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4도, 5대 3도 아니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언했다.
4일 헌재 재판관들은 헌정사상 두 번째 현직 대통령 탄핵 인용이라는 역사적인 선고를 내렸다. 일부 보수적인 재판관들의 성향을 거론하며 반대 의견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일각에서 제기됐으나 결과는 '만장일치 파면'이었다.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헌법재판관들은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비춰봤을 때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로 본 것이다.
8명의 재판관이 함께 고르고 골라 써 내려갔을 선고 요지에는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 "중대한 법 위반행위", "헌법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와 같이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문구들이 여러 번 담겼다. 비상계엄 선포와 군경을 동원한 국회 등 헌법기관 침탈 시도는 헌법을 구성하는 두 축인 '통치구조'와 '국민 기본권'을 무시·침해한 행위로, 현직 대통령의 지위를 박탈할 만큼 중대하다고 재판관들은 판단했다.
尹 "체포 지시 없었다, 경고성 계엄"…헌재 "인정 안 해"
헌재는 이날 17쪽의 선고 요지, 114쪽의 결정문을 통해 그간 제기된 쟁점들에 대한 판단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사건의 주요 쟁점은 △12.3 비상계엄 선포 △포고령 1호 작성 및 발표 △국회에 군경을 투입한 행위 △영장 없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시도 △주요 인사에 대한 체포·구금 지시 등 5가지였다.
재판관들은 국회 측이 주장한 '의원 끌어내기', '정치인 체포 지시' 등 주요 의혹을 대부분 받아들인 반면,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은 단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 측의 '완패'로 끝난 셈이다.
재판관들은 첫째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국회의 탄핵소추, 입법, 예산안 심의 등의 권한 행사가 이 사건 계엄 선포 당시 중대한 위기 상황을 현실적으로 발생시켰다고 볼 수 없다"며 "국회의 권한 행사가 위법·부당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피청구인의 법률안 재의요구 등 평상시 권력 행사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으므로, 국가긴급권의 행사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윤 전 대통령 측이 비상계엄 선포 이유로 밝힌 '야당의 입법 횡포', '부정선거 의혹 해소' 등과 관련해선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법률안들은 피청구인이 재의를 요구하거나 공포를 보류하여 그 효력이 발생되지 않은 상태였다", "중앙선관위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전에 보안 취약점에 대하여 대부분 조치하였다고 발표했다"고 반박하며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을 무력화했다.
윤 전 대통령이 '경고성 계엄', '호소형 계엄'이라고 주장한 대목에 대해서는 "계엄 선포에 그치지 아니하고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의 권한 행사를 방해하는 등의 헌법 및 법률 위반 행위로 나아갔으므로, 경고성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피청구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비상계엄 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에 대해서도 "피청구인은 계엄사령관 등 이 사건 계엄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고 다른 구성원들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계엄 선포에 관한 심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절차적 요건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봤다.
둘째, 포고령 1호에 대해선 "국회,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을 금지함으로써 국회에 계엄해제요구권을 부여한 헌법 조항, 정당제도를 규정한 헌법 조항과 대의민주주의, 권력분립원칙 등을 위반했다"며 "비상계엄하에서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요건을 정한 헌법 및 계엄법 조항, 영장주의를 위반하여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 단체행동권,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고 설시했다.
셋째와 다섯째,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 및 주요 인사에 대한 체포·구금 지시 행위와 관련해선 "피청구인은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등에게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으니,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는 등의 지시를 했다"며 이른바 '의원 끌어내기'를 인정했다. '끌어내라'는 지시를 직접 한 적 없다고 주장한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을 배척하고,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다고 헌재 심판에서 증언한 곽 전 사령관 등 진술 내용을 인정한 셈이다.
아울러 "국회의 권한 행사를 막는 등 정치적 목적으로 병력을 투입함으로써, 국가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사명으로 하여 나라를 위해 봉사하여 온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도록 만들었다"며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헌법에 따른 국군통수의무를 위반했다"고도 지적했다.
넷째, 선관위 압수수색 시도에 대해선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하도록 하여 영장주의를 위반한 것이자 선관위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라며 국회와 마찬가지로 헌법기관인 선관위 권한을 훼손했다고 봤다.

尹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내란죄 철회' 절차적 하자"…헌재 "문제없음"
헌재 재판관들은 윤 전 대통령 측과 여권에서 제기한 '절차적 흠결', '각하' 주장 또한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우선 비상계엄 선포가 사법심사 대상이 되는지에 관해선 "고위공직자의 헌법 및 법률 위반으로부터 헌법질서를 수호하고자 하는 탄핵심판의 취지를 고려하면, 사법심사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 행위이므로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윤 전 대통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국회가 정족수 미달로 탄핵소추안이 폐기된 지 일주일 만에 같은 안건을 다시 상정해 가결한 것은 국회법상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란 주장에 대해서도 "피청구인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은 418회 정기회 회기에 투표 불성립됐지만, 이 사건 탄핵소추안은 419회 임시회 회기 중에 발의됐다"며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이 아니라고 봤다. 일사부재의 원칙은 같은 안건을 다시 발의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이 가장 크게 문제 삼았던 '내란죄 철회' 부분 또한 "기본적 사실관계는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적용 법조문을 철회·변경하는 것은 소추 사유의 철회·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 재판관들은 이같은 사유들을 종합해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며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고 했다.
이어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며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헌재 재판관 전원의 이같은 일치된 의견으로 파면된 윤 전 대통령은 선고 시각인 이날 오전 11시 22분을 기해 대통령직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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