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젤렌스키에 "독재자"…미·우크라 설전 속 웃는 푸틴

가디언 "젤렌스키, 진실 말했지만 우크라에 피해 올 수도"…푸틴 "트럼프 기쁘게 만날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말해 파문이 인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러시아와 우크라전 종전 협상을 진행하며 미·우크라 정상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결국 피해는 우크라이나에 집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칭찬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기쁘게" 만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이하 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인 트루스소셜의 본인 계정에서 "선거를 치르지 않는 독재자 젤렌스키는 빨리 움직이는 게 좋을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나라를 잃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또 젤렌스키 대통령을 "적당히 성공한 코미디언"이라고 칭하며 "지지율이 매우 낮고", "끔찍한 일을 했다"고 비방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임기는 지난해 5월까지였지만 우크라이나는 2022년 2월 러시아가 침공한 뒤 계엄 상태에 돌입해 선거를 치르지 않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를 중심으로 영토 약 20%를 침범한 상태고 많은 국민이 국외, 혹은 국내 난민 상태에 놓여 있으며 전투 중인 군인들도 있음을 고려할 때 현 상황에선 선거가 수월하게 치러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 당선돼 2019년부터 집권했다.

유럽 지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독재자" 주장을 곧바로 반박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19일 저녁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크라이나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인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밝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전쟁 중 선거를 중단하는 것은 완전히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AP> 통신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독일 <슈피겔>에 젤렌스키 대통령의 민주적 정통성을 훼손하는 것은 "틀렸고 위험하다"며 "전쟁 중에 질서 있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은 우크라이나 헌법과 선거법에 규정에 부합한다. 누구도 다르게 말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근거 제시 없이 젤렌스키 대통령 지지율이 "4%"라고 주장했지만, 이달 초 발표된 우크라이나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KIIS) 조사를 보면 젤렌스키 대통령 지지율은 57%로 "매우 낮은" 수준으로 볼 수 없다. 이는 19일 발표된 로이터와 입소스 공동여론조사에서 나온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44%)보다도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금 규모도 과장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 규모가 3500억 달러(약 503조3700억 원)라고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 지원을 감독하는 미국 정부 특별 감찰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2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미국의 지원 규모는 1830억 달러(263조1906억 원)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날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발 "허위 정보" 속에 갇혀 있다며 작심 비판한 데 대한 반발로 보인다. 미 <뉴욕타임스>(NYT), NPR 방송을 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19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허위 정보 공간에 살고 있다"며 "이 허위 정보가 러시아로부터 온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팀으로부터 더 많은 진실을 보고 싶다. 이 모든 게 우크라이나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촉구했다. 그는 전날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제한 채 이뤄진 우크라전 종전 관련 미·러 회담에 대해 "미국이 푸틴을 수년 간의 고립에서 나오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해당 비판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시작했다"고 거짓 주장한 뒤 나온 것이다. 18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으로부터 미·러 회담에서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것 관련 질문을 받고 "(우크라이나는) 결코 전쟁을 시작하지 말아야 했다. 협상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고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면전이 시작됐다.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쪽 주장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미 극우 인사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2014년에 전쟁을 시작한 건 그들(우크라이나)이다. 우리 목표는 이 전쟁을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2022년에 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선 연기를 이유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통성을 깎아내리는 것도 러시아의 지속적 주장 중 하나다.

미·러 주도 종전 협상이 막 시작된 가운데 미·우크라 정상 간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며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독재자" 발언은 "러시아가 지난 3년간 퍼뜨린 허위 정보의 정수"로, 젤렌스키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진실을 말했다"면서도 "트럼프와 개인적 언쟁을 벌이는 것은 국가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JD 밴스 미 부통령은 19일 영국 <데일리메일>에 "젤렌스키(우크라 대통령)가 대중 매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함으로써 대통령의 마음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트럼프 대통령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행정부를 다루는 끔찍한 방법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현 상황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가장 좋은 선택은 미국이 제안한 우크라이나 희토류에 대한 지분 관련 협상을 진행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짚었다. 신문은 미국이 지분의 절반을 요구하는 "터무니없는" 첫 제안을 했지만 협상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협상이 푸틴 대통령 쪽에 쏠려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복수의 외신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주 우크라이나에 지원 대가로 희토류 지분 50%를 요구했지만 적절한 안전 보장은 제시하지 않았고,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14일 <AP>에 이를 거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반면 러시아는 18일 미국과의 회담에서 에너지, 우주 탐사 등에 대한 경제 협력을 적극 논의했다. 러 국부펀드 대표인 키릴 드미트리예프는 러시아 천연 자원에 대한 미국의 접근 기회 또한 언급했다.

러시아는 전날 협상 관련, "과거"를 묻지 않는 미국의 태도를 높이 샀다. 러 <타스> 통신, <뉴욕타임스>를 보면 19일 푸틴 대통령은 취재진에게 전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회담이 "매우 우호적"으로 이뤄졌으며 "미국 쪽에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비난도, 편견도 없이 협상에 열려 있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기쁘게 만날 것"이지만 "우크라이나 문제를 포함해" 준비 작업이 많이 남아 있다며 구체적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유럽이 이번 회담에서 배제된 데 대해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다며 사우디 회담 주제는 러·미 간 관계 회복이었다고 주장했다.

미 CNN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의 젤렌스키 대통령 공격의 "승자는 오직 하나, 러시아 뿐"이라고 지적했다.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시 국가에 대한 선거 촉구와 "독재자" 발언은 우크라이나 정치를 혼란에 빠뜨리고 병사와 일반 주민들, 유럽에 있는 난민들까지 흔들 것이라며 "이것이 바로 러 정부가 원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최전선 전역의 고통에 정치적 고통을 더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AP>는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센터 수석연구원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도 푸틴 대통령이 선거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약화시키고 정치 불안을 야기하기를 바랄 수 있다고 전망했다고 전했다. 스타노바야 연구원은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내분 심화, 시위 가능성, 새 대통령의 취약한 승리 등 거의 대부분의 잠재적 결과가 모스크바에 유리"한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러시아 입장에선 "협상이 바람직하지만 꼭 필요하진 않다"며 러시아가 서두르지 않고 "우크라이나가 저절로 무너질 때까지 기다린 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남은 저항을 분쇄"하려 할 것으로 전망했다.

▲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촬영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과 18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촬영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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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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