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과의 '독대'가 윤석열에게 '독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이모저모] 한동훈은 '나경원의 공소 취소 요구'를 폭로한 적이 있다

전세가 역전된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먼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독대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여권 정치판의 본질은 '김건희 스캔들'을 매개로 한 투톱간 권력투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생은 실종됐다. 유권자는 앞으로 용산에서 벌어지게 될 '궁중 혈투'를 지켜봐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먼저 한동훈 대표의 상황을 보자. 유승민 전 의원의 지적대로 한동훈 대표는 2022년 5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윤석열 정부의 법무 행정을 총괄하는 법무부장관이었다. 대통령은 지난 5월 "도이치니 하는 이런 사건에 대한 특검 문제도 지난 정부 한 2년 반 정도, 사실상 저를 타깃으로 검찰에서 특수부까지 동원해 정말 치열하게 수사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 발언은 문재인 정부나 언론인들이 아니라 한동훈 대표를 향한 것으로 읽어야 한다.

대통령의 의문은 그 '도이치니 하는 사건'을 왜 한동훈 장관 시절 결론을 맺지 못했을까 하는 지점에 있었을 것이다. 유 전 의원은 한 대표를 향해 "자신이 법무부장관이었던 시기에 김 여사의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기소도 안하고 뭉개고 있다가 이제 와서 사돈 남말 하듯이 검찰에게 국민이 납득할 결과를 내놓으라니. 유체이탈도 이런 유체이탈이 없다. 양심불량이다"라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검찰이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이치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한 언론 보도들, 검찰 수사 내용들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 새로 수사해 밝혀낸 것들이 아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에 '부하 검사'들이 수사한 것들이고 주가조작 범죄자들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들이다. 이미 존재한 수사 기록을 2년 반 뭉개온 법무부장관이 갑자기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언급하는 건 유 전 의원 말대로 민망한 일이다.

바뀐 것은 딱 하나, 한동훈 대표가 처한 '상황'이다. 갑자기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배경엔 정권과 당의 지지율 동반 하락, 그리고 한 대표 대선주자 지지율 하락이 있다. 한 대표는 당대표가 된 후 윤석열 대통령에게 두 차례 독대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만찬 초청 명단에서도 배제되는 굴욕도 겪었다. 한 대표와 당의 입장에선 총선이 끝난 후 쪼그라든 의석수를 겨우 건사해 대통령 부부 특검법을 두 번이나 부결시키려 안간힘을 썼는데, 대통령은 지금 '갑'의 위치에서 '부하 검사 한동훈'을 대하고 있는 셈이다. 검찰 총장 시절 '비윤석열 사단'을 '왕따'로 만들었던 딱 그 기법이다.

당심과 민심을 얻고 선출된 대표 직에 올랐지만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굴욕적이다. 대통령이 인정하지 않으니 당 대표의 영이 설 리가 없다. 한 대표는 전략을 바꿨다. '명품백 사건'을 내세워 대통령을 누르려 한 건 철저히 실패했다. 한 대표는 이제 대통령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김건희 도이치 주가조작 사건'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은 어떨까. 지난 5일 '쌍특검법' 재표결 때 108석 국민의힘 내에서 4표의 이탈표가 나왔다. '매직 에이트(8표)'까지 네 표만큼 거리가 줄었다. 특검이 대통령의 턱 밑까지 올라온 셈이다. 여기에 한 대표가 '친한동훈계' 구축을 위해 보란듯 의원 25명을 대동하고 만찬을 열었다. 대통령이 만찬에서 한 대표를 배제한 데 대한 답변이자 무언의 시위였다. '영원한 부하'로 알고 한 대표를 대해 왔던 대통령 입장에선 모골이 송연해질 일이다.

원래 대통령은 한 대표를 대표직에서 끌어내리려 했을 지 모른다. 실제 그는 두 명의 당대표를 찍어낸 전력이 있다. 대통령의 힘이 여당 대표보다 세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총선 패배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지금 대통령의 지지율은 당 지지율을 한참 하회하고 있다.

이미 당이 대통령의 우위에 섰음에도 대통령에게 쩔쩔맸던 이유는 대통령이 가진 실질적 '권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당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두 팔을 걷고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선거 사범의 공소시효는 10월 10일부로 끝났다. 여의도의 국회의원들은 더 이상 검찰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두려울 것이 없어진 한동훈계 의원들은 용산의 지리멸렬에 지쳐 하나 둘 '양지'로 나오게 될 것이다. 10월 10일을 기점으로 이제 한동훈계가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대통령은 총선에서 패배한지 반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현실을 깨닫고 있다.

'독대'는 대통령에게 치명적인 '독배'가 될 것이다. 좋은 사례가 있다. 한 대표는 지난 2019년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과정에서 나경원의 '공소 취소' 요구를 폭로한 적이 있다. 한 대표는 생중계되는 방송 토론회에서 "나 후보가 저에게 본인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를 취소해 달라고 부탁하신 적이 있으시죠? 저는 거기에 대해 '그럴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라고 말했다. 토론장이 발칵 뒤집어졌다. 정치 초보 '0선'의 한동훈 대표가 도덕적 우위를 점하는 순간이었고, 생방송 중에 기습을 당한 5선 베테랑 나경원 의원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이것이 한동훈식 권력 투쟁이고 한동훈 식 정치다.

지금 여권의 투톱,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독대'의 목적이 '민생'이나 '경제', '안보'의 문제가 아님을 유권자들은 잘 알고 있다. 유일하게 변한 건 그들이 처한 상황일 뿐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와 버린 '김건희 스캔들'을 매개로 한 여권 투톱의 권력 투쟁은 이제 본격화됐다.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는 자신이 만들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두 권력자 앞에 섰다. 이 특설링은 윤석열, 한동훈, 김건희 세 명의 권력자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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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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