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조기 대선이 가시화된 가운데, 여야 대선주자와 정치권 원로 인사들이 한목소리로 개헌론에 힘을 싣고 있다. "내란 극복이 먼저"라며 개헌 논의와 거리를 둬온 '1등 주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당 안팎에서 '개헌 포위망'이 둘러지는 모양새다.
정세균·문희상·김진표·김형오·정의화 전 국회의장, 이낙연·김부겸·정운찬·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정대철 헌정회장,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야 정치원로들은 4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주최 개헌 토론회에 일제히 토론자로 첨석해 개헌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부겸 전 총리는 "그동안 왜 개헌을 못 했나. 자신이 권력을 잡으면 개헌을 한다고 하더니, 대통령에 취임하면 이런저런 핑계로 미뤘다. (그러다) 임기말이 되면 유력한 차기 주자가 생겨 다시 못하게 된다"며 이는 "무책임"이라고 비판했다.
정세균 전 의장도 "개헌이 정치 복원에 기여할 수 있다면 주저할 일이 아니다"라며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일이 아니고, 이해득실을 따져 계산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했다.
이낙연 전 총리는 특히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민주당의 어떤 분만 개헌에 소극적"이라며 "그 분을 위해서라도 이번에 개헌을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민주당 대표와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으면 개헌이 이뤄질 수 없다"며 "조기 대선이 벌어질 경우 대선 출마자들이 개헌에 대한 대국민 약속을 하도록 압력을 가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대철 헌정회장도 "민주당도 다 동의하는데 딱 한 사람, 이 대표만 혼자 '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며 "빨리 압력을 가해서 이번에 개헌을 반드시 해야 한다", "딱 한 사람만 설득이 되면 60일 안에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는 최근 여러 자리에서 "나도 생각은 왜 없겠나, 아직은 탄핵에 집중해야 될 때"(2.24, 김부겸 전 총리와 만나), "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이 논쟁이 블랙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내란 극복에 집중(해야) 한다"(2.27. SBS 유튜브 인터뷰)"는 입장을 반복해서 밝히고 있다.
다만 민주당 내에서도 잠재적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부겸 전 총리, 정세균 전 의장 등이 개헌 논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김경수 전 경남지사나 김동연 경기지사도 연일 개헌론에 목소리를 더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이날 주호영 국회부의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당 차원의 개헌특위를 발족, 공식 논의를 시작했다. 국민의힘 소속 대선주자들도 연일 개헌론을 앞다퉈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개헌 논의가 이 대표를 겨냥한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4일자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돼 생기는 정치적 폐해를 막기 위해 권한을 지방정부에 나눠줘야 한다. 중앙정부에는 외교·안보·국방 권한 정도만 남겨두고 내치 권한은 총리에게 넘겨야 한다"면서 "임기 단축이 필요하다. 우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개헌을 위해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줄이겠다는 자기 희생을 하면 이재명 대표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도 같은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개헌이 꼭 필요하다"며 "지금까지 5명의 대통령이 감옥을 다녀왔고 지금 있는 분도 계신다.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이지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기 때문에 개헌을 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 개헌'은 좋게 받아들였다"며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 권한을 축소한 다음 4년 중임제로 가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정치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지난 삼일절 아침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일제강점기를 끝내고 독립된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낸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처럼, 구시대의 문을 닫고 개헌으로 시대를 바꾸는 정치인들의 희생정신이 절실하다"며 "개헌을 이루고 3년 뒤 물러나겠다는 굳은 약속이 없다면, 지금의 적대적 공생 정치는 더 가혹하게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한 전 대표는 이재명 대표가 '개헌 논의는 때가 아니다'라고 한 데 대해 "그 분은 5년간 범죄혐의를 피하고 싶은 것 아닌가"라고 공격했다.
광역단체장 모임인 시도지사협의회 회장 유정복 인천시장도 이날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양원제 도입, 지방분권·자치 등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제안했다. 유 시장은 "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개헌의 적기를 현실로 만들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여권 대선주자로 꼽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유 시장이 추진하는 개헌안에 반대한다"며 "대한민국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제7공화국 헌법에 대한 제 구상은 3월 중순경에 발간될 '제7공화국 선진대국시대를 연다'(가)라는 책에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 우후죽순 난무하는 정략적인 개헌론보다는 차분하게 1년 이상 충분히 논의되고 난 뒤 여야 합의와 국민적 동의를 거쳐야 한다"고 이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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