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성소수자 혐오 단체의 요청을 이유로 2017년부터 참여해온 서울퀴어문화축제를 가지 않겠다고 결정하자 인권단체의 규탄이 쏟아졌다.
국가인권위원회바로잡기공동행동, 무지개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30일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년 만에 퀴어문화축제 불참을 결정한 안창호 인권위원장에게 "더 이상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박한희 무지개행동 공동대표는 "인권위는 국가기관이 성소수자와 함께 연대하고 인권을 지지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내는 유일한 기관이었다. 그러나 (기독교단체) '거룩한 방파제'가 안창호 위원장에게 참여 요청을 보내고 이것이 언론에 보도되자 양쪽 모두 불참하겠다고 한다"며 "명백하게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거룩한 이들'에게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퀴어문화축제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해 참으로 모욕스러웠다"고 질타했다.
박 대표는 "거룩한 방파제의 행사가 무엇이냐.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동성애는 음란하다, 트랜스젠더가 여성안전을 위협한다'는 혐오 선동을 하며 차별금지법 반대를 외치는 자리"라며 "중립을 운운하는 인권위 입장은 그 자체로 혐오를 정당화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20여 년간 인권위가 해 온 역사를 짓밟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내란 사태에 입을 닫고 내란수괴를 옹호해 '내란옹호위원회' 오명을 쓴 인권위는 이제 반동성애, 차별조장위원회로 몰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일을 초래한 안창호, 그리고 내란을 옹호하고 차별에 눈감은 인권위원들은 즉각 사퇴하라"고 했다.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도 "안창호 위원장은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과 인권과 평등을 위해 스스로 용기 내 권리를 요구하는 성소수자 운동을 동일하게 위치시켜 수많은 시민들을 모욕했다"며 "결국 우리 사회의 인권수 준이 향상이 아닌 퇴보시키는 것이고, 인권위원장 스스로 인권위의 설립 목적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안창호는 위원장이랍시고 중립을 운운하며 지난 30여 년 동안 목숨을 위해 싸우고 있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합리적 근거 없이 반대하며 우리 사회 평등을 유예시켜온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먼저"라며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대에서 차별에 대해 눈감고 평등을 유예시키는 정치는 점점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도 인권위의 불참 결정을 비판했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명백히 금지하는 법적 근거"라며 "안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위배되는 행위, 인권위원장으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인권위의 공식 참여가 무산되자 내부 직원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앨라이(연대) 모임'을 만들어 자발적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에 함께하겠다고 나섰다"며 "이들의 용기, 이들의 연대는 오늘날 인권위의 진짜 얼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차별과 혐오를 두고 중립을 말하는 것은 결국 혐오의 편에 서는 것이다. 길을 잃지 않는 사람들, 연대의 손을 내미는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인권위는 2017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및 차별 예방 홍보를 위한 부스를 운영해왔다. 홍보 부스에서는 축제 참여 인증 사진 촬영, 인권 타투 부착 이벤트 등을 열었으며 축제 당일 인권위 건물에 성소수자들을 향한 연대의 의미로 무지개 깃발을 내걸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8일 인권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퀴어축제조직위원회와 거룩한방파제 통합국민대회가 같은 날 개최 예정인 각각의 행사에 부스 운영 등 지원을 요청했다"며 "입장이 다른 양측의 행사 중 어느 한쪽의 행사만 참여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봐 양측 모두의 행사에 불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권위 결정과 별개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내부 직원들은 '인권위원회 앨라이 모임' 이름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부스를 차릴 예정이다. 이들은 '퀴어문화축제에 인권위 이름이 빠지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며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히고 모금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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