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 장병을 향한 연설에서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정부의 이민 단속에 항의해 벌어지는 시위를 "외적 침략"이라며 거짓 선동했다. 정부가 LA에 군을 투입해 과잉 대응하자 뉴욕에서 텍사스주에 이르기까지 연대 시위에 불이 붙었다.
<워싱턴포스트>(WP), <로이터> 통신 등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10일(이하 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육군 기지 포트 브래그에서 육군 장병들을 향해 연설하며 LA에 군을 투입한 자신의 결정을 옹호하고 LA가 "무정부 상태"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국내 시위를 "외적 침략"으로 거짓 규정하고 "우리는 연방 요원이 공격 당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 도시가 외적에 의해 침략되고 정복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우린 로스앤젤레스를 해방해 다시 자유롭고 깨끗하고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LA 시위대가 "외국 국기를 든 폭도"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6일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이민자 대량 단속을 위해 의류회사 등 직장을 급습하며 촉발된 이번 시위에서 참여자들은 이민자와 연대를 표현하며 이들의 뿌리를 상징하는 멕시코 국기를 흔들었다.
이날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취재진에 오는 14일 자신의 생일에 워싱턴DC에서 열릴 미 육군 창설 250주년 기념 행사 때 시위가 있을 경우 "매우 강력한 무력"으로 진압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시위 참여자들을 "이 나라를 증오하는 사람들"이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진보 단체들은 이날 미 전역 1500곳 이상에서 트럼프 정부에 항의하는 "왕의 날 반대(No Kings Day)" 행사를 열 예정이라고 예고한 상태다.
미 전역서 연대 시위 "ICE, 사실상 이민자 납치 중"
트럼프 대통령이 LA 시위에 예비군 격인 주방위군 4100명, 현역 해병대 700명 등 군 4800명을 투입하며 과잉 대응해 시위대를 오히려 자극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미 전역에선 LA 연대 시위가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AP> 통신, 각 지역 언론 등을 보면 일리노이주 시카고, 뉴욕주 뉴욕,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콜로라도주 덴버 등 미 전역 20곳 이상 도시에서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10일 시카고에서 수천 명이 모여 트럼프 정부의 이민 단속 및 LA에 대한 군 배치에 항의했다. 이들은 도심을 행진하며 "더 이상 추방은 없다", "트럼프는 물러나야 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에 참여한 게리 스나이더먼은 "로스앤젤레스의 군사화 상황에서 이젠 밖으로 나와 트럼프가 이것이 용납되지 않음을 알게 할 때"라고 촉구했다. 셰릴 토머스는 유색인종에 대한 "불의"가 자행돼 시위에 참여했다며 이들이 "사실상 납치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9일 뉴욕 맨해튼에서도 수백 명이 "이민국은 뉴욕에서 나가라"는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시위에 참여한 멕시코 이민자 가정 출신 안드레아 몬티엘은 이민자 신분이라 시위에 나서지 못한 가족과 친구들을 대신해 행진에 참여했다며 "이민국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보이고 변화를 만들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했다. 그는 LA와 뉴욕 모두 히스패닉 인구가 많다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라고 말했다.
연일 수천 명 규모 연대 시위가 열렸던 샌프란시스코에선 전날까지 240명 이상이 체포됐음에도 10일 여전히 200명가량이 이민 법원 앞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같은 날 덴버 주정부 사무소 앞에서도 수천 명이 모여 이민 단속에 반대하고 LA 시위에 연대를 표명했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선 연방 구금 센터 인근에 150명가량이 모여 행진했다. 워싱턴주 시애틀에서도 시내 이민 법원 앞에서 30명가량이 모여 LA 시위에 연대를 표명하고 "이민국을 폐지하라"고 외쳤다.
전날에도 텍사스주 오스틴, 댈러스 등에서 수백 명 규모 시위가 열렸다. 16살 고등학생이 지난주 이민국에 구금된 코네티컷주에서도 하트포드에 위치한 주정부 사무소 앞에 100명가량이 모여 "잔혹한 이민국 단속"을 비판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권위주의 정권은 가장 약한 사람들 첫 목표 삼지만 거기서 안 멈춰"
시위 5일째인 10일 캐런 배스 LA 시장은 도심 약 2.6제곱킬로미터(1제곱마일) 면적에 대한 야간(오후 8시~오전 6시)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그간 수천 명이 평화롭게 집회를 벌였지만 일부가 도로 점거를 시도했고 도심 건물에 낙서 및 유리창 파손이 일어나며 이러한 조치가 취해졌다. LA에선 이날 약 200명, 전날 114명 등 10일까지 370명가량의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됐다.
배스 시장은 다만 통금 지역이 한정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파괴와 폭력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통금이 적용되는) 1제곱마일 면적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 도시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인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시위와 폭력에 대한 일부 이미지는 이것이 도시 전체의 위기인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10일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방송 연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LA에 군을 파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공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캘리포니아가 첫 번째일진 몰라도 분명히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고 "그 다음엔 다른 주, 그 다음엔 민주주의"가 목표물이 될 거라며 "민주주의가 우리 눈앞에서 공격 받고 있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순간이 도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섬 주지사는 "권위주의 정권은 가장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을 목표로 삼는 것으로 시작한다"며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트럼프와 그의 충성파들은 분열을 통해 번영한다. 이를 통해 더 많은 통제력과 권력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뉴섬 주지사는 시민들이 LA 시민들이 "헌법에 보장된 표현 및 집회의 자유를 행사"했고 "몇몇 예외를 제외하곤 캘리포니아주, LA 경찰이 성공적으로 치안을 유지"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주지사 권한을 우회해 주방위군을 파견함으로써 "악순환"이 시작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고의"로 이를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가 LA에 배치한 주방위군은 이민자 단속에도 투입됐다. <뉴욕타임스>는 트리샤 맥라플린 미 국토안보부 대변인이 10일 주방위군이 이민국 작전에 동행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민국이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한 LA 이민자 단속 작전 사진에도 주방위군의 모습이 담겨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법원에 주방위군과 해병대가 이민자 단속 등 법집행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10일 오후 1시까지 긴급 차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 CBS 방송에 따르면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12일 관련 심리를 진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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