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감축설에 대해 한국 정부와 주한미군사령부 측은 부인하는 입장을 보였으나, 미 국방부 측은 감축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29일(이하 현지시간) 미 <AP> 통신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대화인 '샹그릴라 대화'에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과 함께 참석한 국방부 고위 당국자 2명이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주한미군 규모를 결정하는 것에 따라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29일 <연합뉴스>는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가 싱가포르로 향하는 기내에서 "중국에 대한 억제력이 우리의 우선순위"라며 "한국 정부와 동맹을 현대화하고, 지역 내 안보 환경의 현실을 반영해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태세를 조정(calibrate)하기 위해 한국 정부와 협력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 미 국방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연이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사실상 감축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주한미군 감축설은 지난 22일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해당 사안에 정통한 미 국방부 관계자들을 인용, 트럼프 정부가 주한미군 4500명을 괌을 포함한 인도-태평양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보도 이후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 논의된 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23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 간 논의된 사항은 전혀 없다"며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근간으로, 지난 70여 년간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며 한반도 및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 왔다"고 밝혔다.
또 27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구소(ICAS) 주최 온라인 세미나에서 "미 합참의장은 나에게 (주한미군 감축 보도에 대해) 전화도 하지 않았고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며 감축설을 부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브런슨 사령관이 주한미군 감축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감축에 대한 구상 자체는 실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5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미국 육군협회(AUSA) 태평양지상군(LANPAC)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로 나선 브런슨 사령관은 "주한미군은 북한 격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부로서 이 지역에서의 작전, 활동, 투자에도 집중하고 있다"며 '기동군'으로서의 주한미군 성격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에서 '태세'는 순환 배치와 합동 훈련을 통해 즉각 대응이 가능한 연합 전투 전력을 의미한다"며 "제가 하루 동안 왕이 된다면, 저는 한반도에 미 기동 부대를 다시 배치할 것이다. 훈련하기에 이 지역만큼 더 좋은 지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해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군 기동 부대를 한국에 주둔시키고 싶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주한미군 병력 철수 문제는 주한미군 역할 조정 문제와 연관돼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이후 약 2만 8500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미군의 영향력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고 전했다.
신문은 헤그세스 장관과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 차관 등이 주한미군 성격의 변화를 주장해왔으나 현장 지휘관들은 병력 감축에 반대하고 있다면서, 브런슨 사령관이 의회 증언에서 "군 병력 감축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고 4월 10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는 새뮤얼 파파로 인도-태평양사령관 역시 한국에서의 병력 감축이 "본질적으로 우리가 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주한미군 감축설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견제를 위해 어떻게 미군을 재편할 것인지와 관련한 전략 속에서 나오고 있는 만큼, 병력 감축이 아닌 유지를 위해서는 '주한미군의 한반도 외 지역 투입'을 골자로 하는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최대한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런데 주한미군의 규모를 유지한 채 미국이 원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최대치로 인정할 경우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이 투입될 수 있고, 이럴 경우 한국까지 전장에 끌려들어갈 수 있어 한반도 정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주한미군의 병력 감축이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약화시킨다는 한 가지 측면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한미군 감축이 방위비 분담금과 연계된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주한미군이 '기동군'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한국을 기지처럼 활용하는 것이라면,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어 진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