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6.3 대선에서 참패에 가까운 결과를 받아들었다. 이번 대선은 그 구도 자체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일으킨 12.3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인해 불과 3년 만에 치러진 조기 대선이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이기는 하나, 승패를 떠나 내용적으로 되짚어 봐도 김 후보와 국민의힘은 졸전을 거듭한 끝에 한 번도 반전의 계기를 만들지 못했다. 이른바 '무난한 패배'로 흘러간 대선이었던 셈이다.
'비상계엄 대선'인데…尹과의 단호한 절연은 없었다
이번 선거전에서 국민의힘의 가장 큰 약점은 김 후보라는 '극단의 정치인' 자체였다. 김 후보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 강경 지지층으로부터 가장 선호받는 후보였으나, 그의 이같은 특징은 본선 국면에서는 오히려 득표의 확장성을 제약하는 요소가 됐다. 특히 이번 대선의 원인이 된 비상계엄 선포 사태와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김 후보의 태도가 핵심 요소였다.
김 후보가 일약 대선주자로 떠오른 계기부터가 다분히 상징적이었다. 재선 경기도지사를 역임한 후 야인으로 지내다 윤 전 대통령에 의해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 발탁되고 이후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지낸 김 후보는, 비상계엄 뒤 열린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국무위원 중 유일하게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를 거부해 '꼿꼿문수'라는 별명을 얻으며 당내 강경 지지층의 아이돌로 떠올랐다.
지난 4월 9일 출마를 선언하며 본격적으로 선거전에 뛰어오른 뒤로도 김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끝내 버리지 않았다. 당 경선 중 계엄령을 옹호하는 '계몽령'이라는 표현을 "상당히 센스 있는 말"이라 평한 장면이 대표적이었다. 그럼에도 '탄핵 찬성 대 탄핵 반대' 구도로 치러진 국민의힘 경선에서 당원들의 선택은 김 후보였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 첫날인 지난달 12일, 김 후보는 "계엄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께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한 차례 사과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후로도 그는 "계엄은 내란과 다르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 출당론에 대해서도 "도리가 아니다"라며 거리를 뒀다.
막판까지도 김 후보는 윤 전 대통령과의 단호한 절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지난 1일 윤 전 대통령이 김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발표했을 때 김 후보의 반응은 "이미 탈당했다. 제가 논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수준에 그쳤다. 비상계엄을 수 차례 옹호한 윤상현 의원이 지난달 28일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됐을 때도 김 후보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윤 전 대통령과 선을 긋기 위한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 등의 노력도 이같은 김 후보의 언행 앞에 빛이 바랬다.
메시지는 '보수층 선호' 위주…부정선거 음모론까지
김 후보가 당 경선 토론 중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목사"라고 평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의 과거 돈독했던 관계에서 비롯된 '부정선거 음모론자 아니냐'는 질문도 선거전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주장 자체의 허황함과는 별개로 부정선거 음모론이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내세운 빌미 중 하나였기 때문에도 이는 이번 대선의 본질적 구도와 연관된 또 하나의 중요 질문이었다.
그 앞에 선 김 후보는 자신에 대한 의심을 불식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의혹 제기에 선거관리위원회가 제대로 답해야 한다'는 애매한 입장만을 취하며 음모론자들을 사실상 옹호했다. 윤 전 대통령의 부정선거 영화 관람에 대해서도 "영화도 많이 보시고 사람도 많이 만나시는 게 좋은 것 아니냐"며 두둔했다. 사전투표 중 투표소 부실관리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절차가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을 때는 결과를 승복하기 어렵다"며 '대선 불복'을 시사하는 발언까지 했다.
정책·메시지 또한 과감한 중도 확장보다는 '집토끼'인 강경 보수층의 선호 내에만 주로 머물렀다. 지역공약을 제외하면, 유세 중 김 후보가 즐겨 한 주장은 기업인을 감옥에 가두지 않고 노조를 억제하는 '친기업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겨냥해 "사람 하나 죽으면 다 잡아넣는다"는 강성 발언까지 했다. 공약집에 담은 군 가산점제 부활, 핵 잠재력 강화 등도 보수층의 선호에 맞춘 정책이었다.
TV토론과 유세에서 김 후보의 주 무기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향한 네거티브 공세였다. 사법리스크 비판과 '이 후보가 집권하면 총통 독재 국가가 된다'는 주장이 유세 내내 이어졌다. 상대 진영에 대해 '양아치', '촉새' 등 거친 말도 퍼부었다. 이 역시 지지층 결집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중도 확장 면에서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운 메시지 전략이었다.
'빅텐트' 만들 정치력도 없었다
열세 구도를 완화하기 위한 정치 협상 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당 경선 과정에서부터 '반이재명 빅텐트'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텐트 문을 열자 그 안으로 들어온 이는 정치적 영향력이 거의 없는 옛 민주당 출신 비명계 인사 소수에 그쳤다. 당내 단속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한동훈 공동선거대책위원장마저 계엄과 탄핵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김 후보 곁에 서기를 꺼렸다.
'빅텐트'를 만들려다 국민의힘과 김 후보 모두 상처만 입고 끝난 일도 있었다. 당 경선 과정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후보 등록 전 단일화를 공언했던 김 후보는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쌍권(권영세-권성동) 지도부가 강압적으로 단일화를 밀어붙이고 있다'며 등록 후 단일화로 입장을 선회한 뒤 등록 전 단일화를 거부한 한 전 총리와 줄다리기에 들어갔다.
이에 쌍권 지도부는 김 후보의 후보 자격을 취소하고, 새벽 시간 후보 등록을 받아 한 전 총리를 당 대선후보로 결정하는 초유의 무리수를 뒀다. 후보 교체 시도는 당원들이 한 전 총리 후보안을 부결시키며 무위로 돌아갔지만, 국민의힘은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하기도 전부터 비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게 됐고 김 후보도 '한 전 총리와 단일화를 주장하다 말을 바꿨다'는 비판이 일면서 내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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