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퇴출 시대에 한강을 기념하는 법

[이관후 칼럼] 서점 가득한 시골 책마을을 꿈꾸며

광주광역시가 멋진 결정을 내렸다. 강기정 시장은 당초에는 정부 지원을 받아 문학관을 짓는 방식으로 노벨상 수상을 기념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꿨다. 강 시장은 "'전쟁에 주검들이 실려 나가는 데 무슨 잔치를 여냐'는 한강 작가의 말을 가슴에 담고 성취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방법을 조심스럽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념관을 짓는 대신, 광주시는 매년 시민 1명이 1권의 책을 바우처로 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한다. 사실 노벨상 수상 이전부터 진즉 필요한 일이었다. 기본소득이니 지역화폐니 하는 말들이 익숙해질 정도의 '선진국'인데, 모든 시민들에게 도서상품권을 줄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 실은 아쉬운 일이었다.

이 바우처는 기존의 도서상품권과 다르게 꼭 '책만' 사게 하면 좋겠다. 참고서가 아니라 문학과 역사, 철학, 예술, 사회과학 분야의 책이면 좋겠다. 종이책이든 이북(e-book)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꼭 책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시민이 한 권씩 책을 사면, 매년 광주에서 150만 권의 책이 팔리게 된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 바우처는 본인이 먼저 책을 정해서, 한 권씩 살 수 있도록 하고, 10월까지 책을 사지 않고 남은 부분은 이전에 산 사람들이 한 권씩 더 살 수 있게 하고, 그래도 남으면 12월에 한 권 더 사고, 남은 건 좋은 책을 사서 도서관에 기증한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건물도 물론 필요하다. 광주시는 지금 짓고 있는 광주대표도서관과 하남도서관,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국회도서관 광주분원 같은 공공 도서관을 확대하고, '광주 인문학 산책길'을 조성하고, 한강 작가의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를 이름으로 한 북카페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독립서점 활성화도 하고 '2026년 전국도서관 대회' 개최도 추진한다고 한다. 좋은 일이고 자랑스런 일이다.

광주시교육청과 전라남도교육청도 가만있지 않았다. 한강 작가의 수상을 기념해서, 11월에는 '제1회 광주 독서교육 우수학교 공모'를 해서 초·중·고등학교 15교를 선정한다고 한다. 전남도립도서관에서는 50개 학교가 참여하는 '나도작가 프로젝트 학생 책 출판 작품전시회'도 열린다.

광주와 전남다운 결정들이다. 작가의 기념관을 크게 짓는 것은, 애초에 민주화의 성지이자 예향임을 자랑하는 도시가 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한강 작가가 바라지 않을 일이었다. 기자회견마저 거절한 작가는 저 앞에 가 있는데, 수상을 기념하려는 방식은 작가가 그토록 꺼려하는 70년대 방식이 되어서는 곤란하고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우리는 한강 작가를 생각하며 모든 시민이 일 년에 한권씩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도시라야 한강의 고향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는 이번에 광주다웠다.

남도의 끝 장흥을 아십니까

광주는 한강 작가가 태어난 곳이지만, 한강 작가의 문학적 배경, 그리고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고향이자 집필실이 있는 전남 장흥 역시 이번 수상을 계기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남도의 끝자락 장흥을 가 본 사람은 알지만, 이곳은 산, 들, 바다가 모두 제각기 아름다우면서도 조화로운 곳이다. 목포에서 여수·순천을 오가다 보면, 보성·벌교에 들어가기 전에 기이할 정도로 신비감을 주는 이 장흥을 지나게 된다.

장흥 읍내는 뒤로 맑은 산을, 앞으로는 들을, 그 너머로 고흥을 마주하고 득량만과 보성만에 접한다. 한여름 시원하게 소나기가 퍼붓고 지나가서 구름이 제암산을 휘감으면, 빗물에 젖은 푸른 들녘 너머로 잔잔한 바다가 반짝인다. 맑고 감미롭고 정갈하다.

섬진강만 남도의 강이 아니다. 탐진강은 장흥을 가로질러 유려하게 흘러서 강진만에 이른다. 요즘 탐진강변에서는 매년 정남진 물축제가 여름의 열기를 식힌다. 보성과 벌교만 알고 장흥을 모른다면, 남도의 이쪽 편을 반만 아는 것이다.

장흥 앞 바다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회령포다. 1597년 음력 8월 18일, 망가진 몸으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된 이순신이 전라도에 돌아와서, 칠천량에서 깨어지고 남은 12척의 배를 수습한 곳이 여기다.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은 사실상 전멸했고, 이제 백여 척이 넘는 왜선이 서해를 돌아가 한양에 닿기만 하면, 조선은 곧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손에 떨어질 것이었다.

조선이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를 막아낼 유일한 희망은, 몸도 마음도 배도 성치 않은 이순신과 한 줌의 조선 수군이었다. 회령포에서 겨우 수습한 배들을 몰아 이순신은 명량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한 달도 채 못 된 음력 9월 16일,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울돌목에서 133척의 왜선을 격퇴하고 나라의 운명을 지켰다.

이 장흥에서 소설가 한승원이 나서 자라, 장흥고등학교 학생 때 송기숙을 만나 교내잡지 <억불>을 창간하고 처음 수필을 실었다. 서라벌예술대학에서 김동리를 만나 소설을 썼다. 올해 85세인 이 작가가 글을 써서 받은 상이 한국문학소설상, 한국문학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서라벌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동인문학상, 순천문학상이다. 그리고 그 딸도 소설가인데,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어디 상이 대수랴. 다만 이만한 작가 부녀를 낳은 고장이니, 왜 기념할 일이 없겠는가. 광주가 광주의 방식으로 한강을 기억한다면, 장흥은 장흥답게 한강의 부녀를 기억할 방도가 있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도서관과 독립서점이 가득한 장흥

영국에는 '헤이온 와이(Hay-on-Wye)'라는 작은 서점 마을이 있다. 헤이온 와이는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경계에 있어서 런던에서 차로 3시간이나 걸린다. 우리로 따지면 읍보다도 작은 면 소재지 정도의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서점들이 가득하고, 노벨상 수상자들이 기꺼이 이곳을 찾아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한강도 그곳에 갈 것이다.

그런 책마을이 이곳 남도의 장흥에 생기는 일이 어려운 왜 일일까. 장흥 곳곳에 작은 도서관들이 세워지고, 그 곁에 정겨운 숙박시설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아서, 전국에서 책을 읽으러 오는 사람들이 묵고, 이야기하고, 산책하는 장흥이 되는 일이 왜 불가능할까.

장흥에 자리잡을 도서관들이 삐까뻔쩍 하지 않고, 기존 동네의 오랜 창고나 폐가, 학교를 리모델링해서 만들면 더 좋을 것이다. 이 도서관들을 장흥군청이 직접 다 운영해야 한다면 큰일이다. 그러나 전국에 많은 독립서점들이 있다. 새로이 독립서점을 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도서관과 서점을 하도록 하고, 전남도와 장흥군은 지원을 잘 하면 된다. 그런 도서관과 서점이 열 개, 스무 개가 있으면, 사람들은 기꺼이 책을 읽으러 장흥에 갈 것이다.

동네마다 있는 작은 도서관들을 잇는 자전거길과 오솔길이 생기면 더 좋겠다. 멀리서 온 사람들은 차를 읍내에 놓고, 자전거와 작은 전기차로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들을 잇는 것은 걷기 좋은 오솔길이다. 그 길에는 책의 주인공 이름이 하나씩 붙어도 좋겠다. '동호의 길'(소년이 온다), '영혜의 길'(채식주의자), '경하의 길'(작별하지 않는다). 그 길들을 다시 '한승원의 길', '한강의 길'이 잇는다.

길가에는 철마다 들꽃이 하늘하늘 피고, 책을 읽은 사람들은 그 길에서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지나는 사람들과 아이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걷고 웃으며 삶을 쉬어간다. 장흥의 산과 들을 지나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책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갈 것이다. 제주 올레를 걸은 사람들이, 이제는 배를 타고 장흥으로 와서 마저 책을 읽고 갈지도 모르겠다.

그 길에는 사람들이 쉬어갈 만한, 예전 문 닫은 동네 수퍼를 다시 연 북카페가 있어도 좋겠다. 북카페의 이름도 정해봤다. 산멍, 물멍, 책멍, 들멍, 바다멍, 하늘멍. 글멍, 구름멍, 별멍, 달멍.

예전에, 헤이온 와이는 개인과 가족단위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았는데, 요즘에 기업들의 워크샵 장소로도 각광을 받는다. 중요한 기획 회의를 해야 할 때,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브레인스토밍이 필요할 때, 긴장을 풀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런던의 회사들은 이곳을 선택한다.

최근에는 강가에 트래킹 코스도 생기고, 작은 다리에는 클라이밍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생겼다. 오전에 책을 읽은 사람들이 오후에 강에서 카약을 즐기기도 한다. 마을의 한 가운데 삼거리에서는 미슐랭 마크가 입구에 붙은 음식점도 만날 수 있다. 낮에는 자유롭게 서점을 돌며 책을 읽고, 강변과 들판을 산책하다가,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책이 사람을 부르고, 사람이 동네를 살렸다.

산, 들, 바다가 모두 있는 장흥이 이리 못될 것이 없다. 헤이온 와이의 뜻은 '와이(Wye)'강에 있는 '헤이(Hay)' 마을이라는 뜻이다. 우리로 따지면 '탐진 곁 장흥'이다.

"우리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기념해서 군 전체를 도서관으로 만들었습니다."

장흥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아름답지 아니할까. 한승원과 한강의 고향, 장흥답지 아니할까.

한강을 기억하는 법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 그것도 아시아에서 첫 여성 수상자를 낸 나라의 문학적 현실, 도서관과 서점의 상황은 초라하고 부끄럽다. 1년에 한 권 이상 책을 읽는 독서 인구는 2013년 62.4%에서, 2023년 48.5%로 감소했다. 1인당 독서 권수도 17.9권에서, 14.8권으로 줄어들었다.

불과 얼마 전인 9월 27일, 대전과 충청권의 대표적 향토서점 '계룡문고'가 29년 만에 문을 닫았다. 대전시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지역서점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고양시의 관내 작은 도서관 5곳이 올해 폐관될 예정이다. 2022년 마포구는 관내 작은 도서관 9곳을 모두 폐관하려고 했었다.

이런 시대에 한강을 기억하는 법은 무엇일까. 한강의 이름을 딴 건물과 상과 이벤트를 만드는 것은 온당치도 않고 시대에도 부끄러운 일이다. 소위 '지역 경제'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작가 한강이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은, 서촌에서 '책방 오늘'이라는 독립서점을 꿋꿋이 운영하는 것이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글'은 정보를 전달한다. 글을 한 줄 한 줄 읽으며 내 눈을 거쳐 뇌에 들어와 엮이는 것은 '정보'다. 반면 책은 그 정보들이 만나 '세계'로 구축된 것을 말한다. 글자는 닫힌 책 안에 갇혀 있다. 그러나 그 책을 펼칠 때마다 새로운 페이지가 열린다. 책은 펼칠 때마다 다른 페이지와 다른 글들이 조합하여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펼쳐낸다. 책을 읽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바로 책을 통해 세상과 타인을 책으로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한겨레21 1533호. <엄기호의 이야기 사회학> '저들의 말이 시시하고 천박한 이유')

한강을 기억하는 법은, 책을 한 권 더 사고, 우리가 읽고, 아이들에게 읽히고, 그것에 대해 사색하며 산책하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내 삶에 대해 말하고, 그 언어들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일, 또 살아내는 일이다. 슬픔과 기쁨에 눈물 흘리고, 부끄러운 것을 부끄럽다고 말할 수 있고,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알고, 언젠가 모두 사라져야 함을 인정하고, 그리고 또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한강을 기억하는 법은, 광주와 장흥을 독서의 도시와 도서관의 고장으로 만드는 일이다. 도서관 마을로 가득한 장흥, 모든 시민이 책을 읽는 광주다. 비단 광주와 장흥에 그칠 일도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한강을, <소년이 온다>를, <채식주의자>를, <작별하지 않는다>를 기억하는 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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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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