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선거 격변…'트럼프 반대' 자유당, 총선 승리

트럼프 닮은 보수당 공약·구호에 중도층 자유당 쏠림…NYT "트럼프 따라하기, 타국선 독"

28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진 캐나다 총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 인해 선거 판도가 격변하며 집권 자유당이 승리했다. 올 초 낙승을 점쳤던 우파 보수당은 트럼프 '닮은 꼴'에 대한 반감 탓에 거꾸러졌다.

캐나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9일 오전 5시7분 기준 개표가 99.15% 완료된 가운데 이번 선거에서 중도 좌파 자유당이 하원 343석 중 168석을 확보할 것으로 집계돼 1위를 차지했다. 보수당은 144석 확보에 그칠 것으로 집계됐다. 퀘벡 지역에 기반을 둔 퀘벡블록당(BQ)이 23석, 진보 성향 신민주당(NDP)은 7석을 확보할 것으로 집계됐다.

자유당 소속 마크 카니(60) 캐나다 총리는 승리가 확정된 뒤 연설을 통해 "미국은 우리 땅, 우리 자원, 우리 물, 우리나라를 원한다"며 "이는 헛된 위협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릴 무너뜨려 미국이 우릴 소유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이는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우린 우리의 세상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수백만 명의 우리 국민이 다른 결과를 선호한다는 걸 알고 있다"며 "과거의 분열과 분노를 끝내자. 우린 모두 캐나다인이고 내 정부는 모두를 위해, 모두와 함께 일할 것"이라며 통합을 강조했다.

이번 캐나다 총선은 내부 요인보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에 크게 좌우됐다. 자유당의 쥐스탱 트뤼도 전 총리가 지난 1월 퇴임 의사를 밝힐 때까지만 해도 자유당 지지율은 보수당에 크게 뒤져, 보수당의 정권 탈환이 기정사실화 돼 있었다.

캐나다 CBC 방송이 취합한 여론조사 평균을 보면 보수당 지지율은 이미 2022년 중반부터 자유당을 추월했고 격차를 점점 벌려 트럼프 대통령 취임일인 1월20일엔 보수당 지지율(44.8%)이 자유당(21.9%)의 두 배에 달했다.

그러나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우방이자 최대 교역 상대국 중 하나인 캐나다에 25% 관세 부과, 유예, 일부 면제 등을 반복해 경제적 괴로움을 안기고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겠다는 발언을 반복하며 자존심마저 크게 자극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 선거 당일에도 소셜미디어(SNS)인 '트루스소셜'의 본인 계정을 통해 "오래 전 인위적으로 그어진 선은 더 이상 없다"며 "캐나다가 미국의 소중한 51번째 주"가 되어야 한다고 도발했다. 그는 게시글에서 "힘, 지혜를 갖추고 세금을 반으로 깎을 사람을 뽑아 달라"며 후보 유세를 연상하게 하는 언급을 하며 조롱을 더했다.

포퓰리스트로 평가되는 보수당을 이끈 피에르 포일리에브르(45) 대표는 선거 기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 닮은 꼴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포일리에브르 대표의 보수 쪽에서 진보적 의제를 비꼬는 의미로 사용되는 "웍(woke·깨어 있음)"에 대한 공격 및 외국 원조를 삭감하려는 시도 등이 유권자들에 트럼프 대통령을 너무 많이 떠올리게 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포일리에브르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할 때조차 미국에 맞서 "캐나다 우선(Canada first)"을 추진하겠다고 내세웠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America first)' 구호와 유사하다.

보수당 지지율은 3월 말 자유당에 역전됐고 카니 총리는 곧바로 승부수를 던져 조기 총선을 선언했다. 선거 3일 전 CBC 여론조사 평균에서 자유당 지지율은 42.3%, 보수당은 38.6%로 자유당이 근소한 우세를 유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선거는 트럼프식 보수 정치가 다른 지역의 보수주의자들이 그의 이념적, 수사적 방식에 너무 동조하는 것으로 보일 경우 독이 될 수 있음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포일리에브르 대표가 이러한 수사로 중도층 표심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지난 3월 취임한 카니 총리는 미국에 대한 보복 관세를 유지하며 트럼프 대통령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취임 초 첫 외국 순방으로 미국이 아닌 영국, 프랑스 등 유럽국을 택하기도 했다. 선거 기간 연설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우릴 무너뜨리려 한다"며 위기감을 자극했다.

캐나다 <글로브앤메일>은 카니 총리가 선거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단 하나의 주제, 도널드 트럼프에 집중했다"고 짚었다. 신문은 자유당 승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너무 닮은 수사와 방식을 가진 포일리에브르 대표를 막기 위해 다른 당, 특히 신민주당 지지자들이 자유당으로 몰린 결과"라며 "많은 유권자들이 카니 총리가 이끄는 자유당이 트뤼도 전 총리가 이끄는 자유당과 다를 것인지 의심했지만, 더 많은 이들이 포일리에브르 대표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싸움을 맡겨도 될지 의심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관세가 캐나다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카니 총리의 경제 전문가로서의 면모도 이번 선거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카니 총리는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당시 영국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경력을 부각하며 자신을 위기 상황에서 안정적 경제 운영을 할 수 있는 인물로 내세웠다.

캐나다 오타와 지역 선거 운동 자원봉사자 이안 라로크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때가 잘 맞았다"며 "카니 총리는 숙련된 정치인은 아니지만 지금 이 나라를 이끌기에 필요한 종류의 사람이다. 경제 위기에 경제학자를 (총리로) 만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카니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지난 집권 기록보다 경제 전문가 경력을 내세워 자유당 10년 장기 집권 피로감을 피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이번 총선에서 처음 의석을 갖게 된 정치 신인인 점도 트뤼도 전 총리를 겨냥해 만들어진 보수당의 변화 촉구 메시지를 튕겨낼 수 있는 조건으로 기능한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카니 총리의 승리는 "트럼프 시대에 중도적, 국제주의적 정치가 성공할 수 있다는 신호로 전세계에서 환영 받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니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타고 승리한 만큼 당면 과제도 그에 대한 대응이 될 수 밖에 없다. 카니 총리는 승리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앉아 두 주권 국가 사이 미래 경제 및 안보 관계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브앤메일>은 캐나다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달랠지, 양보 없이 무역 전쟁을 밀어붙일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인 변덕스런 태도가 "후자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트뤼도 전 총리가 지난 겨울 트럼프 대통령 요구에 따라 국경 보안 강화 등을 발표했지만 돌아오는 게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수출의 75%를 미국에 의존하는 캐나다가 미국과 무역 전쟁을 장기화하거나 당장 대체 시장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전 이미 자유당 인기 하락에 기여한 생계비 상승 및 주택난도 풀어야 할 과제다.

▲29일(현지시간)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전날 치러진 총선 승리 뒤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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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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