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이 위태로운 외줄타기와 같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안전은 무엇인가? 안전장비를 착용한다? 추락에 대비해 안전망을 설치한다? 줄 자체를 아예 2미터(m) 너비로 넓히는 건 왜 생각을 안 할까. 줄이 넓으면 된다. 복지를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정책제언 포럼'에서 복지를 안전망이나 사회정책이라는 좁은 관점이 아니라 통합적 사회체제로서 재설계하자는 제언이 나왔다. 이번 대선 후보들의 주요 공약에서 복지 공약은 가장 뒷순위로 밀려나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는 우려도 나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전국금속노동조합,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민주노동연구원, 한국사회경제학회, 참여연대, <프레시안>, 조국혁신당 차규근·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실 등에서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의 발제를 맡은 한동우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안전망이나 재분배 정책으로 사회복지를 설계하는 기존 관점을 비판했다.
한 교수는 "안전망은 위험 자체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 떨어졌을 때 죽지 않게 하는 것으로, 다시 또 올라가서 똑같은 위험한 줄을 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서 "'복지는 재분배'라는 관점의 논문도 수천 편이 있으나 이는 자가당착적 개념이다. 왜 복지는 분배를 얘기하지 않는가"라 물었다.
한 교수는 "엄청난 임금 격차, 성별 격차, 자산 격차 등 불평등 문제가 있으나 마치 이건 경제 영역이지 복지 영역이 아닌 듯 다룬다"며 "실제로 한국은 지난 10년간 공공지출이 급격히 상승했음에도 소득분위별 소득 점유율 불평등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목표는 복지이고, 재분배는 그 수단일 뿐"이라며 "재분배를 통한 위험 대응, 불평등 개선은 복지국가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지금 사회는 경제와 사회의 경계, 생산과 재생산 영역의 경계가 모호하고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했다"며 돌봄·교육·가사노동 등 재생산 영역으로 국한해 복지제도를 설계하는 관점의 한계도 지적했다.
그는 "복지 그 자체가 목적"이라며 "지금은 복지와 복지 이외의 것을 분리하는 관점에서 벗어날 때"라며 통합적 사회체제로서의 복지를 강조했다. 즉 "사회 내의 모든 제도는 복지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통합돼야 한다"며 "재분배뿐 아니라 임금분배 불평등을 개선하고, 보편 사회서비스를 확대하고, 공유재로서의 돌봄을 확충하며, 국가재정을 확보하고 효율화하는 방안과 대의민주제도를 개선하는 방안 등을 모두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먼저 복지에 때려 맞아 보고 싶은 실정"
복지제도 확충과 경제성장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이견이 나왔다. 한 교수는 "연구논문을 봐도 복지지출이 경제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그 반대다, 별로 연관이 없다 등의 다양한 결론의 견해가 존재한다"며 "경제성장과 복지 간에는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역대 5개 정부는 모두 복지를 경제성장의 수단으로만 다뤄왔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문제의식엔 동의하나, 이미 복지제도가 충분한 유럽의 경우는 '복지를 늘리자' 논의를 벗어났고 통합체제로서의 복지를 말할 수 있다"며 "그러나 한국은 통합체제를 얘기하기에 복지의 수준이 낮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차라리 한국은 시민들이 복지(공급)에 한 번이라도 때려 맞고 싶은 실정, 복지에 치여보고 싶은 실정"이라면서 "복지 지출 확대는 가계 소득을 늘려 소비를 증진하고 국가 직접 고용을 창출해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내수 부문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기업 지원만 성장 정책이라는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소득주도성장(론)'만 해도, 투자를 강화하면 성장할 것 같고 소비를 강화하면 그렇지 않을 거라 보는 것도 주류경제학 프레임에 갇힌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고부가가치 사회라 할 때 부가가치엔 임금과 이윤이 모두 포함된다. 고용창출, 임금창출도 성장 동력"이라며 "이를테면, 지금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어서 연극을 보지 못하고 연극배우도 하루 한 번 상연한다면, 배우가 연극을 하루 두 번하고, 사람들이 두 번의 연극을 모두 보는 게 부가가치가 두 배가 되는 방법이다. 비물질적 자원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 밝혔다.
불평등·격차 언급 실종된 대선… "고용·소비도 가치 창출"
정 교수는 "양극화는 극심하고 복지제도의 수준도 낮은데, 지금 복지문제가 전혀 화두가 되지 않는다"며 "복지를 더 확충해야 한다는 걸 인식시키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라고도 했다. 이번 대선 정국에서 주요 후보자들의 공약에 복지 논의가 "거의 실종했다시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10대 공약과 관련해 "경제성장을 다룬 1번 공약에서 AI 등 신산업을 육성한다는 말은 있으나, 복지 공약이 있는 9번엔 관련한 얘기가 하나도 없다"며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을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 때 이를 이행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홍석환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양극화, 저출생, 고령화, 미-중 관세전쟁 등으로 현재 한국은 복합위기 상황에 있다"며 "IMF 이후 외형적인 극복은 이뤘으나 내부는 곪고 썩었다. 과거 방식으로 위기 극복이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나아가 "반드시 경제는 높은 성장을 해야 하는가?"라며 "저성장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방향은 없느냐"고도 물었다.
홍 정책국장은 "GDP 지표, 고속 성장이 아니라, 느리지만 탄탄하고 삶의 질도 향상하는 사회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며 "보편적 기본서비스를 통해 사회임금을 상승시키고, 관료가 아닌 지역사회 내 거버넌스가 지역사회의 보편서비스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며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공동체가 강화되는 방식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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