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스토필리아. 그리스어로 범죄를 뜻하는 'hybristos'와 사랑을 뜻하는 'philia'가 합쳐진 말이다. 범죄인을 향한 사랑, 혹은 그에 매혹되는 심리를 뜻한다. 범죄자는 죄인이지만, 때로는 우상이 된다.
역사는 수많은 범죄와 그에 열광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20세기 최악의 살인마'로 불리는 찰스 맨슨에게는 '맨슨 패밀리'라는 열렬한 추종 세력이 있었다. 1970년대 미국의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에게도 철창 너머로 펜레터가 쏟아졌다. '나이트 스토커'로 불린 리처드 라미레스는 체포된 뒤 광기에 매혹된 여성 중 한 명과 결혼식까지 올렸다.
범죄자에게 쏠리는 기이한 동경은 어둠 속에서 자란다. 금지된 것에서 아슬아슬한 쾌감을 느끼고, 범죄자의 냉혹한 자신감과 거친 카리스마에 매혹된다. 세상의 이목이 쏠린 범죄자를 좇으며, 그 시선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한다. 그 뿌리는 허기진 마음의 그늘 속에 있다. 병든 땅에서 자라난 왜곡된 욕망이다. 그것은 마음이 앓는 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된 뒤 한남동 관저 앞에 모인 지지자들이 오열하는 광경을 보며 문득 '하이브리스토필리아' 단어를 떠올렸다. "아무리 살인범이라고 해도 법이 살아 있어야 되는 것"이란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발언도 연상작용을 자극했다. 말속의 '살인범' 단어 때문이다.
내란죄와 살인죄는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죄의 무게에서 내란죄가 더 가볍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란은 한낱 권력 찬탈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뿌리를 뽑고, 다가올 미래를 불태우는 일이다. 살인이 인간의 생명을 찢는 일이라면, 내란은 국가의 존재 자체를 파괴한다. 나라의 심장에 칼을 꽂고 국민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는 잔혹한 범죄다. 내란죄는 역사의 강물에 독을 풀어놓는 행위다. 흘러간 시간과 앞으로 흘러갈 시간 모두를 죽인다. 살인이 한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라면, 내란은 수천수만의 영혼을 불살라버린다.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지은 죄의 무게다.
악명 높은 살인범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가장하며, 피로써 진리를 설파하려 했다. 자신을 예언자나 메시아 같은 존재로 여겼다. 자신이 심판자였다. 법과 도덕이 산산이 부서진 자리에서 그들은 웃었다. 극단적인 자기애와 과대망상, 희생자와 추종자들에 대한 통제 욕구, 도덕적 경계의 상실 등은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윤 대통령은 어떤가. 극단적인 자기애와 과대망상은 체포 직전에 찍어 배포한 녹화영상에서도 다시금 확인된다. 죄책감이나 후회는 없다. 자신은 법을 초월하는 존재라고 여긴다. 내란 행위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므로 체포된 뒤에도 일절 공수처 조사에 응하지 않는다. 자신을 법으로 단죄하려는 것은 "좌파 사법 카르텔"의 음모라고 확신한다. 그런 맹목적 정신세계 속에서 그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라고 준 국군통수권을 악용해 공동체에 죽음의 재를 뿌렸다.
윤 대통령의 체포 소식에 눈물을 쏟는 사람들은 그가 저지른 중대한 범죄의 무게를 애써 외면한다. 그들의 추종은 단순한 매혹이 아니다.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복잡한 실타래가 얽히고설킨 감정이다. 그들에게 윤 대통령은 범죄자가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려다 불가피하게 몰린 희생자이며, 자신들의 신념을 실현하는 구원자이다.
윤 대통령의 내란 행위를 정당하다고 믿는 이들은 끔찍한 죄상이 잇따라 드러나도 마음의 동요가 없다. 케이블타이, 안대, 포승줄, 송곳, 망치, 야구방망이 등 잔인한 고문 도구들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윤 대통령을 동정하고 그를 비판하는 자들을 향한 적개심을 더욱 불태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삶과 신념을 윤 대통령에게 포개어 재구성하며, 그의 그림자 속에 깊이 몸을 웅크린다.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들은 광기의 전도사들이다. 연쇄살인범들도 법의 심판대 앞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았다. 그러나 그 변호사들은 살인범들의 범죄 행위 자체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범죄자의 정신 상태 이상을 내세워 방어 논리를 펼쳤을 뿐이다. "범행 당시 의식을 잃었다"느니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여서 자신의 행동이 옳고 그른지 분간하지 못했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윤 대통령 변호인들도 차라리 그런 변호 전략을 짰으면 좋았을 것이다. '주취감형'을 내세워 윤 대통령이 잦은 폭음으로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내란죄를 저질렀다고 변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변호인들은 내란죄 정당화 차원을 넘어 "대통령의 운명이 나라의 운명"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윤갑근 변호사는 "시민이 경찰을 체포할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이쯤 되면 오히려 변호인의 '정신이상'도 의심해 봐야 한다.
연쇄살인범에게 열광하는 심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어두운 마음의 골짜기에서 발원한다. 다행히도, 이 기묘한 애착은 세상 한구석의 일그러진 파편일 뿐이다. 그 영향력은 제한적이고, 집착의 불길은 주변을 태우지 못하고 스스로 소진한다.
하지만 내란범을 향한 광신적 애정은 사뭇 다르다. 그것은 외로운 몇몇의 욕망이 아니라, 더 크고 무거운 질량으로 움직인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땅을 뒤흔드는 힘으로 커간다. 정치세력과 뒤엉켜 위험성은 더욱 증대된다. 국민의힘은 그 뿌리에서 자양분을 빨아들이며 버티고 있다. 그늘은 더욱 짙어지고, 더 많은 이들이 그 어둠 아래 모여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법의 심판을 받아도 광기의 불길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집착은 제2, 제3의 윤석열을 키워낼 토양이 되어 뻗어나갈 것이다. 이제 다시 희망을 말해야 할 순간, 가슴 한편에 무겁고 어두운 돌덩어리가 얹혀 있는 이유다. 이 무거운 돌덩어리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본질일지 모른다. 희망이 싹을 틔운다고 해도, 그 무게가 쉬이 가벼워지지 않을 것이다. 광기와 어리석음, 그 끝없는 순환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걸음, 힘겹게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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