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대첩' 통해 '말벌 동지'로 거듭난 시민들, 앞으로 30년 싸운다"

[강상구 시사콕] 농민과 광장의 시민을 이은 '벼락 활동가' 김후주 (향연)

"농민들께서 처음엔 약간 당황하셨어요. 이게 뭐지? 저분들은 누구지? 여기 왜 오셨지? 앳된 청년들, 주로 여성분들이 오셨으니 당황하셨죠. 응원봉도 처음 보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그러다가 연대하러 온 걸 알고 너무 감동을 받았죠. 그날 트랙터 로더를 꾸며 만든 무대에 올라서 농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몰라서 죄송하다고 청년들이 말하면 막 울고, 경찰들에게 차 빼라고 같이 재미난 구호를 외치면서 막 웃고, 그 새벽 내내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습니다."

지난 연말 윤석열 내란 정국에서 기념비적인 사건 중 하나가 '남태령 대첩'이다. 윤석열 퇴진 투쟁 전선 확장과 농업 의제 전면화 등을 요구하며 행진하던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 약 30대와 화물차 50대가 2024년 12월21일 남태령에서 경찰로부터 서울 진입 제한 통지를 받았다. 이후 경찰은 폭력 진압을 시도하고 차벽을 동원해 트랙터 대열을 고립시켰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 중 하나인 남태령에서 농민들이 고립됐다는 소식을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된 청년들이 모여들어 연대 투쟁을 벌였다. 결국 경찰은 길을 터줬고, 그 자리에 모인 농민들과 청년들은 트랙터를 앞세우고 한남동 관저까지 행진할 수 있었다.

한국 민주주의 시계를 40여년 전으로 돌린 윤석열 내란 사태에 시민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아무리 공권력을 동원해 시민들의 분노와 저항을 막으려고 해도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동짓날 밤의 기적과 같은 승리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뿐아니라 한국 사회에 큰 감동을 줬고, 명확한 정치적 메시지를 남겼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았던 농민들과 응원봉을 든 청년들을 연결시켜준 주역은 충청도에서 유기농 배 농사를 짓고 있는 김후주 씨다. 트위터 이용자명인 '향연'으로 더 유명하다. 9일 프레시안tv <강상구 시사콕>에 출연한 그는 남태령사태 이후 '벼락 활동가'가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날 트위터를 보고 오신 분들께서 위험했기 때문에 여기 왔다고 하더라구요. 농민분들이 위험에 처했기 때문에 우리가 왔다, 나도 무섭고 두렵지만 거기에 그 추운 곳에 농민들만 홀로 남겨져 있다면 그분들은 결국 연행을 당하거나 폭력에 계속 노출될텐데, 우리가 가서 그분들을 지켜드려야 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미안함, 감사함, 분노 등 희노애락이 뒤섞인 현장이었죠.

또 가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남태령이 카페 같은 시설이나 건물이 거의 없는 외진 곳이에요. 그러다보니 불빛도 없고 깜깜하고, 그날 칼바람도 불어서 체감 온도가 영화 10도 아래로 막 떨어졌는데, 근데도 돌이켜보면 따뜻했다고 하세요. 현장의 분위기가 굉장히 서로를 돌보고, 챙기고, 걱정하는 마음이 강렬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자유 발언을 하는데, 보통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로서 자기 자신을 편하게 드러내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도 자기 소개를 하는데 30대 레즈비언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다, TK(대구경북)의 딸이다 등등 편하게 말하고 거기에 다들 공감을 했어요."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남을 중요한 현장이 된 '남태령대첩'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김후주 씨는 현재 트위터에서 '남태령 기록보관소(@namchiving)'와 '2025 남태령 심포지엄(@namposium)' 계정도 운영하고 있다.

이전에도 청년 농민으로 농업 정책과 관련해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남태령대첩을 통해 그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변화를 체득했다"고 한다.

"내가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들이 눈앞에서 현실로 나타났을 때, 그걸 진짜 겪고 같이 이겨낸 경험이 몸을 통과하고 나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됐고, 그걸 굉장히 많은 분들이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태령을 겪은 사람들이 거제로, 구미로, 무안공항으로 막 가는 거에요."

"남태령에서 농부 선배님이 저한테 오셔서 눈물을 글썽거리시며 하시는 말이 '내가 학생 때 1987년 기억을 갖고 30년을 왔는데, 이제 후주 씨가 30년을 할 차례라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시민들의 그 힘이 갑자기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원래 있었는데 어떤 계기가 필요했었고, 남태령이 그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대해 집회에 참석했던 한 분이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다뤄지는 방식이 불편하고 너무 죄송해서 돕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겠었는데, 남태령에 와보니까 그냥 가면 되는 거였구나. 그분들은 외로웠고, 내가 오기를 기다리셨구나라는 걸 깨달았다고 하시더라구요."

이처럼 '남태령대첩'을 통해 "연대의 감각"을 "체득"한 시민들은 '꿀벌'인 노동자, 농민, 장애인 등을 지키는 "말벌 동지"로 거듭났고, 후주 씨는 이들이 결국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8년 전 탄핵 광장에서 드러난 시민들의 열망이 실현되지 못한 부분은 정말 뼈아픈 일이고, 저도 그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광장에 나왔던 사람들이 윤석열 한 사람 끌어내리고, 대선 통해서 새 대통령 뽑으면 끝이라고 생각해서 나온 게 아니잖아요. 그런 마음이면 4개월 내내 광장에서 못 버팁니다. 그 사람들이 광장에 모인 이유는 내 삶을 바꾸자, 사회를 바꿔보자, 이대로는 못 살겠다, 이런 결사항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8년마다 벌어지는 연례 행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바꿔야 된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파탄난 민주주의를 다시 쌓기 위해선 주권자인 시민들이 계속 지치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정치권에 당당하게 요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상구 시사콕>에 출연 중인 김후주(향연) 씨. ⓒ프레시안

더 자세한 인터뷰는 <강상구 시사콕>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8bhkHnBoj0&t=3621s)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