됐는가. 집권 초부터 최우선 과제로 '검찰개혁'을 내걸었던 노무현 정부는 또 어떻게 되었는다. 아, 4대 악법 철폐는? 모조리 실패했다. 결국 허망하게 정권을 내줬다. 기필코 이뤄야 할 목표는 바로 정권 재창출이다. 이명박은 정권 재창출하고도 감옥에 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이재명 당대표 시절 강성 당원들의 눈치와 압박으로 일부 초재선 의원들이 성급하고 과격한 밀어붙이기에 나설 때 제동을 건 것은 정성호, 김영진 같은 중진 의원들이다. 그럼에도 강성 지지자들은 이재명과 필생의 정치적 동지인 이들을 단숨에 수박으로 만들어버렸다. 균형을 잡아줄 사람이 더 필요하다. 정무수석에 우상호 전 의원을 임명한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다. 그가 정무수석으로 이 정부와 끝까지 함께 하기를 바란다면 악담일까.
이재명, '모두의 대통령'이 될 것인가
성남시장 시절 선명성과 과격한 발언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그를 대통령으로 이끈 것은 탈이념 중도 노선과 실용적 정책 채택이다. 당연히 앞으로의 국정도 그러한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불안한 것은 이재명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강성 지지자들, 그리고 이들의 눈치를 보는 의원들이 이에 잘 조응할 것인가이다.
이재명 정부의 최우선 목표는 기필코 성공한 대통령 그리고 정권연장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다짐대로 퇴임 때 지지율이 취임 때보다 더 높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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