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권력이 무너진 자리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망상에 의한 계엄이 실패한 후, 그는 다시 새로운 정치를 꿈꾸고 있다. 패잔병의 정치가 시작됐다. 그래서 여기에 또 다른 망상 하나가 추가된다.
망상 시즌 1.
윤석열은 서류 속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평생 검사로 살아온 그는 이미 발생한 범죄를 서류로 정리하고 증언을 수집하고, 논리를 꿰맞추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가 '기소해'라고 하면 기소하는 일사불란함, 그리고 범죄자의 유죄를 입증했을 때의 그 짜릿함을 윤석열은 잊지 못했다.
윤석열은 검찰 조직을 국가 통치의 모델로 삼았다. 그 외의 세계에는 무지했다. 명령과 복종, 보고와 결재, 서류와 기록의 질서. 윤석열에게 국가는 그 질서를 확장한 거대한 사무실이었고, 통치는 그 조직을 단속하는 일이었다. 명령하면 움직이는 구조에 길들어 있었고, 그 질서를 세계의 본질로 착각했다. 그의 세계에선 공소장이 곧 권력이고, 사건의 통제는 법률적 문장으로 완성돼 왔다.
하지만 계엄은 범죄를 실행하는 일이었다. 이미 발생한 사건의 조각을 수집하는 게 아니고, 조각을 맞춰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 해보지 않은 일을 개척하는 일이다. 군대는 검찰의 상명하복, 일사불란과는 다르게 움직인다.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은 자신이 거느렸던 수하 검사들처럼 군인들도 명령에 맞춰 임무를 딱딱 실행할 줄 알았다.
윤석열은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다. 그는 군인들이 평시에 전투식량과 통조림을 먹는다고 생각했다. 군 시스템에 무지한 그는 검찰의 지휘 체계를 군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검찰 조직의 습성을 군대에 그대로 투영했다. '기소해' 하면 기소하던 그 마법같은 일이 계엄 상황에서 군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실로 거대한 망상이었다. 진짜 세계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군인은 검사가 아니고 시민은 수사관이 아니다. 언론은 보고서를 제출하는 기관이 아니고, 정치는 누군가를 단죄하는 것이 아니다.
계엄은 예외상태의 선언이다. 윤석열은 그 예외 상태를 검찰의 질서로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맞닥뜨린 세계는 서류 너머에 있었다. 그는 그 너머를 알지 못했다. 그는 미지의 세계를 통제하려 했고 그 무지는 자기 파괴로 귀결됐다.
망상 시즌 2.
첫 번째 망상에 실패한 윤석열은 두 번째 망상을 꿈꾼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자는 실패도 이해하지 못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윤석열의 측근, 이완규를 헌법재판관에 지명했다. 헌재에 의해 파면된 자가, 그 헌재에 그림자를 이식하고 있다. 헌법의 심판을 받은 자가 헌법을 모욕하려고 하는 불쾌한 장면이다. 그는 최악의 방식으로 공화국에 복수하는 꿈을 꾸고 있다. 친윤계는 그 한덕수를 '대선 주자'로 키우려는 망상에 빠졌다. 참고로 한덕수의 대선 지지율은 11일자 한국갤럽 기준 2%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그는 대통령 관저에서 여전히 정치인들을 만난다. 나경원, 윤상현, 전한길 등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을 만나 말을 흘리고, 건재를 과시하려 한다.
윤석열을 만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그가 "사람을 쓸때 가장 중요시 볼 것은 충성심이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주변 인사들의 배신에 깊이 상처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는 해석이 따랐다. "헌법재판소 판결도 막판에 뒤집어 진 것으로 생각하시고 매우 상심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윤석열 1호 대변인이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분은 뭐든지 낙관적이다. 전망을 낙관적으로 하는데 근거는 없다. 뭔가 준비를 잘해서 낙관적인 건 아니다. 다만 그게 이제 끝나고 나면 평가는 굉장히 부정적으로 한다"며 "엑스포 문제라든가 뭐 대왕고래 문제라든가 의대 정원 문제라든가 이런 정책들도 굉장히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했는데 평가할 땐 주변 사람들한테 책임을 돌리는 그런 캐릭터"라고 한다.
지금도 그렇다. 그는 헌재의 탄핵 인용도 예상하지 못하고 낙관론에 빠져 있었다. 탄핵되자 '불충한 사람들'의 '배신'을 토로하고 있다. '배신자 프레임'은 그의 유일한 무기다. 박근혜가 유승민에게 굴레를 씌운 것을 윤석열은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그는 의욕적이다. 계엄령에 군대를 동원할 때처럼, 그는 국민의힘이 자신의 손발이 되어 대선을 치룰 것이라고 생각한다. 검찰 조직처럼 국민의힘도 자기 명에 딱딱 움직이리라 믿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찾아온 국민의힘 사람들에게 "대선에 승리하시라"고 말하는 것도 덕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는 정말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승리해 자신을 사면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된 그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권력을 잃은 윤석열에게 정치는 망상의 연장이다. 권력은 기억보다 빠르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곧 현실을 마주할 것지만, 그 현실을 부정할 것이다. 기억을 지우고, 현실을 왜곡하며, 끝내 자신을 신화로 포장하려 할 것이다. 내란은 종식되지 않았다.
인용된 여론조사 개요. 한국갤럽 8∼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5명 대상 전화면접 조사.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응답률은 14.9%.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