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2025년를 맞이했으면서도 여전히 혼란 상태에 빠져 있다. 국민 의지에 반하는 무지막지한 권력욕을 표출해 온 비양심적인 소수 정치세력층이 추는 무모한 칼춤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오려면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까? 법조인 계층을 포함하여 놀부 심보를 가진 이기적인 기득권층의 왜곡된 집단의식이 더 큰 문제이다. 타인 인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나 배려심은커녕 기본적인 공감 능력조차 없는 자기중심적 인성의 소유자들은 제비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서라도 자신만의 탐욕을 채우려 든다.
정권 연장을 목표로 하는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 인해 우리 시민들은 현재의 민주사회체제가 하루아침에 독재체제로 다시 퇴보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깨달았다. 현재 한국 사회는 무너진 상호신뢰감으로 인해 극도의 정파적 분열과 배신감으로 고통받고 있다. 사회진보의 안정적인 기반이 되는 인간 본성의 여러 면면을 기초부터 다시금 통찰하도록 시민의식을 통째로 흔들어 깨우고 있다.
자기 이익만 앞세우는 놀부와 같은 권력자들을 열성적으로 규탄하는 한국민 대다수가 무조건 착하기만 한 흥부처럼 무능력한 대통령을 원하지는 않는다. 지도자 역할을 감당하는데 요구되는 기본 자격은 마음 내키는 대로 '공정과 상식'을 외치는 위선적인 겉모습과 거리가 멀다.
대통령 직위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기존 정치체제의 법제적 약점들을 수정하기 위한 사회개혁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 집단지성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필수자격은 현실적인 문제해결 능력뿐 아니라 국가이익과 세계평화를 우선하는 확장된 비전과 깨어있는 지도력이다. 지금 대한민국과 세계시민들은 넒고 깊은 생활철학이 몸과 영혼에 배어있는 진정한 리더가 필요하다. 혼돈상태를 숨 쉬며 살아가는 한국의 민주시민들은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집단지성적 자아 성찰 과정에 접어들었다. 이 힘든 성찰 과정에서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깨어있는 지도자를 찾으려면 공동체적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민주사회의 지도자 역량
민주시민들이 천신만고 끝에 성취한 대통령 탄핵 과정이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지 불확실한 가운데 미래의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의 기본 자격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도자 역할수행을 하는 지위에 있는 인물들의 유형은 오직 자신의 개인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부류와 타인과 지역공동체 전체에 미치는 공익을 우선시하는 두 그룹으로 크게 나뉜다. 협력을 통해 진보해 온 인간사회는 물리적 힘으로 경쟁자를 누르고 득세하는 동물 세계와 다르다. 인류의식의 상승과 더불어 지구 여러 나라에서 승자독식의 어두운 왕정체제 역사를 뒤로하고 21세기 정치경제추세에 부합하는 민주적인 정치발전을 도모해 왔다.
대한민국은 일찍이 동학혁명과 3.1혁명의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세계만방에 빛나는 민주질서를 보여 준 자랑스러운 역사적 경험이 있다. 한국 시민들은 수십 년에 걸친 독재 탄압에도 불구하고 미래세대가 안정된 민주사회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권과 기본적 욕구충족을 위해 수없이 많은 희생을 치렀다. 덕분에 폭정이 허용되었던 구시대적 왕정체제나 독재적 사회체제로의 퇴행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초현대국가가 되었다. 폭력에 피로 물든 독재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치우고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거듭난 대한민국은 오래 참고 인내하는 평화시위를 통해 21세기 한국형 민주사회 사회구조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능력이 있다. 필자는 공동체적 시민의식이 계속 진보함에 따라 이익집단의 불법한 탐욕 행위가 통제될 것으로 믿는다.
이 글에서 필자는 사회 시스템 차원의 정치경제개혁이 요구하는 필수요건으로서의 지도자상에 집중하고자 한다. 민주시민의식을 한층 더 함양하기 위한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진보된 민주사회를 원하는 우리 시민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로서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상이 무엇인지 깊이 고찰해야만 한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성찰해 보아야 할 과제로서 '내가 과연 믿을만한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는 평민으로서의 민주사회 구성원 모두가 각자 주어진 조건에서 공익을 염두에 두고 지도자적 역할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체제는 수평적인 인간관계와 조화로운 인간적인 연대체계를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 대다수 시민은 경쟁적인 교육체제가 산출한 괴물과 같은 권력자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평범한 민주시민으로서, 또한 사회적 요구로 공인(公人) 역할을 부여받았다면 진정한 리더 역할을 하기 위해 어떤 내면적 자격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 우리 모두 민주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지도자의 자격을 깊이 통찰할 필요가 있다. 각 시민이 지도자를 선출하는 임무를 수행할 때, 마치 지도자 역할을 맡은 것과 같은 자세로 책임의식을 발휘해야 한다. 각 시민이 자기성찰과 책임의식을 확고히 함으로써, 인류사회 발전단계의 옛 유물인 왕정 시대 폭군이나 히틀러와 같은 사악한 독재자에게 정치 권력을 허용하는 잘못을 다시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이 필요로 하는 지도자상에 대한 논의는 사회 각층의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 새로이 시작되어야 한다. 오래전 필자는 미국의 한 사회복지대학원에서 '리더십 세미나' 과목을 강의한 적이 있다. Leadership Quarterly를 비롯한 여러 경영학 관련 학술지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학자들은 리더십 유형에 관한 수많은 개념과 이론의 틀을 연구해 오고 있다. 그러나 학구적 고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일반인 각자가 지도자상에 관련하는 보편적인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일이다. 리더십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도가 개인 삶과 조직 내에서 긍정적인 사회적 효과를 보려면 각자 아는 만큼 일상생활에서 지도력을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필자는 은퇴한 사회복지학 교수로서 알고 있는 이론적 지식체계를 넘어 내 삶 속에서 자발적으로 내재화시키려 애써 온 지도자상을 논하기로 한다.
지도자적인 책임성과 온전한 자아실현을 위한 필수지능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짊어져야 할 공적 책임이 크다. 지도자 위치에 있는 인물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분석능력을 발휘하는데 필수적인 인지지능(Cognitive Intelligence Quotient, IQ)은 적어도 평균 보다 높아야 한다. 또한, 일상적이고 중차대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 건강을 돌보고 관리하는데 필요한 신체지능(Physical Intelligence Quotient, PQ)이 일반인보다 훨씬 더 우수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망가뜨리는 생활습관이 있다면 아무리 특별한 주치의 서비스를 제공해도 건강한 삶에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세 번째 필수지능은 사회적 공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익을 확장하는 활동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적어도 보편적 수준의 인간 욕구를 이해하는 공감력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복잡한 문제해결을 위해 사회적 차원의 화합과 협력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 Quotient, EQ) 기반이 월등해야 한다. 많은 기업에서 새 직원을 임용할 때 개인의 EQ 수준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의사소통능력과 동료와의 상호협력기술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이다.
위에 언급된 세 가지 인간지능인 IQ, PQ, EQ 이외에 자기 삶이 즐겁고 타인의 행복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서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지능이 한 가지 더 있다. IQ, PQ, EQ를 효과적으로 발휘하는데 긴요한 촉매 역할을 함으로써 개인의 성공적인 자아실현에 도움이 되는 필수지능으로 영성지능(Spirituality Intelligence Quotient, SQ)이 있다. 현재 이 개념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고 간혹 기독교계의 전유물로 이해되거나 혹은 무속인이나 높은 경지의 도인들만 접근하는 신비한 영역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대중의 보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평이하게 정의하자면 SQ는 모든 인간이 타고나는 양심에 따라 주어진 상황에서 최상의 인간애를 실천하는 능력이다. 공인에게 있어서는 최대 다수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최선을 이루는 문제해결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요한 영성(종교)적 가치관으로 흔히 언급되는 지혜와 자비를 균형 있게 활용하는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영성지능이 높다고 예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역사에서 국민과 국가를 진정으로 사랑한 탁월한 리더로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있다. 조선 시대 말기, 일제 식민시대, 독재 탄압시대를 헤쳐나오는 과정에서 어둠을 밝히며 출현한 근현대시대의 한국인 지도자들도 무수히 많다.
지도자 자격 1: 참된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
주어진 상황에서 누구나 크고 작은 지도자 역할을 하려면 먼저 자신의 내면에서 참된 정체성에 대해 확립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넘어서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 자아(自我, Self)를 인식하기 위해 스스로 의식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인격을 유지하며 살아왔는지 돌아보는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있다면 누가 뭐래도 자신의 소신과 가치관, 그리고 중차대한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신념을 지키는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양심적인 존재로서의 자아정체성이 뚜렷하고 이기적 성향을 극복하는 자신의 큰 자아(Self)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타인과 세상을 향한 사랑도 커지기 마련이다.
특히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면 책임 있는 정책 결정을 위해 조직이나 사회 전체 상황을 통합적으로 파악하고 특정 사안이 어떻게 다른 이슈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아채는 메타지능(영성지능)이 필요하다. 사회통합적 관점에서 전체 사회체제의 부분적 영역들이 상호연결된 조화를 이루도록 거시적 세계관을 최대다수의 공익을 위해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정치경제영역에서 큰 위험을 안고 있는 현시점에서 지도자 내면세계의 건강상태를 논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사회경제적 지위를 막론하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줄 모르고 표층적 자아상에 불과한 학력과 재력 등 자신의 겉모습에만 의지해 온 사람에게 위에 언급한 영성지능 개념을 숙고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국민에게 탄핵당하는 위험을 자초한 대통령처럼 거짓말이 일상화되면 자신의 안위뿐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기로 몰고 가게 된다. 자신이 한 말을 계속 뒤집는 몰염치한 인간들은 자기 내면에 깊이 숨겨진 참된 자아상을 통찰하는 능력을 하루빨리 길러야 한다. 불행히도 많은 수의 국회의원들처럼 비양심적인 세력과 한 몸이 되어 자기 이익만 보호하는 일들이 너무 쉽게 행해지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과 국무위원, 국회의원, 검사, 판사, 교수 등 지도자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많은 이들이 이런 유형에 속한다는 사실은 슬프고도 개탄스러운 일이다.
정치적 지도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자기 내면의 온전한 영성적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유지하며 이기심을 극복하고 참된 자아상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타인과 사회 전체의 복리가 위협당할 때 정의를 위해 앞장서 온 이름 없는 지도자들은 우리 사회에 아주 많다. 독자들에게 묻는다면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민주사회로 이끌어 오며 크고 작은 영향력을 발휘해 온 지도자들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지러운 정국에서도 현재 깨인 지도자적 면모를 갖춘 인물들이 적지 않다. 필자가 미래 한국 사회는 절대로 어둡지 않다고 전망하는 이유이다.
지도자 자격 2: 자신과 다른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
지도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함께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이나 다른 집단 그리고 다양한 지역사회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삶을 살아가려면 적어도 평균수준 이상의 감성지능(EQ)이 있어야 한다. 정치 권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은 뛰어난 공감력을 갖추어 공익중심의 공복(公僕, public servant)으로서의 문제해결 능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사회 전체의 복리를 위한 선한 영향력을 주는 영성적인 지도력은커녕 타인을 오직 자기 목적달성의 수단으로만 보는 권력자들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타인과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 목적달성의 수단으로 보는데 능숙한 사람이 지도자 역할을 하도록 두어선 안 된다. 민주질서가 정립된 진보사회라면 이타적이기보다 개인 이익만 우선시하는 소아(小兒)적인 권세가나 특정 이익집단이 공적인 일에 무도한 권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할 수 없다.
진보적인 사회혁신에 필요한 추동력이 기득권 사회계층으로부터 내려(top-down)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마치 흥부가 제비로부터 박 씨 선물을 받은 것처럼! 그런 기적 같은 일이 현재로선 가능해 보이지 않지만, 우선 현재 국회의원들이 누리고 있는 온갖 특혜에 들어가는 정부 예산부터 소폭 수정하면 공무원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국민 모두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혼란 속에서도 양심을 지켜 온 민주시민들이 모두 반성하고 새로이 더 강력한 민주사회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다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내면으로부터의 변혁은 기득권층 모두의 영성지능 차원의 쇄신이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자기 자신의 안위보다 국민을 더 사랑하는 마음 없이, 무늬만 공복인 (말로만 '머슴'인)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이 스스로 자기 월급을 줄일 수 있을까?
중이 제 머리를 스스로 깎지 못한다는 말을 염두에 둔다면 국민 이익을 진정 배려하는 자세로 스스로 깨어난 지도자가 사회혁신에 자발적으로 나서주기를 마냥 기다릴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런저런 결함 때문에 감옥에 들어간 촉망받던 정치인들의 불행은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다. 앞으로 개인 이익 추구보다는 새로 깨어난 민주시민들과 함께 사회진보에 앞장서 일할 정치인들의 지도자 역할을 독려하려면 민주시민들이 먼저 나설 일이다.
다행히 한국 사회에는 진정으로 사회 전체의 공익을 위해 과감한 개혁에 앞장서 온 이름 없는 위인들이 정치권 밖 지역공동체에 이미 많이 있다. 타인과 생명을 사람하고 영성지능의 기본바탕이 되는 감성지능이 탁월한 지도자들이다. 기본적으로 정치판 제사음식에는 관심이 없고 생명 평화운동, 돌봄 공동체, 농촌 살리기 등 지역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주변의 인물들을 살펴보라.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기에 바빠서 자기 이익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청장년들과 노동자, 농민을 포함하는 소그룹 활동가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이런 이름 없는 지도자들이야말로 자신과 타인을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일과 관련이 별로 없는 일로 바쁜 이 사람들이야말로 '직접민주주의' 등 새로운 사회로 진보하는 개혁방안을 열심히 탐구한다. 메마른 영혼에 물을 주는 것 같은 인간미 깊은 지도자들이다.
한 개인의 삶의 목적이 오로지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지도자 역량은커녕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최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일 뿐이다. 겉으로 남이 부러워하는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다 해도 항상 불안하고 불만족한 삶이 되기 쉽다. 현재 한국 사회가 겪는 고통은 남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도록 훈련받은 소위 엘리트층 사람들과 크고 작은 부패에 눈감아 온 일반인들이 함께 창출해 낸 집단지성 차원의 업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식으로 어릴 때부터 경쟁해 온 개인들이 자기중심적 인간관계와 결함투성이 사회구조 속에서 타인을 우선 배려하는 미덕과 돌봄 정신을 유지하기 어렵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되는 낮은 투명성 지표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맑고 청렴한 사회문화 창출에 시민 모두 참여해야 한다.
타인과 자신의 선한 기본인성에 기반하지 않는 경쟁적 인간관계는 돌봄을 중시하지 않는다. 사회 전체의 안녕과 복지를 염려하는 마음 자세가 기본적으로 결핍된 경우에 자신의 개인행동이 사회 전체에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다. 자기만의 욕구충족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사회적 연락망과 탐욕에 찌든 인간관계는 오히려 집단지성의 퇴보를 촉진하고 상생적인 의식세계의 함양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앞으로 한국 사회를 정상화하는데 공헌할 수 있는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가가 되려는 자기 자신의 동기가 선하고 정의롭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선한 본성과 타인의 인간성을 신뢰하는 사람이어야 타인과 생명을 사랑하는 지도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함으로써 공익확장에 이바지할 수 있다.
지도자 자격 3: 평등한 세상을 사랑하는 능력
모든 사람에게는 인간다운 삶에서 충족시켜야 할 보편적인 욕구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는 평등한 존재이다. 모두의 현존에 필요한 인간의 기본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거나 각자 사는 방식대로 자유로운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민주주의 정신이 유지되기 어렵다. 가난을 극복한 한국의 경우에 수십 년간의 독재체제에 민중이 맞서 피 흘리며 싸워 온 보람으로 민주체제를 수립할 수 있었다. 이제 비교적 풍요로운 경제 혜택을 누리며 민주시민으로서 기본인권을 보장받으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국인들은 느닷없는 계엄령으로 인해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사회심리 면에서 크나큰 억압을 받고 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마치 왕권이라도 행사하듯이 민주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교묘하게 남용하는 기괴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가능했을까?
소수 기득권층의 정권독점과 경제적 탐욕을 통제하는 민주시민들의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한국 민주제도의 뼈대이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는 학연, 지연, 이익집단과의 불온하고 이기적인 인연, 심지어 온갖 불법 수단까지 동원해서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만 채우는 만행이 가능하다. 이제 허점투성이 사회체제를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개혁해야 한다. '끼리끼리 해먹는' 병폐를 합법적으로 뜯어고치기 위해 헌법을 위시한 모든 법제적인 취약점들을 꾸준히 수정해 나가야 한다. 더는 무력에 의해 고귀한 생명이 위협받지 않고 모든 시민이 기본권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유를 공정하게 누리기 위해서 한국사회의 당당한 주권자들은 과거 민주화 과정을 돌아다보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아직도 우리가 독재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통렬히 자기 자신부터 비판해야 한다.
약한 자를 힘으로 밀어붙이는 동물적인 근성에서 나온 계급의식은 양반과 상놈을 갈라놓은 조선 시대에만 가능했던 건 아니다. 민주정신이 실천되지 않고 지혜와 자비가 균형된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능력이 고갈된 사회에서 언제나 가능한 일이다. 놀랍게도 지난 12월 3일 대한민국 대통령의 내란(친위 쿠데타)과 같은 구시대적 발상이 표출된 건 한국 사회가 사랑이 부족하고 영성지능이 떨어진 메마른 국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계급차별과 생명경시 태도가 소수 기득권의 의식세계에 아직도 깊이 남아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세속적인 의미의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모두 우주 차원의 생명 원리에 따른 존엄성을 가진 귀한 존재들이라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스스로 특권을 얻었다고 착각하는 소수 엘리트층 의식을 하루빨리 변화시키는 일은 한국 사회에 주어진 중차대한 도전이다.
경쟁 위주의 학벌주의에 찌든 기득권세력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같은 고졸 출신 지도자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해 온 행태야말로 우리 사회에 아직도 인간 평등사상이 온전히 실현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개인의 능력이나 인성발달상태와 관계없이 일류대학 졸업장, 집안 배경이나 부모의 직업 등에 의존하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이제 넘어서야 한다. 민주사회에 필수적인 상호신뢰감과 평등한 사회적 연대감을 키워나가야 한다. 한국인 집단의식을 인류의식 수준으로 높이고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해하고 상생할 때이다.
요약하지면, 이제 우리는 세계무대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모범적인 민주시민으로서 거듭날 때이다. 민주시민의식을 모두의 실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나를 살리고 서로를 살리고 우리 사회 전체를 사랑할 때이다. 한국인 모두 동학혁명 정신 속에 깊이 뿌리내린 생명존중과 평등사상을 다시 탐구하면 세상을 살리는 새로운 혁신전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빨리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국민과 민주사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깨어난 지도자가 한국 사회를 안정시키기 바라는 마음이다.
*도영인 님은 우송대 사회복지학 교수를 정년 퇴임했고, 현재는 Deep Change Inc에서 영성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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