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5일 미국에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선이 진행되었다. 최종적으로는 이미 재임 경험이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4년을 책임지게 되었다. 기후변화라는 측면에서 미국은 국제사회의 흐름보다 자국 내 정치적 대립의 해결이 더 어려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민주당 출신의 오바마 대통령이 탄소 오염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한 채 자국 내에서 기후 대응의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유엔과는 파리협정의 체결에 기여할 수 있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파리협정을 탈퇴하는 행보를 보였으며, 재임 기간 내내 반기후적인 정책들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지만, 이번에도 미국 내의 탄탄한 지지를 바탕으로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국제사회는 또다시 고탄소 회색 전망의 암울한 4년을 보내야만 하는 실정이다.
반면에 한국은 미국과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아무리 국내 정치적 대립이 심각하더라도, 기후변화라는 국제적 추세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만장일치의 합의를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우파 정당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으로의 정책 전환을 천명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 시국에 탄소중립을 선언했으며,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도 기후대응에 반대하지는 않고 있다. 혈맹 관계를 맺고 있는 한미 양국이 정작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서는 국제사회의 공동 구성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이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편으로 국내에서는 '지공주의(地公主義)'를 주창하는 학자들이 존재한다. 일반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일 수 있으며, 얼핏 보면 '지구 공동체 주의'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공동체(共同體)'와는 다른 한자가 사용되고 있다. 즉, 지공주의의 '공(公)'은 한쪽 편으로 치우치지 않거나 개인이 독점하지 않게 토지를 공평하게 소유한다는 의미인 반면에, 공동체의 '공(共)'은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뜻으로 차이가 있다. 정리하자면, 지공주의는 지구가 아닌 토지를 개인이 아닌 사회가 공동으로 소유해야 한다는 이론적 체계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 지공주의는 1879년 미국에서 발간된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의 저자인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주창함으로써 만들어진 철학 사조이다. 구체적으로는 토지로부터 얻는 불로소득인 지대가 개인에게 사적으로 귀속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토지 단일세를 제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부동산 투기 열풍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토지공개념(土地公槪念)'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지공주의의 철학을 체계화시키고, 이름까지 작명한 국내 학자는 경북대학교의 김윤상 교수이다.
이러한 지공주의는 토지의 개인적 소유권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들로부터 튼튼한 이론적 지지를 얻고 있다. 심지어는 근로소득세와 법인세를 포함한 모든 세금을 죄악시하는 경제학계, 특히 시카고학파로부터도 토지 단일세만큼은 바람직하고 좋은 세금이라는 동의까지 얻어내고 있을 정도이다. 이에 김윤상 교수는 '좌도우기(左道右器)'라는 전략까지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사회정의를 지향하는 진보 진영의 가치를 보수 세력이 비호하는 시장 메커니즘의 도구인 토지 단일세를 활용해 달성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결론적으로는 사회를 혁명적으로 크게 뒤바꾸지 않으면서, 지금의 사회경제 시스템 내에서 새로운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낸 것이다. 실제로 김윤상 교수는 현직에서 뿐만 아니라 퇴임한 지금까지도 평생을 지공주의라는 이상향을 구현하기 위해 좌도우기의 실천 전략을 끊임없이 모색해오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토지 단일세가 그렇게 단순히 도입될 수 없으며, 사회 전체를 바꾸는 대단히 큰 변혁을 요구하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한국의 토지공개념도 지공주의를 구현한다는 철학적 방향성에 기반해서 체계적으로 도입된 게 아니라, 부동산 파동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정부 재원 마련 등의 즉자적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강화 또는 쇠퇴해 온 게 사실이다. 최근에는 민주당에서조차 종합부동산세 폐지가 제안될 정도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대부분의 국가 정책이 철학적 토대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수립되기보다는, 당면했던 과제를 해결하는 형태로 구축되고 있다. 물론 이런 특성은 한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공통된 현실이다.
이처럼 오래된 지공주의 논란을 2024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출범과 더불어서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는 역시나 기후변화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를 중국이 만들어 낸 신종 사기라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부정해 온 대표적 기후 불신론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은 세계적인 기후 대응의 암흑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과연 21세기의 패권국가인 미국이 끊임없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상황에서, 지구공동체의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라는 긴 이름의 유엔 산하 조직이 2023년에 발간한 보고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8년 설립 이래로 단지 6차례의 종합 보고서만을 발간했던 이 국제기구는, 이번 보고서에서 지구온난화의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2050년 탄소중립 목표가 너무 장기적이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지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지구적 파국을 막고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30년 뒤의 장기 목표가 아니라 2030년 혹은 2040년까지의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모든 영역에서 전면적이고 급격한 변화가 요구됨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금의 사회경제시스템, 즉 석탄과 석유를 대량으로 소비해서 공장을 가동하고 돈을 벌어들이는 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 한편으로는 서울, 대전, 대구, 부산처럼 대도시 주변을 둘러싼 고속도로와 자동차 중심의 교통망도 보행자와 자전거 중심의 생태도시로 바꿔야 한다. 물론 문화, 관광, 교육, 예술 등의 모든 분야가 획기적으로 탈바꿈하지 않는다면, 2050년의 탄소중립은 달성되지 못한다는 경고가 내려지는 상황이다.
그러면 다시 지공주의로 돌아가 보자. 현행 시장경제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는 상태에서 토지 단일세만 도입해도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고 정의사회가 구현될 것이라는 주장조차 수십 년째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국가, 시장, 사회, 문화, 경제라는 모든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하지 않는다면, 탄소중립의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공공연하게 내려지고 있다. 과연 지공주의조차 실현되기 어려운 현실에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지구공동체주의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인류와 세계 각국의 정부는 문제가 닥치면, 어쨌든 해결해 나가고 있다. 예를 들면, 2020년 모든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놓았던 코로나 팬데믹도 그 전에 이미 많은 학자들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비하지 못해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극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도 아직까지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지만, 지구적 폭염과 재난이 늘어나면 그때는 인류가 발 벗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례 없는 폭염, 폭우, 태풍, 가뭄으로 기후난민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트럼프 신임 대통령과 유엔은 자연의 경고음을 무시하고 있다. 과연 얼마나 심한 문제가 만들어져야, 인류는 제대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까? 다만 우리에게는 기한이 정해져 있다. 즉, 과학자와 정치인들이 합의한 목표는 2050년의 탄소중립이다. 제발 미국인을 포함한 인류가 목숨을 잃지 않고, 기후 대응에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새로 임기를 맞이하게 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에게 예전 대선 캠페인의 홍보 문구를 인용해서 축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멍청아, 지구는 인류 공동의 자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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