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차라리 윤석열을 '선대위 상왕'으로 옹립하라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 12일 "계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께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들은 일제히 "계엄 첫 사과" 등의 제목을 달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그것은 사과가 아니었다. 진정한 사과란 고통의 실체를 직시하고, 책임의 주체를 밝히며, 뉘우침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김 후보 발언에는 사과라는 단어의 껍데기만 있을 뿐 알맹이는 비어 있었다. "국민의 고통"을 말했으나 그 고통이 어떻게 시작됐고 누가 초래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고통을 가한 자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으려 조심했다. 내란 사태에서 보인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한 뉘우침도 없었다. 고개는 숙였지만 눈빛은 오만했고, 말은 부드러웠지만 속에는 독을 품고 있었다. 그 발언은 단지 대선의 표를 의식한 '입술 봉사'에 지나지 않았다.

"계엄에 대해 사과하라" "윤석열 대통령과 절연하라." 김문수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언론, 야당, 시민사회 등에서 일제히 쏟아져나온 주문이다. 하지만 이런 요구는 공허하고 순진하다. 현실성도 없거니와 온당치도 않다.

김문수 후보의 오늘을 있게 한 두 단어는 '내란'과 '윤석열'이다. 그는 애초 대선 후보 명단에도 끼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가 일약 '신데렐라'로 떠오른 것은, 국회에서 국무위원들 중 유일하게 계엄에 대한 사과를 거부한 게 계기였다. 그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패배한 뒤 정치 낭인으로 떠돌며 태극기 집회에나 가끔 얼굴을 내밀던 '아스팔트 극우 노인'이었다. 그런 그를 경사노위 위원장, 고용노동부 장관을 거쳐 대선후보 반열에 올려준 사람이 바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이 '늙은 남자 신데렐라'가 신고 있는 유리구두는 내란과 반탄의 파편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유리구두를 벗으라니, 그것은 그의 존재를 부정하라는 요구다. 정치적 탄압을 넘어 양심의 자유를 꺾는 일이다.

<조선일보>는 '국힘 30대 당 대표자, 환골탈태 시작되려면'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 과감하게 단절하고 후보·지도부·의원 전원이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사설은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됐다.

우선, 조선일보는 이런 주장을 펼칠 자격이 없다. 조선일보는 탄핵의 함성이 불타오를 때 고개를 돌렸고, 내란 세력을 비판할 힘을 아껴서 야당에 화력을 집중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임박하자 "국가 원수 탄핵 재판은 정치적 재판이다. 실정법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훈계했다. 국민 앞에 사죄하고 내란 세력과 절연해야 할 쪽은 바로 조선일보다.

국민의힘에게 '환골탈태'하라는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실현 불가능한 주문이다. 환골탈태(換骨奪胎)란 뼈를 바꾸고 태를 벗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뼛속 깊숙이 반민주의 DNA가 각인돼 있다. 애초 탄생의 모태가 독재와 쿠데타였다. 그 뼈대와 태반은 내란 사태를 거치며 더욱 튼튼하고 단단해졌다. 그들에게 뼈를 바꾸고 태를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독수리에게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하는 말과 같다.

국민의힘이 내란 사태에서 보인 행적을 떠올려보라. "헌법재판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모두 때려부수자"는 말이 공공연히 나왔고, 헌재를 무너뜨려야 할 '악'으로 규정해 행동으로 옮겼다. 헌재를 성서의 '여리고성'에 빗대 "헌재 담장을 따라 걸으면 어둠의 세력들이 반드시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탄핵에 찬성한 김상욱 의원에게는 모욕과 집단 린치, 따돌림이 이어졌고, 그는 끝내 탈당했다. 김상욱 의원을 향해 "혼자 정의로운 척한다"고 조롱하던 이들이 이제 와서 '함께 정의로운 척하자'는 것인가. 불가하다.

'아스팔트 극우 부대' 동원할 석동현 시민사회특별위원장

김문수 후보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계엄 사과 시늉을 한 지 하루만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아름다운 동행'을 선언했다. "출당은 생각해본 적 없다", "탈당은 본인의 뜻"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윤석열과 절연하라'는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올바른 선택이다.

김 후보는 1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 친구이자 내란 사태에서 대변인 역할을 해온 석동현 변호사를 선거대책위 시민사회특별위원장에 임명했다. 윤 전 대통령과는 '절연'이 아니라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사이임을 만천하에 과시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 후보의 사과 발언이 나온 뒤 윤 전 대통령이 김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노발대발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석 변호사 인사는 '계엄 사과'를 입에 올린 불경죄에 대한 사죄이자, 윤 전 대통령을 향한 변함없는 충성의 확약이다

김 후보에게 '시민사회'는 태극기 부대, 아스팔트 극우를 의미한다. 시민사회특별위원장은 '아스팔트 애국시민들'을 특별 대우해 대선에 적극 활용하는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국민의힘이 제도권 정당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석 변호사도 한 극우 유튜브 방송에 나와 "국민의힘 조직력만으로는 어림없다. 아스팔트에서 애쓰는 애국시민들을 흡수하는 별도의 조직을 만드는 것에 김 후보가 동의했다"고 말했다.

내란 세력을 아우르는 김 후보의 시선은 현재에만 머물지 않는다. 중앙선거대책위 상임고문에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주도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구세대 내란범'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을 임명했다. 국민의힘은 거센 비판의 역풍이 일자 발표 5시간 만에 임명을 취소해 '내란 신-구 세대 통합사령부'는 안타깝게 무산됐다.

김문수 후보는 여기에서 머물면 안 된다. 윤 전 대통령을 '선거대책위 상왕'으로 옹립해야 한다. 내란의 얼굴이 내란 후보 선거 운동을 지휘하는 것, 이보다 더 효율적 선거 운동은 없다. 후보 교체 쿠데타 후유증으로 갈등이 심각한 당내 상황을 일거에 정리할 능력의 소유자도 윤 전 대통령밖에 없다. 마침 그는 내란 사건 공판 출석 때마다 포토라인에 서게 됐다. 언론의 시선이 집중되는 그 순간, 대중 앞에서 김문수 후보 지원 선거 운동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전광훈 목사도 함께 '선대위 공동 상왕'으로 모셔오자. 2019년 검찰이 전 목사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김 후보는 눈물을 흘리면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 끈끈한 우정을 정치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전 목사 쪽도 "광화문 세력과 국민의힘이 합당 수준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이에 화답해야 한다.

김문수 후보는 그 자신이 '아스팔트 극우'의 일원으로 맹활약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의 신봉자이기도 하다. 윤석열-전광훈-김문수, 이 삼각 연대는 극우 성향, 반공주의, 보수 기독교 기반, 음모론 신봉 등 모든 면에서 환상의 드림팀이다.

김문수 후보의 등장으로 이번 대선의 구도는 선명해졌다. 헌정 수호 대 내란 수호, 내란 후유증 극복 대 내란 정권 복귀, 민주주의 재건 대 독재의 일상화. 그 한쪽 편의 선봉장이 김문수 후보다. 국민의힘 대선 슬로건은 "정정당당 김문수"다. 구호에 걸맞게 신념을 꺽지 말고 내란 정권 수복의 기치를 높이 들고 정정당당하게 행진하기 바란다.

어차피 국민의힘은 쇄신할 수 없는 정당이다. 환골탈태는 신기루다. 그보다는 차라리 소멸이 현실적이다. 생을 마감하고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태어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쇄신이다. 이 위대한 작업에 김문수 후보가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15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협의회 조찬 강연'에 참석해 박용주 자랑스런 중소기업인협의회 회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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