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배달한다
배달라이더들이 배달통에 음식 대신 민주주의를 싣고 달렸다. 지난달 14~18일 창원-부산-울산-대구-구미-대전-청주-수원-서울을 방문했고 광장의 시민이 주문한 민주주의를 픽업해 배달지가 있는 서울로 달려왔다. '신속탄핵 안전배달'이라는 피켓 문구에 많은 시민들이 응원했다. 지역별로 많은 라이더가 '유상보험', '안전운임'이라는 자신의 요구를 들고 오토바이 행진에 나섰다.
라이더들은 윤석열 시대에 안전과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배민·쿠팡을 규제하라는 요구에 '자율규제'로 답했다. 규제를 거부한 것이다. 도리어 대통령실의 고위관료가 배민·쿠팡의 임원으로 취직하며 커넥션이 형성됐을 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배민·쿠팡에 '라이더 유상보험 의무화'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규제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노동조합을 수거대상으로 지목한 비상계엄사태를 겪으며, 라이더들은 이제 윤석열 시대와 단절해야 함을 인식하게 됐다.
이 와중에 임금삭감
배민은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24일, 기습적으로 운임 삭감을 발표했다. 핵심은 최저운임이 서울기준 3000원인 바로배달을 종료하고, 모두 구간배달(알뜰배달)로 통합한다는 것이었다. 대신 구간배달 최저운임은 서울기준 2280원에서 2500원으로 인상한다고 했다. 바로배달 최저운임을 500원 삭감하고 구간배달 운임을 220원 올리겠다는 것. 이것은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아니라 '조삼모이(朝三暮二)'라 표현해야 할까. 그런데 배민은 500원 삭감은 감추고 220원 인상을 메인으로 보도자료를 뿌렸고, 설 연휴를 앞둔 기자들은 이를 '복붙'해 기사를 써 내렸다. 배민은 임금을 빼앗은 것만이 아니라 노조가 대응할 시간까지 꼼꼼히 빼앗았다.
이번 운임 삭감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바로배달 최저운임 3000원은 노조와 단체협약으로 합의한 임금 기준이다. 그런데 이를 약관 개정으로 간단히 없애버렸다. 약관법에는 약관에서 정하고 있는 사항에 관하여 사업자와 고객이 약관의 내용과 다르게 합의한 사항이 있을 때에는 그 합의 사항은 약관보다 우선한다고 되어 있다. 단체협약이 우선한다고 볼 수 있음에도 배민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약관을 앞세운 것이다. 배민은 노동조합의 몇 안 되는 권리마저 빼앗은 것이다.
배달계의 독재자
배민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라이더에게 얼마를 줄지, 어떤 업무를 배정할지, 업무를 배정할지 말지, 운임 얼마를 줄지, 누구에게 추가운임을 줄지, 추가운임을 줄지 말지, 누구에게 패널티를 줄지 등등 라이더 업무와 관련한 모든 사항은 다 배민이 결정한다. 물론 약관이 있고 공개도 한다. 그러나 약관은 사측이 필요로 하는 사항만 꼼꼼히 적어 놓았을 뿐, 라이더에게 필요한 운임, 업무배정 및 패널티 기준은 빠져있다. 이마저도 불이익 변경 시 어떤 절차도, 제재도 없다. 심지어 약관 불이익 변경에 대해 동의/미동의를 표하지 않을 시 일정 시점이 지나면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며, 미동의 시에는 계정이 정지된다. '동의'라 썼을 뿐 '강제'인 것이다.
배민을 견제할 장치는 전혀 없다. 유일하게 노조의 교섭권은 인정하고 단체협약도 합의했지만, 이번 사건처럼 하루아침에 협약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황에 교섭으로 견제가 가능하기나 한가. 라이더들은 운임이 계속 삭감되는 상황에 그나마 소비자가 단건으로 주문하는 바로배달 3000원은 노조와의 단체협약 내용이니 이건 못 건들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지만, 이번 사건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이제는 그 누구도 배민에 대항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배민은 작년 상생협의체를 거치며 자영업자에게 부과하는 수수료를 더 인상하는 결과를 냈다. 상생협의체가 열리기 이전인 2024년 7월 기준 6.8%였던 수수료를 상생협의체 결과라며 7.8%로 인상했고, 고정비로 들어가는 배달료도 최대 500원을 인상했다. 자영업자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수수료 인하를 절박하게 호소하고 있음에도 배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지난달 31일자로 기존 3.3% 수수료만 내도 이용할 수 있었던 정액제 광고상품은 폐지하고 이제는 최대 10.78% 가량의 수수료를 내야만 이용이 가능한 체계로 일방 변경했다. 이렇게 해도 아무런 견제도, 재제도 받지 않는다.
물론 배민만이 문제는 아니다. 라이더와 자영업자에 대한 꼼꼼한 착취는 대부분 쿠팡이 먼저 시작하고 배민이 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해왔다. 라이더 배달료 삭감, 무보험정책, 하청화, 거짓 무료배달 모두 쿠팡이 시작하고 배민이 따라갔다. 배민과 쿠팡은 시장점유율을 놓고 서로 경쟁하지만 상호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부분에선 공동 행보를 취해왔던 것이다. 결국 배민 비판은 쿠팡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배민에도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파괴자들은 곳곳에 있다. 대통령의 계엄권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 국회를 봉쇄하려 했던 대통령의 의지와, 라이더 운임에 있어 유일한 교섭권을 가진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삭제한 배민의 의지는 꼭 닮아있다. 어떤 견제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대로 모든 결정권을 행사할 것, 시민·라이더는 그들의 선의나 기대하라는 것, 결국 자신의 정치적·금전적 이익을 극대화 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의 민주주의 없이 시민의 자유와 일상은 불가능하고, 배민의 민주주의 없이 라이더의 생명과 생존은 보장될 수 없다. 라이더들이 시작한 민주주의 배달은 아직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 계엄을 발동했던 대통령은 여전히 직을 유지하고 있고, 배민은 라이더를 상대로 한 계엄을 이제 본격적으로 선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배민이 라이더를 주권자와 같이 존중하고, 노조와의 협약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은 배민이 민주적인 일터, 괜찮은 일터가 되어가는 길이다. 라이더들이 민주주의 배달을 완료할 수 있도록, 응원과 지지를 바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