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위원장, 비리 의혹 해명하라" 요구하자 돌아온 건 '해고'였다

4개월간 노조 둘러싼 소송·고발만 10건 넘어… HLS선원노조에 무슨 일이

HLS해상선원노동조합이 노조위원장의 비리 의혹을 둘러싸고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위원장의 조합비 유용 및 직원 부당 채용 의혹이 촉발되면서 노조 내에 위원장 탄핵 요구가 거세졌고, 이 과정에서 문제제기한 직원들이 모두 해고됐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나, 위원장과 대의원 간 갈등이 계속되며 노조는 대의원대회도 개최하지 못해 내부 진상조사도 진행하지 못한 상황이다.

HLS선원노조는 현대LNG해운, 현대글로비스 등의 대형 선사 승무원과 23개 중소형 선사의 선장과 승무원이 가입한 노조다. 지난 2014년 설립돼 현재 1000여 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다. 58개 선원노조가 가입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해상선원노조연맹 산하 노조다.

내부 갈등은 지난 2월 7일부터 시작됐다. 익명의 누군가가 HLS노조 조합원들에게 "더 이상 참지 못한다"는 제목의 폭로 메일을 보냈다. A 위원장이 조합비를 부당하게 쓰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직원이 채용돼 수백만 원의 조합비가 급여로 나간다는 주장이었다. 메일엔 업무상 배임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경찰 사건번호도 적혔다.

노조는 들썩였다. 나흘 후 A 위원장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집행위원, 대의원, 회계감사 등 11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부당 채용 의혹이 제기된 B 국장과 C 자문위원의 채용 절차와 근무 내용을 따져 물었다. 또 A 위원장의 개인 차량인 제네시스의 대여비가 어떻게 조합비에서 지출됐는지도 물었다.

이날 회의록을 보면, A 위원장은 질문에 충분히 해명하지 못했다. 감사와 대의원들은 '여기 모두가 제대로 본 적 없는 B 국장에게 월 600만 원의 급여가 나갔다'거나 '인사위원회를 거쳐 채용되지 않았다', '근태 기록, 직무활동비 지출 증빙 내역, 출장 내역도 없다' 등을 지적했다. A 위원장은 '2019년 대의원대회에서 급여를 줄 수 있도록 예산을 책정했다'며 '다른 직원과 계약 형태가 다르다. 근태기록은 없지만 내가 직접 업무보고를 받았다'고 답했다. 2019년 대의원대회에선 한 해 예산안은 논의했으나, B 국장의 인사는 논의하지 않았다.

회계감사는 또 C 자문위원을 두고 "법률 자문이 33만 원, 노무 자문이 22만 원이 나가는데 이분에게 자문비가 매달 200만 원이 책정돼있다"고 의아해했다. 나머지 위원들도 '어떤 자문을 맡았느냐?', '5년 동안 얼굴은 두어 번 봤다', '이뤄낸 성과로 명확히 이야기해달라'는 의견을 냈다. A 위원장은 '다른 지역에 인맥이 넓은 사람으로, 그의 도움으로 국회의원을 만났고 노조 조직 활동에도 도움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또 자신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 "내년도 연맹 선거를 앞두고 벌써 작업이 시작된 것 같다"며 음해성 의혹 제기라는 취지로도 답했다.

▲지난 2월 7일 HLS해상선원노조 조합원들이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받은 메일 갈무리. ⓒ프레시안

감사와 대의원들은 개인 차량 대여비에 대해서도 '차량유지비로 매달 90만 원 이상이 위원장 계좌로 입금되는 데 정상 절차가 맞느냐'라거나 '노조 회계 규정상 차량지원비는 주유비, 도로비가 포함되지 개인 리스(대여)비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A 위원장은 '규약규정 해석권은 위원장에게 있다'며 '노조 명의로 차량을 구매하고 운용하는 절차가 매우 복잡해, 불가피하게 개인 차량을 리스했다'고 답했다.

해명이 부족하다고 여긴 대의원들이 이 직후 '위원장 해임과 노조 정상화'를 안건으로 임시 대의원대회 소집을 요구했다. 그러나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열리지 못했다. 선원의 특성상, 예정 없이 잡히는 임시 대의원대회는 통상 온라인으로 열어야 정족수를 채울 수 있었다. 대의원 상당수가 배를 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의원들의 '온라인 소집' 요구에 소집권자인 A 위원장은 오프라인으로 소집했다. 대의원 과반이 배를 타고 있었기에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회의는 무산됐다. 이 과정이 두 번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노조 직원·전임자 4명은 해고됐다. B 국장을 제외한 직원 전원이다. 이 중 2명은 인사위원회 절차 없이 위원장 권한으로 직권 면직됐다. 나머지 2명은 하루 전에 인사위 개최 사실을 통보받고 인사위를 거친 뒤 바로 해고됐다. 공통 사유가 위원장 의혹에 대한 비판 활동이다. '위원장 탄핵을 목적으로 대의원대회 소집을 요구하는 등 위원장을 보좌해 노조 일을 원활히 수행해야 할 의무를 중대 위반했고, 노조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으며 노조 내 갈등을 조장했다'는 사유로 모두 징계 해고·해촉됐다.

A 위원장 "의혹 모두 허위… 불순한 의도의 제보"

그렇게 지난 4개월 동안 HLS노조를 둘러싼 소송·고소 건만 10건이 넘는다. A 위원장은 직원 부당 채용 의혹과 조합비 유용 의혹 관련한 배임 혐의로 고발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해고자들의 부당해고구제신청과 대의원대회 '소집권자 지명 요청'도 진행 중이다. 대의원들이 위원장이 고의로 대의원대회를 열지 않으려 한다며, 부산고용노동청에 소집권자를 달리 지명해달라고 신청해 지방노동위원회가 심리 중인 사건이다.

A 위원장과 B 국장이 해고자들을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한 사건도 5건이 있다. 또 A 위원장은 선장인 대의원 3명을 대상으로 '조합원 직무 정지' 가처분 신청도 냈다. 모두 대의원대회 소집 요구에 서명한 이들이다. A 위원장은 '선장은 선주의 대리인 격이므로 조합원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노조는 2019년경부터 중소 선사의 선장을 조합원으로 받았고, 80여 명의 선장 조합원이 가입했다. A 위원장은 지난 4월 80여 명 중 3명에게만 직무 정지 가처분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A 위원장이 대응한 사건 변호사·노무사 수임료 일부가 조합비로 지출돼 내부에서 또 논란이 불거졌다. <프레시안>이 확인한 계약서는 4건으로, 총 1870만 원가량이다. 조합비에서 지출됐으나, 내부 집행위원회 결의는 거치지 않았다.

취재 결과, A 위원장의 차량 대여비는 2023년 8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는 매달 95만 원씩, 그 이후부턴 120만 원씩 조합비에서 개인 계좌로 송금됐다. 또 <프레시안>이 확인한 일계표와 예산안에 따르면, B 국장은 2019년 10월부터 2024년까지 3억8350만 원가량을 급여로 받았다. C 자문위원은 2019~2024년 사이 1억1350만 원가량을 받았다.

A 위원장은 관련 의혹에 대해 지난 3일 "B 국장, C 자문위원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예산 확보 및 승인 절차를 거쳐 채용된 인원이며, 근로계약에 따라 정상적으로 근무했거나 현재 근무 중"이라며 서면으로 주장했다. 차량 대여비에 대해서도 "정당한 절차와 기준에 따랐고, 관련 증거 또한 명백하다"며 "(의혹) 제기하는 내용 자체가 허위사실에 기반했다"고 밝혔다.

A 위원장은 또 해고자들의 부당해고 주장과 선장 조합원 3명의 직무 정지 소송에 대해 "정확히 관련 법률에 따른 사안으로 현재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이며, 조합의 주장이 합당히 받아들여질 것이라 기대한다"며 "법원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부당행위, 부당해고 등의 주장을 하는 건 성급하며, 관련 법률과 재판 진행 상황을 충분히 확인한 후 판단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A 위원장은 "노조에 대해 제보한 인물들은 현재 본 조합이 고소 및 민사상 법적 대응을 진행 중인 당사자들"이라며 "제보 내용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허위 주장이며, 불순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재 쌍방의 형사고소 사건이 다수 진행 중이므로 수사 결과를 지켜봐 주길 바란다"고 답했다.

▲자료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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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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