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배터리 폭발사고로 23명의 사망자와 8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최악의 이주노동자 집단 산재사망 사건인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주기가 다가온다.
2024년 6월 24일 10시 30분. 경기 화성 전곡산업단지에 소재한 ㈜아리셀이라는 회사에서 리튬배터리가 폭발했다. 작은 연기와 함께 시작된 화재가 엄청나게 쌓여있던 리튬배터리들의 연쇄폭발로 이어졌다. 노동자들의 소화 시도에도 불구하고, 사고 시작 42초 만에 걷잡을 수 없는 화염과 검은 연기에 의해 희생자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23명의 희생자는 17명이 중국, 1명이 라오스, 5명이 한국 국적을 가진 이들이었고, 대다수가 여성이었다. 불법파견으로 고용된 다수의 이주노동자는 제대로 된 안전보건교육 한 번 받지 못했고, 화재 속에서 어디로 피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솟아오르는 불길을 피하다 출입문 반대편 구석에서 고립된 채 희생됐다.

참사의 주 원인…위험의 이주화, 엉망인 안전보건관리 체계
아리셀 참사의 배경에는 수많은 문제가 난맥처럼 얽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공단에 만연한 불법적인 고용구조의 문제다. 여기에는 이주노동자를 쓰다 버리는 존재로 만드는 이주노동자 정책도 얽혀 있다.
공단의 많은 사업장이 그러하듯 아리셀도 불법적인 인력공급구조를 이용해 노동자를 고용했다. 23명의 희생자 중 많은 이가 도급을 가장해 불법파견으로 고용된 중국 국적 재외동포비자 소지 여성이었다. 최저임금에 출퇴근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고용도 불안정한 일자리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아리셀은 고용과 해고를 수시로 반복하기 위해, 일용직 고용이 가능한 동포 노동자에게 일을 시켰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에 따른 위험부담은 없었다. 한국 정부는 고용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질 낮은 일자리에 동포 노동자를 활용할 수 있도록 비자정책을 교묘히 바꿔왔다. 동포 노동자는 미등록 상태가 아니어서,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있어서 오히려 일용직, 불법파견 같은 열악한 고용구조에 더 많이 노출된다. 매일 아침 봉고차에 실려 와서 그날 할당된 물량 앞에 도착해, 바로 일을 시작하는 일용직 노동자에게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두 번째 구조적 원인은 일상적 안전보건관리 부재다. 참사가 발생한 아리셀공장에서는 2021년 11월부터 참사 전까지 4건의 리튬배터리 폭발사고가 있었다. 심지어 참사 이틀 전에도 비슷한 폭발사고가 있었다. 작지만 계속되는 전조현상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고에 대해 회사는 원인을 찾지도, 예방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또한 참사 발생 석 달 전 화성소방서는 2급 위험시설인 아리셀 공장을 조사한 결과, 참사 발생 현장 3동 건물을 ‘다수 인명피해 발생 우려지역’으로 지목하고 ‘제품 생산라인의 급격한 연소로 인한 인명피해 우려’를 경고했다. 아리셀은 이런 경고를 모두 무시했고 결국 참사가 벌어졌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사업장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정부도 참사에 일조했다. 아리셀은 산업안전공단의 위험성평가 인정심사를 통해 2021년부터 우수사업장으로 지정돼 산재보험료를 감면받고 있었다. 위험성평가는 윤석열 정부가 2022년 11월 30일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핵심내용이다. 회사는 형식적 셀프평가를 통해 안전하다는 서류를 내고, 정부는 이를 심사해서 우수사업장으로 선정한 것이다. 자본은 이윤을 위한 탐욕으로 가득 차 노동자 안전은 안중에 없었고, 정부는 이를 방조하고 묵인해 참사를 키웠다.
중대재해법 혐의로 최초 구속기소된 아리셀 대표이사
아리셀 참사는 중대재해 참사이자 사회적 참사다. 이전에도 무수한 사회적 참사가 있었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시작으로 우리사회는 사회적 참사를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해 왔다.
아리셀 참사 당일부터 생명·안전의제를 다루는 단체들과 민주노총을 비롯한 많은 노동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이 참사 현장과 희생자가 안치된 장례식장을 찾아다니며 참사 원인을 밝히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후 100여 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를 출범했고,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참사 초기, 아무런 정보도 제공받지 못하던 희생자 유족들도 다른 유족들과 만나며 아리셀 산재 피해가족 협의회를 구성하고 대책위와 공동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재발방지대책 마련, 피해자들의 권리보장을 위해 함께 싸워왔다.
지난 1년 동안 투쟁의 과정은 지난했다. 피해가족들과 대책위는 참사가 일어난 화성시청에 거점을 마련하고, 7월 1일부터 9월 말까지 매일 저녁 화성시청 분향소 앞에서 시민추모제를 진행했다. 또한 7월 22일부터 9월 말까지 가족 직접행동을 통해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고 책임이 있는 아리셀이 운영하는 공장, 아리셀의 모회사인 에스코넥 본사와 안산사업소, 경기·서울고용노동지청, 국방부, 삼성 등을 찾아가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성실한 교섭을 요구했다. 역대급 폭염 속에서도 땡볕에 몇 시간씩 길 위에서 투쟁하고, 저녁에는 시민추모제를 통해 매일 희생자를 추모하고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중대재해의 최고 책임자인 최고 경영자를 구속 수사하게 만드는 소중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박순관 에스코넥 대표이사와 그의 아들인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이 구속된 이후에도 사건 해결과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투쟁의 파고를 높이기 위해 가족협의회는 10월 10일부터 에스코넥 본사로 거점을 옮기고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아리셀의 모회사를 겨냥한 투쟁을 본격화한 것이었다.
아리셀 참사의 최고 책임자인 박순관 대표이사는 에스코넥의 경영자다. 에스코넥은 아리셀의 지분 96%를 소유하고 있었다. 에스코넥은 아리셀에 자금을 투자하고 대여금을 지급하면서 운영비를 마련해줬고, 출자와 대여뿐 아니라 지급보증까지 섰다. 아리셀이라는 기업명도 2017년 에스코넥의 한 부서에서 만들기 시작한 1차 리튬배터리 제품명 ‘아리셀’에서 따온 것이었다. 2020년 아리셀이 설립된 이후에도 에스코넥은 ‘아리셀’은 자신들의 제품이라고 홍보했다. 해당 제품은 국방부로도 납품됐는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군납 비리가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비리가 처음 시작된 곳도 에스코넥이었다.
그렇기에 피해가족은 에스코넥의 책임을 묻기 위해 에스코넥 본사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며 겨울을 맞았다. 하지만 수차례에 걸친 교섭 공문 발송에도 에스코넥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참사가 해결될 때까지 장례를 미뤄왔던 가족들도 더는 희생자들을 냉동고에 둘 수 없었기에 11월 3일, 모든 희생자의 장례를 마쳤다.
투쟁이 기약 없이 길어지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가족협의회와 대책위는 12월 24일, 아리셀 제품을 납품받던 삼성전자 본사 앞 추모제를 마지막으로 농성투쟁에서 법률투쟁으로 투쟁방식을 전환했고, 여전히 법률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아리셀중대재해참사 투쟁은 여러 가지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집단적인 이주노동자 중대재해 사망사건에서 한국 국적이 아닌 피해가족들이 협의회를 만들고 공동 대응을 한 것은 최초였다.
또한 이 투쟁은 사회적 연대의 힘으로 가능했다. 100여 개가 넘는 노동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아 아리셀 참사를 사회화하고 투쟁을 위한 재정을 만들어 냈다. 참사에 대한 지자체의 책임을 물어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5개월이 넘는 숙식 지원도 이끌어 냈다. 참사 발생 55일째인 2024년 8월 17일에는 전국에서 55대의 희망버스가 참사현장을 찾았다. 희망버스에 참석한 2000여 명의 시민은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결의를 함께 다졌다. 이후 지금까지도 연대는 계속되고 있다.

아리셀 참사는 해결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아리셀 참사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되고 있을까. 진정한 사과 한 번 없이 제대로 된 배보상안도 마련하지 않고 개별합의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회사, 지난 2월 에스코넥의 경영을 책임지겠다며 보석을 신청한 박순관 대표와 이를 허락한 재판부, 사업장 안전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고용노동부, 시료 바꿔치기 등 군납 비리를 저지른 아리셀-에스코넥을 묵인했거나 적어도 적발하지 못한 국방부, 공급망 관리에 실패한 삼성 등 누구 하나 참사의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대화하자는 이조차 없었다.
지난 2월 24일 고용노동부가 아리셀중대재해참사 후속조치로 실시한 ‘불법파견 감독과 인사노무 종합컨설팅’ 결과는 더 참혹하다. 전국 산업단지 영세제조업체 229개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190개 사업장에서 948건의 법 위반이 적발됐다. 조사대상의 83%가 법 위반을 저질렀다. 불법파견 사업장만 38%에 달했다. 그런데 그 결과서에 ‘불법을 일벌백계하고 개선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직접채용 여력이 없으니 파견고용을 합법적으로 하게 해달라’는 기업 입장만 담겼다. 아리셀 참사 후속조치 결과가 파견고용 확대라는 노동부 발표에 할 말을 잃었다.
일터에서의 죽음 역시 되풀이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계속된 죽음에도 최고경영자 허영인 회장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받지 않은 SPC에서 지난 5월 19일 여성노동자가 또 죽었다.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에도 누구 하나 처벌받지 않은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소에서 지난 2일 하청노동자가 또 죽었다. 이 죽음을 얼마나 더 두고 봐야 하는가.
아리셀 참사 1주기가 다가온다. 한국사회의 온갖 구조적 모순과 비리가 합쳐져서 빚어낸 끔찍한 비극의 희생자인 고인들을 다시 기억하자. 뭉뚱그려진 23명의 노동자가 아니라 온전한 하나의 우주로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하며 추모하자.
아리셀 참사 1주기를 맞아 대책위와 가족협의회는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고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러 사업을 진행한다. 6월 19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는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가?’라는 제목의 국회 토론회가 예정돼 있다. 이어 6월 21일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우리의 결의를 다지는 추모대회가 열린다. 참사의 최고 책임자인 박순관 대표이사와 박중언 본부장의 피의자 심문이 예정된 6월 23일에는 이들의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탄원서 서명을 시작한다. 그리고 참사 1주기인 6월 24일, 참사 현장인 아리셀 공장에서 피해자 가족들과 희생자를 위로하는 추모제가 준비되어 있다. 아리셀 참사와 같은 비극이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기를 소망하는 분들의 참석을 요청드린다.
한 가지 이야기가 남아 있다. 참사 이후, 사건조사 과정에서 참사 현장에 있던 또 다른 출입구의 존재가 드러났다. 사고 과정에서 대피할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이주노동자, 일용직노동자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 문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희생자들은 살 수 있었을까. 아니다. 그 문은 정규직이나 연구원이 가진 카드키나 미리 등록된 지문으로만 열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 사회와 자본이 가진 민낯이다. 차별과 배제, 그것으로 누군가는 이윤과 권력을 갖게 되고, 누군가는 소외당한 채 고통받고 죽어간다. 차별 없고 평등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투쟁을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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