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놈은 100년, 떼놈은 1000년 숙적'…북한은 주한미군 철수 원하지 않아

[정세현-박인규의 정세토크 시즌 2] 중국 고립위해 러시아 편 들며 미러관계 정상화 시작한 미국,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18일(현지시간)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러시아 고위 당국자가 처음으로 대면했는데, 이 자리에서 양측은 종전문제뿐만 아니라 중동, 중국, 이란, 북한 등의 문제에 에너지, 탈(脫)달러화 문제까지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미러 간 관계 정상화를 위한 본격적 행보에 돌입한 셈이다.

이에 대해 박인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상임고문은 "미국의 속셈은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을 끊고 러시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박 고문은 "1970년대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을 끌어들여 당시 소련을 고립시키려고 한 것과 같이, 미국이 이번에도 이와 유사한 전략을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라고 평가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역시 "미러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도 러시아에 유리하게 끝내주면서 러시아로 하여금 미국 편에 서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미국에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정 전 장관은 미국의 중국 고립화 전략에 대해 "1970년대 미국이 중국과 손잡을 때와 유사한 효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시 소련과 지금의 중국이 비교가 안 될 정도이기 때문"이라며 "지금의 중국은 당시 소련과는 달리 이미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과 함께 G2로 올라선지 오래 됐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이미 미국 GDP의 70%를 넘어선지 좀 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 그린란드 영유권 주장에 이어 파나마 운하통제권도 손에 넣으려고 하고 주요 동맹국들의 생산품들에 관세를 높이는 정책을 펴는 데 대해 "미국 편에 서 있던 나라들이 미국과 거리를 두게 만들려는 정책을 하면 안 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일을 잘못 벌리면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의 줄임말.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운동 문구)가 아니라 미국을 다시 고립시키는 '마이아'(MAIA, Make America Isolated Again)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상임고문은 "세계 정세는 이렇게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대한민국 정치는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멈춰있다. 지난주 뮌헨 안보회의에서도 한미,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을 했는데 기존 윤석열 정부가 했던 미국, 일본 편중 외교를 그대로 반복했다"며 "미국과 러시아가 만나는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도 이번 기회에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러시아가 연해주 극동 지역 개발에서 한국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일본은 러시아와 쿠릴열도 영토 분쟁 문제가 있어서 사실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우리는 그런 문제도 없기 때문에 러시아와 경제 협력에 큰 장애물이 없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나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언급하면서 남한으로부터 천리만리 도망 가버렸다. 지금 남한에는 북한을 끌어들일 수 있는 지렛대가 하나도 없다. 이렇게 남북관계가 단절되면 대중, 대러 접근도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다만 정 전 장관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북러 관계가 좋아졌는데 러우 전쟁 끝나면 이 관계는 빛이 바랠 것이다. 그러면 그 때 북한이 손 벌릴 곳은 중국밖에 없다"며 "이런 측면도 우리가 잘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또 정 전 장관은 중국과 관계도 윤석열 정부 이전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면서 "우리가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정책을 막으려고 해도 막아서는 것이 어렵다면 우리는 우리대로 우선 실익을 가져가야 한다"며 "중국과 관계개선은 우리에게 실익이 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새 정부가 외교에서 큰 그림을 가져가야 한다. 외교에서 절개니 정조니 그런 것을 생각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대담은 지난 19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왼쪽) 전 통일부 장관과 박인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이재호)

박인규 : 지난 18일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났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러 외무장관이 처음으로 대면했다. 그런데 유럽의 종전 문제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것,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배제돼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문제는 회담 의제의 일부이고 핵심은 미국과 러시아 관계의 정상화라고 밝히고 있다. 미러 간 갈등은 지난 2014년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이 개입한 색깔혁명으로 실각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내전이 발생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첫 번째 대통령 당선에 성공하면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2017~18년은 미국의 정계와 언론계가 이른바 '러시아 게이트'로 도배될 정도였다. 이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2020년 선거에서 당선됐지만 이후 미러 간 소통은 사실상 없었다.

이렇게 10년 이상 갈등을 보이던 미국과 러시아가 이제 관계 정상화의 첫 걸음을 뗀 셈인데, 사우디아라비아가 중재국으로 장소를 제공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스라엘과 수교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데, 실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발생하기 전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수교 움직임이 있었다.

이번 미러 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 문제뿐만 아니라 중동 문제, 중국, 이란, 북한 등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국가들과 관계를 러시아가 중재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또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이 중심이 된 경제 협의체)와 미국의 관계 설정 문제, 탈(脫)달러화 등의 주제도 거론됐다고 전해졌다.

이렇게 10년 이상 대치 상태에 있던 미러가 사실상 글로벌한 주제를 놓고 회담을 가진 것을 두고, 미국의 속셈은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을 끊고 러시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1970년대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을 끌어들여 당시 소련을 고립시키려고 하는 것과 같이, 미국이 이번에도 이와 유사한 전략을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렇게 세계 정세는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대한민국 정치는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멈춰있다. 지난주 뮌헨 안보회의에서도 한미,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렸는데 기존 윤석열 정부가 했던 미국, 일본 편중 외교를 그대로 반복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만나는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도 이번 기회에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크라이나에 포탄도 우회적으로 대주고 군사참관단도 보냈을 것 같은데, 지금 러시아와 관계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인 것 같다.

▲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난 마르코 루비오(오른쪽)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세현 : 그동안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의 비공식 전략 안보협의체) 등을 필두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갔는데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이것 만으로는 중국을 봉쇄하거나 발전을 묶어두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이제는 중국의 뒤통수를 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미러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도 러시아에 유리하게 끝내주면서 러시아로 하여금 미국 편에 서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서 이른바 '일대일로'를 추진하는데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여기에 함께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예전 소련의 영토고, 이들이 여전히 러시아 영향권에 있기 때문에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것은 일대일로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다만 지금 트럼프 정부의 전략이 1970년대 미국이 중국과 손잡을 때와 유사한 효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시 소련과 지금의 중국이 비교가 안 될 정도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지하자원이 있다고는 하나 개발에 필요한 인력이나 장비가 없으면 그림의 떡일 수도 있다. 넓은 영토에 매장된 지하자원을 실제 채굴하는 일이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여기에 지금의 중국은 당시 소련과는 달리 이미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과 함께 G2로 올라선지 오래 됐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이미 미국 GDP의 70%를 넘어선지 좀 되기도 했다.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까지 '소강사회'를 건설하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인 2049년까지 GDP에서 미국을 능가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2010년 중국의 GDP 총액이 미국의 40%를 달성한 뒤에 70%까지 오는데 15년밖에 안 걸렸다. 이제 남은 30%를 메꾸기 위해 25년의 시간이 남았는데,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률은 낮아지겠지만 앞으로 남은 기간 미국을 능가하지 못하더라도 90%에 육박할 가능성은 높다.

미국이 브릭스도 깨려고 러시아에 가한 제재를 풀어주고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도 러시아에 유리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것까지 가능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또 탈 달러화의 경우 러시아를 흔들어대면 이 속도는 늦어질 수 있으나, 4년 남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동안 변곡점을 넘기에는 시간적으로 어렵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일을 너무 많이 벌리기도 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영유권 주장에 이어 파나마 운하통제권도 가지려고 하는데, 중국을 포위하는 데 있어 인태전략의 보완책으로서 미러 연합 전선을 추진하는 것도 좋지만, 과거 미국 편에 서 있던 나라들이 미국과 거리를 두게 만들려는 정책을 하면 안되지 않나? 관세 문제도 그렇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일을 잘못 벌리면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줄임말.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운동 문구)가 아니라 미국을 다시 고립시키는 '마이아'(MAIA, Make America Isolated Again)가 될 수 있다.

박인규 :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 세계가 미국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미국이 세계를 필요로 하는 게 더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세현 : 지금의 미국 위상과 세계정세는 이전과 다르다. 지금은 중국이 있지 않나. 중국 압박하는데 협조자가 될 수 있는 나라들을 상대로 해서 경제적으로 압박하면 미국은 또 고립될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

박인규 : 미러 관계가 어디까지 개선될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정리하고 중동에서의 이스라엘과 하마스 문제를 마무리한 뒤에 모든 힘을 모아 중국을 포위‧견제‧봉쇄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의도인 것 같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 때까지만 해도 균형외교를 추구하다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오면서 미국과 일본 위주로 외교를 재편하고 중국과 러시아 관계는 적대적으로 가져갔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외교도 이전과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집권 이후가 가장 힘이 세기 때문에 집권 100일 내로 하려는 것은 다 끝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된다면 60일 내로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이럴 경우 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정부가 출범되는 것이기 때문에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 대외 정책을 면밀하게 다듬고 꾸려 나갈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 윤석열 정부 기간 동안 손상됐던 중국과 러시아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핵심일 것 같다.

정세현 : 한반도를 둘러싼 4강(미국‧중국‧러시아‧일본) 외교에 있어 사실상 핵심 변수는 북한이다. 남북관계가 안정적일 때 대미, 대중, 대러 관계에서 우리가 불이익을 적게 받고 원만하게 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다. 남북관계를 디딤돌로 한미, 한중 관계에서 '자국중심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언급하면서 남한으로부터 천리만리 도망 가버렸다. 지금 남한에는 북한을 끌어들일 수 있는 지렛대가 하나도 없다. 이렇게 남북관계가 단절되면 대중, 대러 접근도 쉽지 않다.

북한이 저렇게 도망가면서도 남쪽을 상대로 해서 군사적 위협을 가하지 않도록 북한을 뒤에서 잡아 당겨줄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이기 때문에 이들과 관계를 윤석열 정부 이전으로 돌려 놓아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해결되고 이스라엘-하마스 간 충돌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면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북미관계를 개선하려 할 것이다. 북미 간 빠른 관계 개선이 중국의 일대일로를 막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건 미국이 러시아와 손잡는 것보다 어쩌면 더 강력할 수도 있다. 평양에 미국 대사관이 들어가는 것은 러시아와 관계 개선보다 대중국 압박 효용이 더 높기 때문이다.

물론 북미관계 정상화가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북핵 문제가 미국이 공식적으로 표방한 정책 목표와 어느 정도 표리 관계로 이어져야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진도내기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취임식 날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이야기했는데 이후 미국 관리들을 슬슬 북한 비핵화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건 '한반도 비핵화'와는 다르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비핵화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국 핵전략자산 등도 모두 정지하는, 즉 한반도 전체에 비핵화 원칙이 적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북미는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만나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했는데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북한에 들어가서 '한반도 비핵화'는 안되는 소리고 '북한 비핵화'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해서 결국 북미 협상의 판이 깨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그 때부터 미국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내년 11월 중간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 때까지 속도 못 내면 트럼프 정책은 무용지물이다. 그 때까지는 미북 간 핵동결 이후 일반 대표부 및 무역 대표부를 교환하는 정도의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다만 이것이 효과를 거두고 비핵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북미 관계 개선되면 남한이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소위 '통미봉남'을 우려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북미 관계 개선이 한반도 전쟁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면 워싱턴을 돌아서 평양으로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우리는 미국의 대북접근을 도와주면서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문재인 정부 때처럼 복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게 모순되는 같이 보일 수도 있는데, 원래 외교가 여기가서는 이거 말하고저기가서는 저거 말하는 것이다. '양다리 외교'도 할 줄 알아야 한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이재호)

박인규 : 대미, 대중, 대러 관계에서 핵심은 남북관계 개선 문제인데, 현재로서는 어떻게 복구할 수 있을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남북관계를 풀어내기가 어렵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관게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나름의 복안을 우리가 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방식이든 군사적 대립을 완화하고 남북 간 불필요한, 소모적인 대결이 아닌 상태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북한은 두 국가 선언 이후로 남북 간 교류가 싫다는 입장인가?

정세현 : 그것보다는 '무섭다'에 가까운 것 같다. 지금 북한이 저렇게 천리만리 도망을 간 상황에서 남북 간 교류 협력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박인규 : 그러면 하다못해 9.19 군사합의를 무효화시켰는데 그거라도 복원시키는 것을 과제로 삼아야 하지 않나?

정세현 : 그건 복원해야 한다. 9.19 합의의 경우 북한이 먼저 파기한 건 아니고 윤석열 정부가 깬 거니까. 남북관계를 다시 예전으로 돌리는 것은 나중 일이고 일단 서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 9.19 깨지고 나니까 너희가 비무장지대에 장벽을 세운 거 아니냐 라고 설득하면서 군사분야 합의서를 복원하는 정도로 일단 남북 관계의 시작점은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인규 : 그런데 미국이 9.19 군사 분야 합의서와 관련해서 당시 트럼프 정부가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정세현 : 당시 우리가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 체결했다는 것에 대해 '괘씸죄'가 적용된 것 같다. 이번에는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려는 것을 우리가 소위 '용인'해 주는 대신 유엔사가 관리하는 비무장지대에 대해 9.19 군사분야 합의서 정도의 안전장치는 필요하니 미국이 이건 좀 용인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이건 북한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일부에서는 유엔사 해체 이야기도 하던데, 사실 북한이 미군 철수를 싫어한다. 미군이 남쪽 어딘가에 버티고 있어야 중국이 북한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심지어 통일 이후에도 미군이 있어야 동북아의 국제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유엔사 해체 문제는 북미 관계가 개선되어 가면서 미군이 여기 계속 주둔하는 방식의 문제이므로 자연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본다. 1992년 1월에 김일성이 김용순 국제비서를 미국까지 보내서 아놀드 켄터 국무부 부장관에게 미군 주둔을 조건으로 수교해 달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나.

북한은 중국 견제도 있지만 남한에 다시 군사정권이 들어서도 미군이 있어야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왜놈은 100년 숙적이면 떼놈은 1000년 숙적이라는 말도 있다. 북한도 미국을 필요로 하고 중국이 우리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그게 국제정치고 외교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서 1순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문제고 2순위가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안이기 때문에 북핵 문제는 올해 가을에 본격적인 조치를 실시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북러 관계가 좋아졌는데 러우 전쟁 끝나면 이 관계는 빛이 바랠 것이다. 그러면 그 때 북한이 손 벌릴 곳은 중국밖에 없다. 이런 측면도 우리가 잘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박인규 : 대중, 대러 관계를 윤석열 정부 이전 수준으로 복원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보면,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났다. 중국과 관계 복원에 있어서 좋은 신호로 보여진다.

정세현 : 중국 입장에서 한국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빼내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면, 시진핑 주석은 오는 10월에 있을 에이펙에서 한국 정상과 만나 틈새가 생기도록 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인태전략이 유효하지 않으니 러시아까지 끌어들여서 중국을 옥죄려고 하고 여기에 북한과 관계도 개선해서 중국의 옆구리도 찌른다는 구상인데, 우리가 미국의 정책을 막으려고 해도 막아서는 것이 어렵다면 우리는 우리대로 우선 실익을 가져가야 한다.

중국과 관계개선은 우리에게 실익이 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새 정부가 외교에서 큰 그림을 가져가야 한다. 외교에서 절개니 정조니 그런 것을 생각하면 안 된다.

중국도 자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에서 틈새를 만드는 데 있어 한국이 필요하니까 오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 주석이 국회의장도 직접 만나는 것 아닌가. 이건 경주 에이펙에 오려는 의지가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 정부에서는 주중대사를 제대로 임명해야 한다. 시 주석이 한국 대통령과 만났을 때 긍정적인 결론이 나올 수 있도록 사전에 정지작업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야 한다. 4강 대사라고 '논공행상' 식으로 아무나 보낼 게 아니라 미국에서 공부한 중국 전문가가 아닌 중국을 아는, 미국의 시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중국에서 유학한 사람을 보내야 한다. 그래야 중국도 환영할 수 있다.

대중관계가 윤석열 정부 이전으로 복원되면 한국이 외교적 입지를 키워가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 대중관계 좋아지면 미국에 대해서도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 박인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이재호)

박인규 :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가 실패한 이후 한국 사회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20~30% 정도가 중국을 주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되면 한중 간 협력도 어려워질 수도 있어 보인다.

정세현 : 어느 시기든 극단적 보수, 극단적 진보는 20~30% 정도 있다. 중요한 것은 중도층을 어떻게 끌어들이냐는 문제인데,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면서 대국민 설명을 얼마나 성의 있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 반중 정서는 처음에 박근혜 정부 때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하면서 중국이 대응조치를 하니까 생기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한국의 문화 콘텐츠 수입을 막는 이른바 '한한령'이 발단이었는데 이것이 관광 산업, 더 나아가서는 관광 지역의 자영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됐다.

그런데 지난해 중국이 한국에 대해서도 한시적 기한으로 30일 무비자를 실시했다. 이 역시 고도의 전략으로 보이는데, 비자 면제가 쉬운 일이 아니고 이건 앞으로 우리와 잘해보자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게서 시진핑 주석이 우원식 의장을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길게 만나서 깊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도 에이펙 정상회의 때 한국에 오겠다는 메시지도 담겨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중 관계를 잘 해보자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국민들에게 설명해 줄 필요도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무역 흑자가 나던 중국과 관계가 안좋아지면 그만큼 우리 경제에도 좋지 않으니 무역 흑자 복원 위해서라도 중국과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더군다나 중국이 무비자라는 정책을 통해 이미 관계 복원의 사인을 보내기도 하지 않았나.

박인규 : 한중 관계 개선의 실제적 이익을 직접 보고 체감하면 반중, 혐중 정서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다?

정세현 : 반중, 혐중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발언권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정부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박인규 : 한국의 대러 관계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는 괜찮았다고 한다. 러시아가 경제협력 대상으로 중국보다 한국을 더 선호했다고도 하는데, 중국의 경우에는 경제적으로 먹힐 위험이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가전이나 자동차 등에서도 한국제를 많이 좋아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공급하니까 푸틴 대통령도 한국에 대해 강경하게 발언하면서 관계가 안 좋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새 정부에서는 한러관계에서 특히 경제협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세현 : 러시아가 연해주 극동 지역 개발에서도 한국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일본은 러시아와 쿠릴열도 영토 분쟁 문제가 있어서 사실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우리는 그런 문제도 없기 때문에 러시아와 경제 협력에 큰 장애물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포탄 보낸 것을 두고 우크라이나 재건 산업에 삼부토건을 참여시키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사실 국가의 정책 결정에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사소하고 사적인 동기가 많이 작용하긴 한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결정되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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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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