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로 국회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에 의한 입법독재를 막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미친 소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기왕에 의도한 부정이었다면 국회의석 200석을 넘게 차지해서 권력 구조를 민주당에 유리하게 만드는 헌법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이고, 양평 고속도로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을 핑계로 초기에 대통령을 탄핵시켜버릴 수도 있었다. 왜 굳이 190석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췄겠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윤석열의 부정선거 주장은 허구다.
윤석열의 부정선거라는 허구
유튜브에서 돈벌이에 혈안이 된 사기꾼들이 서로의 주장을 번갈아 인용하면서 만들어낸 괴담에 불과하다. 삼인성호(三人成虎)에 딱 들어맞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부정선거라는 주장을 법원까지 가져간 경우도 전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선거에서 떨어진 민모 전 의원 같은 패배자들이 소송을 진행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정선거 주장은 여전히 기세를 떨친다. 혐오 선동의 인질이 되어 버린 자칭 애국자들의 집단적인 광기인지, 그런 우매한 대중을 조종하는 '고도의 제한적 통치 기술'인지, 있지도 않겠지만 사랑을 제일로 하는 '신의 뜻'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부정선거라는 단어는 2024년의 부끄러운 키워드로 역사에 남을 전망이다.
이런 부정선거 주장은 두 가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기한다. 그 하나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인 신뢰구조가 깨졌거나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의 신뢰구조 문제는 결국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그 믿음이 굳건해야 사회가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는 판타지는 국회에 야간투사경에서 샷건과 저격용 화기까지로 중무장한 특수부대 군인들의 모습에서 산산이 깨졌다. 솔직히 말해 지금 군인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믿는다고 얘기하고 평상의 노고를 치하해야만 사납게 나를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두려움에 다독일 뿐이다. 마치 맹견을 다루는 유약한 견주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 맹견은 이미 전에 사람을 물어서 죽인 이력까지 있는 종자다.
군인, 경찰관, 소방관은 원래 정말로 가장 신뢰와 감사와 보상을 아끼지 말아야 할 공공적 힘의 표상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번 계엄에서 정말로 중심적인 역할을 한 집단이 군인과 경찰이다. 이번 계엄 말고도 범주를 조금 넓혀서 보면 공무원, 공공기관, 정부와 관련된 인사들의 꽤 많은 배신의 사례들이 있다. 업무로 취득한 정보로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권력을 이용한 인사 청탁, 허위학력 조작, 상대적으로 약한 처벌을 기대한 횡령과 배임 범죄 등이 만연한 상태를 우리는 일상적으로 접해 왔다.
윤석열 정부 시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미 오랜기간 쌓여온 '적폐청산을 주장하는 자들의 적폐'라는 모순적 명명 또한 누적되어 왔다. 진실을 알고 있는 국민들은 총체적 불신의 감정 속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이런 불신들이 쌓여 대한민국은 연간 300조에 달한다는 사회적 갈등비용의 댓가를 치르고 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일까? 당신을 믿을 수 없으므로 내가 직접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당신도 나를 믿지 않을 것이므로 당신이 직접 하도록 해야 할 것이고, 우리라는 공동체는 모든 사람들이 직접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관계를 만듦으로써 이 불신의 수렁을 벗어날 수 있다.
사회적 불신은 직접민주주의가 대안적 해결책
직접 행함으로써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정치사회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직접민주주의다. 다수의 참여가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걱정으로 생겨난 대의제의 반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신뢰구조를 재구축하는 길은 대의제를 극복한 직접민주주의적 사회개혁을 이루는 것에 있다. 현실적이면서도 근본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지금이 바로 대의제로 상징되는 사회적인 위임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비상계엄의 핑계가 된 부정선거는 위임자가 (자신을 포함한) 위임구조를 부정하는 모순을 빚어냈고, 위임을 받은 자들의 자격과 권한 행사의 유효성을 총체적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러한 생각은 해결해야 할 두번째 문제로 이어진다. 국민이 직접 하겠다고는 했는데, 정말로 모든 것을 직접할 수 있다는 생각인가? 주권재민의 원칙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문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우리를 둘러싼 상황을 잘 인식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주권재민을 위한 직접민주주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가라는 둘러봐야 한다.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조건은 다음의 세 요소로 정리해볼 수 있다.
1. 물리적인 장치로서 기구와 도구
이번에 공격 대상이었던 선거관리위원회는 사실 충분히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기관이다. 일부의 문제점에 시비를 걸면서 마치 기관 자체를 못믿겠다는 식의 주장은 과도하다. 다만 선거관리위원회가 조금 더 국민적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을 검증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를 들면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면서 일상적인 공동체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투표 환경을 제공하는 사업을 해볼 수 있다. 이를 위한 도구는 당연히 디지털 시스템이다.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전자 투표 환경은 이미 완성된 상태라고 할 수 있으며, 데이터에 대한 투명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해가고 있다.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관리자가 다른 여러 기계에 동시에 저장해서 임의적인 조작이나 삭제를 하지 못하도록 고안된 시스템이다. 블록체인으로 구현된 투표 시스템은 충분히 믿을 수 있으며, 더 적은 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다.
이러한 문명적인 성과물을 이용해서 국민의 직접 참여에 의한 주권작동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상시적으로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아파트 동대표, 학급의 반장, 대학교 총학생회장, 다양한 조합의 조합장 선출에 적용해서 그 진행 과정의 전반적인 신뢰성과 참여의 의미를 높여가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주권자이고 직접 주권을 행사함으로써 '고도의 통치 행위'를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족이겠으나 종이투표와 수작업 개표만이 유일한 수단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일부의 사람은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진 부류다. 디지털 시스템을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쿠팡에서 물건을 사고, 인터넷 뱅킹에서 재산 정보를 한꺼번에 모아볼 수 있겠는가? 방송의 뉴스 기사는 정말로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수 있고, 심지어는 미국의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혹시 대통령 윤석열은 용산에 잘 있는데, 뭔가 조작된 보도에서 탄핵 중에 있다는 거짓 정보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모든 것이 다 인터넷 망을 통해서 우리에게 도달되는 정보들인데, 이것을 의심하는 것이 정상이겠는가? 이런 의심을 망상이라고 한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국민주권 실현의 대안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인정하거나 직접 제공하는 다양한 개인인증 도구들이 있고, 이 인증 시스템의 작동은 사회적 행동의 시작과 끝이 정확하고 안전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보증한다. 디지털 시스템을 통해서 실현하는 직접민주주의,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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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도적인 근거로서의 법
주권재민의 상시적인 작동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법으로 정함으로써 안정되도록 해야 한다. 현재의 법체계는 권한 위임을 전제로 하는 대의제에 조응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위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근거가 증명되었다면 대의제는 역사의 뒷편으로 물리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예를 들면 '국민주권행사법'을 만들어서 위에서 이야기한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다. 국민주권행사법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는 공공적인 성격을 가진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시스템과 인프라를 제공한다. 시스템은 스마트폰의 앱으로 구현된 유권자 인증을 거친 투표 시스템이고, 이 결과 데이터를 블록체인 인프라에 저장되도록 한다. 블록체인에 저장된 투표 결과 정보는 정부 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 외에도 데이터 보증 기업, 지방자치단체, 공공성을 지향하는 시민단체나 개인 등에서 제공하는 블록체인 저장소에 함께 기록됨으로써 그 신뢰성은 지켜질 수 있다. 의사결정 결과 데이터는 공공적인 자산으로 인정되어 특정한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원칙 하에서 사회적 용도에 맞게 정보 자원으로서 재활용이 되도록 하고, 누구나 이 자원에 접근, 이용을 보장해 줄 것이다.
3. 주권의 실현과 실행자로서의 사람
주권재민의 원칙을 국민주권 행사로 작동시키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해내는 일이다. 여기서 사람은 한 두명의 개인이 될 수도 있고, 정당이나 기업처럼 사람들이 모인 집단을 의미할 수도 있다. 단, 정부 기관은 아니다. 법적인 근거로 조직된 정부 기관은 법 카테고리 하위에 놓인다. 주권자인 사람은 주권을 담지하면서 그것을 실행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한다.
주권의 실행자는 국회의원, 정당인, 언론인 및 학자, 정치와 관련된 전문가들이다. 동시에 언뜻 정치와 무관해보이는 모든 개개인들이기도 하다. 주권은 그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나눠 가진 권리이고, 거부하거나 독점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다. 주권을 단지 현재의 모든 개인들이 정한 국가적인 수준의 권리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당장의 우리 모두를 포함하면서, 이미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당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위 세대의 모든 조상들이 삶과 역사로 만들어진 사회적인 합의 체계의 산물이다. 그러기에 침해가 불가능하고 신성한 국가 형성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이 주장하는 '통치 행위'를 통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는 일제의 의한 침탈과 독재정권, 군부정권에 의한 억압의 대상이기도 했었다. 주권은 더이상 힘으로 다스려지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고, 이러한 맥락에서 국민주권은 최고의 지위이자 최대의 범위에 미치는 원칙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로 주권은 모든 사람의 권리를 완전하게 보장하는 방향을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활용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자의 지배를 의미한다. 다수자의 지배가 소수자의 억압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불가침의 주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소수 의견 존중과 배려를 전제로 다수자의 지배를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채택되어온 방법이 다수결이다. 지금 윤석열과 국민의힘당이 받아들이기를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바로 그 다수결이다. 이미 이들이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는 민주주의파와 반민주주의파를 구분하는 것이 정치적인 분열주의가 아니라 시대 착오적인 민주주의 거부 내지는 파괴 세력에 대한 입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사람을 사회적인 힘으로 조직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누군가에 위임하고 그 권리를 과도하게 누리거나 독점하려고 하는 일체의 시도를 막는 것은 주권자 스스로가 권리 실현의 주체가 되어 힘을 발휘할 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주장의 의도는 거창한 실천이나 운동을 하자는 뜻은 아니다. 앞서서 이야기한 국민주권 실현의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일상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고 이를 사회적 신뢰구조를 재건하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사회적 불신을 치유해나갈 직접민주주의는 현실에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외국에서도 오랫동안 실행해오고 있고,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모델도 만들어지고 있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관점을 함께하는 민관의 협력적인 실행 기구를 만들고, 이 기구를 통해 구체적인 대안을 수립하고 추진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강한 대한민국은 새로운 모델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현재의 어처구니 없는 정치적인 상황도 공동체적 가치, 민주주의의 의미, 국민주권의 신성함에 대한 무지와 곡해에서 만들어진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적 삶의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고, 지구적 연대와 지속을 약속하지 못하는 소모적인 정쟁과 혐오를 에너지로 삼는 퇴행적인 정치병의 시대를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우리 시민이 직접 나서서 직접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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