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레알 화장품, 백화점이 팔면 정규직, 면세점이 팔면 비정규직?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김소연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위원장

2025년 봄, 글로벌 화장품 기업 로레알의 한국 면세점 유통 부문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부산 서면 롯데면세점에서 발생한 로레알TR의 매장 철수 및 직원 강제 전근 문제는 단순한 점포 폐점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불안과 생활권 침해, 여성 노동자의 생존권 위협을 넘어,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글로벌 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역 공동체의 지속가능성 문제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로레알 화장품의 면세점 판매를 전담하는 하청업체 '하이코스'를 상대로 고용안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 김소연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을 만나 현장 상황과 노조의 대응, 그리고 이 사안이 갖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 김소연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면세점 간접고용의 민낯…"로레알 화장품을 팔지만 로레알 직원은 아니다"

윤효원 : 조합원들이 일하는 회사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소연 : 우리 조합원은 하이코스라는 회사에 고용되어 전국의 면세점에서 해외 유명 브랜드인 로레알 화장품을 파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고급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은 한국에 두 개 회사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로레알 코리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로레알 TR입니다. 로레알 코리아는 백화점에서 로레알 화장품을 팔고, 로레알 TR은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팝니다.

백화점을 전담하는 로레알 코리아는 백화점에서 로레알 화장품을 판매하는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면세점을 전담하는 로레알TR은 면세점에서 로레알 화장품 판매하는 노동자를 하청업체인 하이코스를 통해 간접 고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고용구조로 면세점에서 로레알 화장품을 판매하는 우리 조합원들은 로레알TR이 아닌 하청회사 하이코스와 고용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백화점은 정규직, 면세점은 하청 비정규직?

윤효원 : 로레알 브랜드의 같은 화장품을 파는데 백화점에서 팔면 직접고용 정규직이고, 면세점에서 팔면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되는 구조네요?

김소연 : 맞습니다. 얼마 전까지 자동차 공장에서 오른쪽 바퀴를 조립하면 정규직이고 왼쪽 바퀴를 조립하면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있었잖아요. 그런 셈입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하이코스가 아닌 로레알 유니폼을 입고, 로레알 교육을 받고, 로레알 상품을 팔지만, 로레알은 우리에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입니다. 노동자들이 만든 이윤은 하청회사 하이코스를 거쳐 원청 로레알로 가는데, 고용안정을 비롯한 노동자에 대한 책임에서 로레알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진 상태입니다.

'Travel Retail'의 그림자…TR은 무엇인가

윤효원 : 하이코스에 면세점 판매 도급을 준 원청회사가 로레알 TR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TR은 무슨 뜻인가요?

김소연 : 면세점 업계에서 TR은 'Travel Retail'의 줄임말로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소매 유통 사업을 말합니다. 즉 공항 면세점, 항만 면세점, 시내 면세점 등에서 외국인 관광객이나 해외 출국자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면세유통업을 지칭합니다. 2024년부터 로레알TR의 한국 내 단독 에이전시로 하이코스가 활동 중이에요.

▲ '하이코스' 홈페이지 갈무리. 하이코스는 기업 소개란에 "(유)하이코스는 1993년에 설립된 기업으로서 세계적으로 높은 품질과 가치를 지닌 명품 브랜드를 공식 수입 유통합니다.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에게는 자부심, 품위, 만족을 드립니다"라고 써놨다.

노조 배제된 일방적 매장 철수와 전근 통보

윤효원 : 현재 노사 간에 고용안정 문제를 두고 갈등이 발생했다는데, 간단히 설명해 주시죠.

김소연 : 지난 4월 초였습니다. 우리 조합원을 고용한 회사인 하이코스가 갑자기 부산 서면 롯데면세점에서 로레알 TR의 화장품 판매를 철수하겠다고 통보해왔어요. 부산 서면 롯데면세점에는 샤넬도 있고, 에스티로더도 있는데, 이들 해외 유명 브랜드는 그대로 운영 중입니다. 그런데 유독 로레알TR만 철수한다는 건 납득할 수 없죠.

게다가 철수는 일방적인 결정으로 노조와는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이뤄졌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인력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노사 협의도 없이 갑자기 '희망퇴직자 받는다', '수도권으로 발령 낸다'고 통보하더군요.

여성 노동자의 현실…"생활권 포기하라는 발령, 너무 가혹하다"

윤효원 : 구체적으로 어떤 발령 조치가 이뤄졌나요?

김소연 : 서면 매장에는 원래 25명이 근무했는데, 4월 갑작스럽게 희망퇴직을 받으면서 8명이 떠났고, 현재 17명이 남았습니다. 그 중 5명에게만 김해공항 면세점으로 발령을 냈고, 나머지 12명에게는 수도권 발령장을 개별적으로 보냈어요.

더 실망스러운 건, 육아휴직 중인 조합원에게도 일방적으로 발령장을 보냈다는 겁니다. 육아휴직자는 당장 출근할 수도 없고, 복직 후 일정 기간은 원직 복귀가 원칙인데, 회사는 그런 절차를 무시했어요. 수도권으로 발령이 나면 부산에 있는 아이와 떨어져야 하고, 한부모 가정인 경우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생활권을 포기하라는 건 너무 가혹한 결정입니다.

김해공항 매장의 인력난과 '합리적 대안'

윤효원 : 인력을 추가로 배치할 여지가 김해공항 매장에는 없나요?

김소연 : 그게 가장 모순적인 부분입니다. 김해공항에는 로레알 TR 매장이 7개 있습니다. 원래 29명이 근무하던 곳인데, 4월 명예퇴직으로 빠진 사람도 있고, 육아휴직자도 있어요. 실제 25명 정도가 일하고 있고, 매장당 3~4명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노조가 보기에 이들 매장은 대부분 인력난을 겪고 있습니다.

공항의 특성상 근무시간이 새벽 6시 반부터 밤 9시 반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각 매장에 6~7명은 있어야 조 편성이 제대로 됩니다. 스케줄을 짜려면 휴무, 반차, 병가까지 고려해야 하잖아요. 노조가 보기에는 부산 인력을 김해로 배치하면 매장 운영도 원활해지면서 매출도 올라가고, 고용 문제도 해결되는 ‘두 마리 토끼’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회사는 딱 5명만 김해로 보내고, 나머지는 '서울이나 인천공항 매장으로 가라'는 식입니다.

재무정보 비공개와 국제기준 위반…"김해가 적자라면 자료로 증명하라"

윤효원 : 인력이 부족한 김해공항 매장으로의 전근이라는 노조 제안이 합당해 보이는데, 이에 대한 사측의 입장은 무엇인가요.

김소연 : 김해공항 매장들은 인건비가 수익보다 많아서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 3년 동안의 매출을 파악할 수 있는 재무제표를 공개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회사 기밀이다", "로레알TR과의 계약상 비밀이다"라고 하면서 아무 정보도 주지 않아요.

만약 김해공항 매장이 적자고 어렵다면 노조도 다른 방안을 찾아볼 용의가 있어요. 하지만, 로레알TR과 하이코스는 흑자를 보는데, 노동자만 고통을 전담하라는 건 부당하잖아요. 그러니 우선 김해공장 매장이 적자인지 흑자인지를 확인해야 노사가 대화로 합당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이란 게 있어요. 이 국제지침은 원청은 물론 하청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습니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이 맨 앞에 내세우는 다국적기업의 의무가 재무제표를 비롯한 회사 정보의 공개입니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 다국적기업인 로레알TR의 국내 면세점 판매를 전담하는 하이코스의 재무정보 공개 거부는 국제기준에 역행하는 것으로 노사 간 대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6월 4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하이코스 본사 앞에서 결의 대회를 열고 고용안정 책임을 촉구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로레알의 말과 행동 사이의 괴리…ESG와 인권정책?

윤효원 : 요즘 우리나라에서 기업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유행입니다. 로레알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국적기업은 자체적으로 ESG 정책이 있어 공급망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해결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김소연 : 맞아요. '로레알(L’Oréa) 종업원 인권정책(Loreal Employee Human Rights Policy 2020)'이란 게 있어요. 유엔과 국제노동기구(ILO)가 채택한 국제인권기준들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어요. 국제기구는 다국적기업이 인권정책을 자사의 공급망 전체, 즉 원청은 물론 하청에도 적용하라는 게 기본 입장이구요.

또한 로레알은 하청업체와 '상호윤리서약서(Mutual Ethical Commitment Letter)'를 체결하고 있어요. 이에 따르면, 로레알은 자사의 인권정책을 공급업체가 따를 것과 이를 점검하기 위해 '합당한 실사(reasonable due diligence)'를 실행해야 합니다.

고용안정은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인권입니다. ESG는 이해관계자를 배려하는 정책으로 알고 있어요. 하청업체 노동자도 이해관계자 범주에 들어간다는 점을 하이코스의 원청인 로레알 TR은 명심해야 해요.

앞서 설명한대로 백화점에서 로레알 화장품을 파는 노동자들은 로레알 코리아가 직접 고용하고 있어요. 그런데 같은 로레알 화장품을 면세점에서 파는 노동자들은 하이코스라는 하청업체를 통해 로레알 TR이 간접 고용하고 있어요. 이런 게 노동시장 이중구조 아닌가요?

하는 일이 같고, 업무 강도도 같은데 단지 법인이 다르다는 이유로 임금, 복지, 승진기회 모두 차이가 크고, 이번에는 고용안정 문제까지 생겼어요. 이런 차별적 구조를 유지하면서 ESG를 말하는 건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본사 인력기준과 한국의 비정규직 현실

윤효원 : 프랑스 다국적기업인 로레알의 해외 사정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처럼 하청업체 비정규직을 많이 쓰나요?

김소연 : 우리 노조 정책실에서 로레알 본사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유럽과 북미 등에서는 정규직 비율이 96%~97%에 달해요. 남미는 99%를 넘고요. 그런데 한국과 중국 등이 속한 북아시아에서 정규직 비율은 40%가 안 돼요. 60%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어요. 2023년 기준으로 로레알의 전 세계 종업원 9만명 가운데, 1만6천명이 비정규직이에요. 그 비정규직의 80%가 한국을 비롯한 북아시아에 몰려 있어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비정규직은 영어로 temporary contract인데, '임시계약직' 정도로 이해되요. 이들이 직접고용(원청)을 말하는지 간접고용(하청)을 말하는지는 회사가 정보를 공개해야 제대로 알 수 있어요.

▲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6월 4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하이코스 본사 앞에서 결의 대회를 열고 고용안정 책임을 촉구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노조의 3단계 대응안…전환배치, 이주 지원, 위로금

윤효원 : 노조는 향후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요?

김소연 : 노조는 3가지 대응법을 갖고 있습니다. 최선의 방책은 부산 서면 롯데면세점 인원 전부를 김해공항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정말로 김해공항 매장이 적자라면, 하이코스가 지난 3년 동안의 재무제표를 공개해서 노조를 설득하면 됩니다.

다음 방안은 진짜로 김해공항 매장이 적자라서 회사 계획대로 조합원을 부산에서 수도권으로 이주시킬 경우 우리 노조(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에서 마련한 단체교섭 요구안에 나오는 지원조치를 사측이 제공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수도권으로 이주가 불가능한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 이 역시 우리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안에 나오는 수준에서 위로금을 보상하는 것입니다. 우리 노조는 이 3가지 방안을 노사가 진지하게 교섭할 것을 원합니다.

청년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싸움"

윤효원 : 마지막으로 이번 로레알TR 하청업체인 하이코스의 고용안정 투쟁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김소연 : 우리 노조 조합원의 96.7%가 여성이고, 평균연령은 34.4세입니다. ‘2030 조합원’이 75%를 차지합니다. 이들에 대한 보호는 출산과 육아를 통한 사회적 재생산과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런 점에서 부산 서면 롯데면세점 근무자 12명의 고용안정 문제는 단순히 개별 기업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 재생산의 문제이자 지속가능한 한국 사회를 결정짓는 문제이며, 따라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이런 사정이 <프레시안>에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6월 4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하이코스 본사 앞에서 결의 대회를 열고 고용안정 책임을 촉구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면세점 비정규직 여성들의 싸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묻다"

부산 서면 롯데면세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로레알TR 하청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사태는 단지 한 매장의 철수나 전근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백화점에서는 정규직으로, 면세점에서는 하청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만드는 로레알의 이중적 고용구조는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서 어떤 노동윤리를 실천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같은 로레알 화장품을 판매하면서도, 누구는 본사 정규직이고 누구는 하청 비정규직이라는 현실. 게다가 김해공항 면세점의 인력 부족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발령을 고수하는 회사의 태도는 여성 청년노동자의 생활권과 재생산권을 무시한 폭력에 가깝다. 이 문제는 노동권 침해를 넘어, 부산 지역사회의 재생산 기반과 청년 인구 유출이라는 구조적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로레알은 유엔과 ILO의 인권 기준을 반영한 자체 인권정책과 하청업체 대상 윤리서약서를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그 말과 괴리되어 있다. 정규직 비율이 유럽·북미에서는 95%를 넘지만, 한국이 속한 북아시아에서는 40%가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은 다국적기업이 국가별로 노동정책을 차별적으로 운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금 이 싸움은 단순한 고용안정을 넘어, 지역과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싸움이다. 젊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출산·육아·노동을 병행하며 지역사회의 생활 기반을 지키는 일이 가능하려면, 기업의 책임과 사회적 연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도 사람이다"라는 말조차 증명해야 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물음에, 이제는 사회가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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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의원실 보좌관, 국제화학에너지광산노련(ICEM)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IndustriALL 글로벌노조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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