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낯, 마릴린 먼로는 누가 죽였는가?

[프레시안 books] <마릴린 먼로, 그리고 케네디 형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법학자이면서 현대 미국사에 정통한 인사다. 그의 삶이나 관심사도 한국의 평범한 학자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50년대 초반 생인 그는 서구의 68혁명(명칭을 뭐라고 하든)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힌다. 전쟁과 분당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독재의 그늘에 있던 당시 한국에서 그런 '세계인'은 드문 시대였다.

청년 이상돈의 외조부는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 선생이다. 가풍에 힘입어 젊은 시절부터 서구적 자유주의를 접해온 그는 법과 정치를 공부하면서도 서구의 문화와 정치, 사상에 큰 관심을 가졌다. 1970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타임지를 정기구독했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서도 당대 미국의 정치 문화에 몰입했다고 한다.

80년대 대학생들까지만 해도 혁명 이론이나 사상 투쟁이 지적 활동의 주를 이뤘었다. 90년대 학번 정도가 돼야 '당대 서구(선진) 문화'의 흐름을 동시간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고 할 수 있겠다. 현실 사회주의 몰락을 지켜본 것이나, 민주화 이후 한국의 경제 규모가 커진 것, 문화 산업의 폭발, 인터넷의 발달 등은 90년대 이후 학번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상돈은 마치 90년대 학번들이 서구 문화를 탐닉하듯, 60년대부터 '불모의 땅'에서 서구 문화를 연구해 왔다. 그런 이상돈이 <마릴린 먼로, 그리고 케네디 형제>(에디터)라는 책을 쓴 것은,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면 의아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미국 문화와 정치사를 훑어온 그의 이력에 비춰보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를린 먼로는 단순한 여배우가 아니었다. 흑백영화에서 컬러 영화로 넘어가던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 할리우드 최고의 '섹스 심벌'이었던 그의 영향력은 영화와 음악은 물론이고 문화, 정치, 사회에 큰 파장을 미쳤다. 전통적인 '모럴(도덕관념)'에 묶여 있던 미국 여성들이 '성(性)의 자유'라는 새로운 관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던 시기에 마를린 먼로는 그녀들의 거울이자, 이정표 같은 존재였다.

이상돈은 서른 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뜬 마를린 먼로를 둘러싼 의혹을 차분하게 추적한다. 그리고 먼로를 통해 당시 미국 정치와 미국 사회를 통찰한다. "나는 우리나라에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을 제대로 다룬 책이 없어서 우리 사회의 현대사 이해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왔다. 케네디와 닉슨에 대한 오해가 특히 심각해 이를 책으로 다뤄보고 싶었"다며 이 책을 쓴 취지를 설명한다.

먼로처럼 젊은 나이에 죽은 케네디 전 대통령은 우상이 되어 당대 젊은이들의 신화처럼 받아들여졌지만, 실상 케네디가 2년 10개월간 짦은 재임 기간에 벌인 정책들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적다. 그는 "쿠바 문제를 서툴게 다뤄 핵전쟁을 일으킬 뻔했고, 베트남에 경솔하게 개입해 미국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이상돈은 "케네디 형제의 이중성은 마릴린 먼로와의 관계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고 봤다.

"먼로는 당시 미국의 최고 권력자인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제 2인자인 그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 법무부장관과 연인관계였다. 그러나 케네디 형제와의 관계로 인해 먼로의 생은 중간에서 중단되고말았다. (…) 먼로의 일생은 이 세상의 영화와 그 뒤에 숨겨진 욕망과 갈등, 그리고 모순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먼로의 사망 원인은 신경안정제 과다복용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케네디 형제와의 관계가 먼로의 죽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심은 합리적이다. 이상돈은 이 책을 통해 먼로의 죽음과, 케네디 형제와의 관계, 그리고 먼로와 케네디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나란히 정렬해둔다.

먼로와 케네디, 두 상징은 미국의 60년대와 70년대의 거울과 같은 인물들이다. 이상돈의 이 책은 '미국의 정신'과 그 이면을 변방에서 목격한 한국인의 눈을 통해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리고 있다. 군수 산업체 공장에서 주급 20달러를 받는 여공 노마 진이 전쟁 선전물을 찍다 어떻게 미국 할리우드의 성착취 시스템 속으로 들어갔는지, 그 안에서 어떻게 마릴린 몬로가 되었고, 남성들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갔는지, 그리고 끝내 어떻게 희생됐는지 돌아보는 이 책은 소설같은 전개로 읽는 맛 또한 있다.

▲<마릴린 먼로, 그리고 케네디 형제> 이상돈 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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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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