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윤석열 탄핵 8대 0으로 나올 이유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릴 때, 재판관들이 단순히 손을 들어 찬반을 가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을 지탱하는 법적 논리를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다.

비상계엄이 위헌이 아님을 입증하는 글은 어떤 논리로 쓸 것인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선택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재판관은 법률 조문을 통해 말한다. 나도 기각을 전제로 결정문을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법률 조문과 하나도 맞지 않아 실패했다."

비상계엄이 위헌이 아니라는 결정문을 온전하게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의 길을 따라가 보면, 그 길은 이미 끊어져 있다. 야당이 폭주했다느니, 부정선거 때문이라는 따위의 말로 치밀한 법 논리를 쌓을 수는 없다. 기존의 대법원 판례는 거대한 산처럼 가로놓여 있다. 그 산을 넘으려면 법이 아니라 궤변과 억지만이 남는다.

'곡학아세'의 글은 세월이 흘러도 남는다. 돌에 새겨지고, 종이에 눌러 박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스며든다. 글을 쓴 자의 이름도 남는다. 비에 젖은 강바닥에서 썩어가는 이름, 천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 같은 이름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도 마찬가지다. 그 글은 영원히 기록되고, 탄핵 기각 의견을 낸 재판관의 이름도 남는다. 불의 앞에서 무너진 남루한 몰골은 지워지지 않는다. 법을 믿고 존중하는 이들에게 그 결정문은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할 것이다. 탄핵 기각 의견을 내면 지금 당장은 태극기 부대한테 영웅 대접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끄러운 이름은 영원히 남는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그런 선택을 하기에는 너무 현명하다. 8대 0 만장일치 탄핵 결정을 점치는 첫 번째 이유다.

대통령 탄핵이란 것은 헌법과 법률의 위반 여부만 따지지 않고 그 '중대성'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헤아리는 일이다. 대통령을 파면할 때, 그로 인해 지켜지는 헌법의 가치가, 나라가 겪을 손실을 압도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헌재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라고 단호히 결론을 내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죄가 단순 절도라면, 윤 대통령은 살인죄 수준이다.

그런 자가 구속이 풀리자 개선장군인 양 의기양양하게 활개를 친다. '날짜-시간 계산' 해석의 틈을 비집고 풀려났을 뿐인데 죄가 사라진 것처럼 행세한다. 이런 모습이 보여주는 바는 확실하다. 윤 대통령이 저지른 '과거의 해악'도 무겁지만, 그가 다시 권력을 쥘 때 닥칠 '미래의 재앙'은 더 끔찍하리라는 점이다. 탄핵을 주도했던 정치인, 언론, 시민사회단체 등에 대한 보복과 탄압은 물론이고, 두 번째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가 권좌에 복귀하면 정치, 경제, 사회, 외교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 불안정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국민의 삶을 뿌리부터 흔들 것이다. 자본 유출, 환율 폭등, 주식시장 폭락 등이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외 압박 정책과 맞물려 감당 불가능한 충격파로 다가올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단순히 위헌법률심사나 탄핵 심판을 수행하는 기관이 아니다. 법적 정치적 갈등을 헌법 절차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는 역할이 있다. 윤 대통령 복귀 때 빚어질 혼란상을 눈앞에 두고 탄핵을 기각하는 것은 헌재 임무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지켜지는 헌법의 가치가, 나라가 겪을 손실을 압도한다고 판단될 때 헌재는 탄핵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윤석열 탄핵으로 나라가 입을 손실은 없고, 헌법을 지키고 나라에 돌아올 이익은 매우 크다.

헌법재판소는 13일 최재해 감사원장과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만장일치로 기각했다. 국민의힘은 환호했다. "민주당의 탄핵 남발에 법이 철퇴를 내렸다"고 외쳤다. 어제까지 헌재의 편향성을 주장하던 입으로 "헌재가 보여준 법과 원칙, 엄정한 기준"을 찬양했다. 앞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탄핵 결정이 내려지면 그 입은 다시 헌재를 공격하며 편향성을 주장할 것인가. 이제 헌재의 권위를 부정할 명분은 사라졌다.

국민의힘은 "법의 철퇴"를 외치면서도 정작 중요한 사실을 놓쳤다. 탄핵소추를 둘러싼 논쟁을 해결하는 길은 결국 '법'에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힘 주장대로 야당이 탄핵을 남발했다 한들, 그것이 '군인과 총칼'의 명분이 될 수 없음을 헌재의 감사원장 탄핵 기각은 웅변한다. 헌정 질서란 바로 그런 것이다. 게다가 헌재는 단호히 말했다. "국회의 탄핵소추 행위 자체가 부적법한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논쟁도 법이 법으로 답해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헌법재판관들은 헌법과 함께 산다. 아침이면 헌법을 펼쳐 들고, 밤이면 헌법을 덮는다. 하루종일 헌법의 숨결을 들이마시고, 그 무게를 견디며 산다. 대한민국에서 헌법과 가장 가까이 지내며 가장 깊이 사랑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헌법은 거센 바람 속에 서 있다. 헌법이 지금처럼 짓밟히고 능멸당한 적은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마지막 성벽이다. 재판관들은 헌법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할 일은 오직 하나, 무너지는 헌법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군홧발에 짓밟히고, 총칼에 찢긴 헌법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이다. 지금 헌법은 피 흘리며 쓰러져 있다. 그 상처를 씻어주고, 눈물을 닦아줄 이는 결국 헌재 재판관들뿐이다. 그들이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8 대 0 탄핵 결정, 그것이 시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 의견 진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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