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자동부의 조항, 설계는 이상적이었으나…

[국회 다니는 변호사 연재] 국회선진화법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오늘은 국회법에 대해서 한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국회법은 사실 독자분들의 관심을 끌만한 주제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정해진 '룰'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3명의 어린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팥빵을 2개만 나눠줄 수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러한 경험은 누구나 해보셨을 겁니다. 빵을 2/3개씩 쪼갤 수도 있겠죠. 그런데, 팥이 많이 들어가 있는 부위가 있기도 하고, 적게 들어가 있는 부위도 있을 수 있죠. 이러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분배에 이르는 과정에서 '공정한 룰'을 정하는 문제는 항상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룰을 정하는 이해관계자의 성향, 연혁, 순서와 절차 이런 모든 것들이 까다롭습니다. 한낱 이러한 사소한 문제에서도 '룰'은 어려운데, 복잡한 국가문제를 다루는 사안은 어떨까요.

오늘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바로 '예산을 어떻게 나누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잠시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과 국회법을 살펴보죠. 우리 대한민국에서의 예산을 편성하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바로 정부와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헌법 제55조, 제89조)

예산은 곧 그 정부의 색채이죠. 예산안에서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냐, 또 예산안에서 복지를 강조하느냐, 아니면 경제발전을 강조하느냐. 예산은 곧 정치라고 해도 다름아닐 것입니다. 정부가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많은 일 중에, 예산·재정은 매우 중요하죠.

정부가 예산안을 제출하면 결국 심의는 국회가 하게되는데, 이러한 국회의 예산안 심의·의결권한은 곧 국가의 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의미합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 '빨간 펜'을 댈 수 있는 것이 국회죠.

문제는 우리나라의 헌법에서 국회는 '감액할 권한'만 있을 뿐, 증액을 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국회의원이 어떠한 특정 예산사업을 문제삼는 것은 가능한데, 자신이 투영하고 싶은 예산사업을 반영하려면 정부와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제57조) 저는 과거에 사법시험을 볼 때 암기하다시피 이 조문을 외웠는데, 실제 국회에 와서 일을 해보니, 이 조문은 매우 강력하게 정부와 대통령의 권한을 뒷받침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국회의원은 대통령보다는 정당성이 약한 권력이고(받은 투표수가 다르다는 점만 고려해볼 때) 정부나 대통령의 잘잘못을 감시하는 의미에서 감액권한만 부여하고, 증액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긴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문제는 전혀 이렇게 돌아가지 않죠. 국회의원도 자신이 받은 국민으로부터의 지지를 감당하기 위해서, 내지는 그 정당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존재입니다. 다음 4년후에 내가 국회의원으로서 다시 당선되려면, 당연히 자신이 소속된 지역의 현안을 처리하거나, 정당의 이념을 실현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실제로는 증액이 필수적이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죠. 정부는 가급적 대통령과 현 정권이 바라는 색채를 실현하기 위해 최대한 감액을 막아야 하는 것이고, 국회의원은 감액은 하되 자신이 원하는 사업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실제 각 상임위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의 타협이 있는 거죠.

그런데 이러한 타협이라는 게 생각보다 원만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한국과 같이 정치적으로 양극화가 극심한 사회일수록 타협은 더 어렵죠. 예를 들어 특정인을 타겟팅한 예산은 무조건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과 영부인 관심예산이라더라'는 말이 있는 예산이라거나, '청와대 재단 신설', '과학기술 R&D 감액' 같은 예산안 내용은 무조건 막을 수 밖에 없는 거죠.

문제는 이렇게 감액을 하고 나면 정부·대통령실에선 '야당에서 하는 것을 들어주지 말라'. '가급적 야당 관련 예산은 무조건 삭감하라'는 지침을 내리죠. 예를 들면 지역화폐 예산 같은 경우입니다.

이렇게 싸울 게 많다 보니, 과거에는 국회가 해를 넘겨 예산안 처리를 하는 것이 부지기수였습니다. 통상 12월31일이면 집이든 어디서든 제야의 종소리를 듣지 않습니까? 저도 국회의원실에 있던 2012~2013년에는 제야의 종소리를 의원회관에서 듣고, 쪽잠을 자며 예산안 의결을 지켜봤습니다. 예산안은 원칙적으로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게(정확히는 회계연도 개시 30일전, 헌법 제54조)되어 있는데 이를 어기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거죠.

이래서 '국회선진화법'이 등장하게 됐습니다. '적어도 예산안과 관련된 예산부수법안은 11월30일에는 처리하게 하자, 그 기간이 넘어가면 예산안과 관련 부수법안은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되게 하자, 그리고 아무리 늦어도 12월2일에는 예산안 의결을 하자.' 이것이 예산안과 관련된 국회선진화법 내용입니다.

제도의 설계까지는 참 이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시행을 해보니, 정부기관들이 심의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시한'만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11월 30일 지나면 어차피 국회의원들이 뭐라 한들 정부안은 테이블 위에 올라간다. 정부는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돼.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예산 반영하려면 정부한테 굽신거릴 수 밖에 없는데 어떡하겠나'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편리한 국회선진화법이나, 반대로 야당 입장에서는 예산안 협상과 관련해 매우 불리한 위치가 됩니다. 만약 과반이 못 되는 경우에는 존재의미가 없어지는 것이고, 과반이 넘는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정부·여당의 의사를 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야당이 예산안을 부결시킬 수는 있지만, 이런 경우 준예산(전년에 준해서 새로운 비목의 신설없이 예산안 편성) 편성으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도 통상 하긴 하지만, 최근에 준예산으로 간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국회의원들도 자기 '일'을 해야 하니까,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예산안도 예산안이지만, 예산안 부수법안인 세법 등은 매우 정치적 내용들이 많습니다. 특히 정부 기조가 증세냐 감세냐에 따라서 야당에서 대응하는 기조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이번 정부와 같이 감세 기조가 뚜렷한 정부에 대해 야당이 반대 입장을 갖고 있다 해도, 11월 30일이면 모든 법안이 전부 본회의로 넘어가니 아무리 반대 입장을 표명한들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고 마는 겁니다.

이러다보니 예산안은 법률안 의결이 없으면 상정되지 못하게 하자는 법안이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야당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나, 여야 간 대치국면이 국회선진화법 수정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지난해 12월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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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박지웅 변호사는 현재 법무법인(유) 율촌의 변호사로 재직중입니다. 국회의원 비서관, 국회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역임하며 국회 입법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연구하며 오랫동안 여러 입법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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