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꼭 6개월 만에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거머쥔 강력한 권력으로 정권이 교체됐다. 국정 실패로 지난해 총선에서 압도적인 국회 의석을 더불어민주당에 내준 윤 전 대통령이 여소야대 정국을 일거에 무력화하려고 벌인 친위 쿠데타에 대한 정치적 심판이다.
6.3 대선 개표 결과 이재명 대통령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얻은 51.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49.4%를 득표했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는 민주당 계열 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여대야소 환경에서 출범을 맞았다. 민주당이 171석을 점한 압도적인 여대야소는 2028년 총선까지 3년간 지속된다.
그러나 대선 민심은 '과반 대통령'이란 통치 기반의 상징성까지 부여하지는 않았다. 60~70%에 달한 계엄 반대와 탄핵 찬성 여론에 비추어 이 대통령이 염원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의힘을 낭떠러지로 몰아넣은 내란과 탄핵 정국 속에도 김문수 후보가 41.2%를 얻어 보수 진영의 만만치 않은 결집력을 과시했다. 김문수, 이준석 후보를 지지한 나머지 절반에 가까운 표심은 사실상 이 대통령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감이 반영된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통합과 봉합 사이, 고난도 균형점 찾기
이처럼 새 정부에 안정적인 통치 기반을 부여하면서도 일방적 독주를 견제하는 민심이 동시에 드러난 양면성이 이재명 정부의 출발선을 규정한다. 이재명 정부의 역량도 내란 극복과 국민 통합을 순조롭게 병행 추진할 수 있느냐로 드러날 전망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첫 번째 사명"이라고 강조한 내란 극복과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무게를 실은 국민 통합은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일도양단하기 어려운 난제다. 무분별한 통합 행보는 정체성 논란을, 내란 척결이 과하면 정치보복이란 반발을 부를 수 있다.
대선 기간 동안 이 대통령은 정치보복 우려에 선을 그으며 "점령군과 같은 반(半)통령이 아니라 대선 승부가 끝나는 순간 똑같은 국민으로서 역량을 한데 모으겠다"고 통합 대통령을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은 "통합과 봉합은 다르다"며 내란 세력에 대한 발본색원도 강조했다. 특히 "내란 종식을 위해 책임·동조자를 다 찾아내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실제 책임 있는 자들이 아직 정부 각료, 주요 국가기관에 많이 숨어 있다. 확실히 처벌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을 향한 메시지도 엇갈렸다. 이 대통령은 "파란색에 의지해 대통령이 됐을지라도, 빨간색 좋아하는 사람을 배제하지 않겠다"며 포용을 시사하는 한편, "보수 정당인 척 참칭하는 극우 이익집단", "내란을 비호하는 내란 정당"이라고도 했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내란세력 척결을 거칠게 이끌어갈 경우,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진영 정치에 몰두했던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한다.
입법과 행정 권력을 쥔 이재명 정부로선 사법부와의 관계도 신중하게 풀어가야 할 처지다.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후 사법부를 향한 압박 수위를 끌어올려 역풍을 초래한 바 있다.
이 대통령도 지난 14일 "내란수괴뿐만 아니라 지금도 숨어서 끊임없이 내란 획책하고 실행하는 2·3차 내란을 일으키려는 자들을 다 찾아내 법정에 세워야 한다"면서 "그 법정은 깨끗해야 하지 않겠나"고 사법부에 앙금을 드러내기도 했다. 내란 척결을 지렛대 삼아 사법부를 개혁 대상으로 명시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사법부 손보기라는 반발이 거세지자 사법 개혁을 장기 과제로 미루고 한발 물러섰지만, 조희대 대법원장 특검, 판검사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형법개정안, 대법관 30명 증원, 재판소원제 도입 관련 법안 등이 여전히 살아있다.
이 대통령의 사법리스크 방탄용이란 의심을 사는 이 법안들을 여권이 밀어붙일 경우, 여야 관계 경색은 물론 국민통합 과제가 새정부 초반에 좌초할 가능성이 있다.
검찰도 수술대에 오를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해 수사권을 넘기고 검찰은 공소 유지만 담당하는 공소청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공약집에 실었다.
검찰의 권한 남용을 제도적으로 막겠다는 취지이지만, 민주당이 추진한 '검수완박'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로 이어진 바 있어 정교한 설계가 뒷받침되지 못한 검찰 개혁은 혼란과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다.
비상등 켜진 민생 경제, 트럼프발 통상·안보 압박 난제
이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마주할 경제 상황도 여의치 않다. 내수 침체의 골이 깊은 데다 그동안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출까지 내림세에 접어들면서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8%로 대폭 낮춰 잡았다. 국내외 주요기관들도 앞다퉈 올해 0%대 성장을 전망했다.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은 내수 활성에 초점을 둔 비상경제 대응 TF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겠다고 예고했다. 경기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 확장 정책이 뒤따를 전망이다.
국민의힘도 30조 원 규모의 추경을 공약한 바 있어 추가재정 투입에 관한 여야 공감대는 형성됐다. 다만 이 대통령이 "나중에 노벨평화상을 받을 정책"이라며 의지를 보이는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에 대해선 국민의힘의 반발이 예상된다.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투입은 불가피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세수 기반을 무너뜨린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 기조를 되돌리지 않고는 재정건전성 악화라는 반대급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이 대통령은 부자 감세 철회 요구에 "지금은 경제 상황이 너무 어려워 유보해야 할 것 같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재원 마련 대책이 없는 감세와 확장 재정은 지속가능성에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을 불문하고 대대적인 관세 전쟁에 착수한 시기에 12.3 비상계엄 이후 6개월 동안 제대로된 대응을 못한 부담도 이재명 정부가 떠앉게 됐다.
한미 양국이 지난 4월 상호관세 유예기간이 끝나는 7월 8일까지 '패키지 딜'을 완료하기로 했지만, 이제 막 출범한 새 정부가 남은 기간 내에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산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50%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해 이재명 정부의 부담을 가중시켜놨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은 이재명 정부의 안보 정책에도 난향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을 더 많이 요구할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을 헤쳐나가야 하는 벅찬 과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최근 "동맹국은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면서 국방비 증액 기준을 GDP 5%로 제시했다. 국방 예산을 두 배로 늘려야 하는 부담이 따르는 미국발 안보 청구서에 이재명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4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갖고 정상외교를 가동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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