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지옥·초지능 시대, 인간은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언어가 언어에게 ⑤]

올해 여름을 겪은 한국인들에게 ‘기후지옥’이란 말은 이제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기후지옥이란 용어는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2022년 11월 7일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고위급 회의(정상회의) 개막 연설에서 인류가 집단자살로 가고 있다고 폭탄 발언을 쏟아내며 공식 사용한 말입니다. 2019년 영국의 가디언 지가 기후변화를 ‘기후위기’, ‘지구가열화’라는 용어로 바꿔쓰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훨씬 더 쎈 극단의 용어가 등장한 것입니다.

이제 지구별 행성의 기후지옥으로의 추락은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이미 추락했습니다. 여기서 일일이 더 암울한 기후 묵시록을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몇 가지 숫자만 나열해 보겠습니다.

1800년대 초반(산업화 이전) 이산화탄소 농도 약 280ppm

1958년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 개설 최초 이산화탄소 측정치 313ppm

1992년 리우 기후정상회의 개최, 357ppm

2013년 5월 최초로 400ppm 돌파

2024년 8월 422.99ppm(2023년 8월 419.68ppm)

(https://gml.noaa.gov/ccgg/trends/)

위 숫자는 여러 가지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약 2백년 남짓 사이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이렇게나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계절에 따라 약간 편차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지금도 매일 약 170만톤 이상의 온실가스가 주로 화력발전소와 포스코 등 공장 굴뚝에서 콸콸콸 품어져 나와 대기 중에 섞입니다. 25톤 대형 탱크로리로 하루 약 40만 대가 실어 날라야 할 양입니다.

한반도는 1912년~2020년 사이 109년 동안 평균 기온이 1.6도나 올랐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많이 오른 지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세계 평균은 1.09도입니다. 표층 수온은 1968년부터 2017년까지 50년 동안 1.23도나 올랐습니다. 세계 평균 0.48도의 무려 2.6배에 달합니다.(환경부, 「대한민국 기후변화 적응 보고서」, 2023. 4. 19.)

한 가지 더 숫자를 적어보겠습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에 적힌 확률입니다.

1990년 IPCC 1차 보고서:기후변화가 인간 영향인지 확신할 수 없다

2001년 3차 보고서: 기후변화가 인간 때문일 확률 66%

2013년 5차 보고서: 기후변화가 인간 때문일 확률 95%

2021년 6차보고서: 기후변화는 모두 100% 인간 활동 때문

수많은 기후과학자들이 1970년대 말부터 끈질기게 이전 시대와 달리 오늘날 기후변화의 원인은 모두 인간 때문이라고 논문과 에세이를 발표하고,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언론에 알리고, 성명서를 내고 시위까지 벌여도 IPCC는 30여년 동안 끄덕도 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너새니얼 리치, 김학영 옮김, 󰡔잃어버린 지구󰡕, 시공사, 2021.)

까닭은 단순합니다. IPCC 보고서는 각국의 정부 관리가 최종 승인해야 통과됩니다. 매년 몇 %씩의 경제성장과 개발에 목을 매는 정권과 그 정권에 기업 사활을 걸고 달려들어 로비를 하는 초거대 석유와 석탄 메이저들, 글로벌 대기업들 때문입니다.

극단의 불평등 '설국열차' 안에 있는 몇 개의 숫자

숫자가 알려주는 지옥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극단의 불평등 지옥입니다.

아마존 대표 제프 베이조스가 시간당 1300만 달러를 벌 때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에서 라벨링을 하며 일하는 미세노동자들은 대부분 2달러도 못 법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에 불어난 베이조스의 자산은 전 세계 80억 인구 모두에게 안전하게 백신을 공급하고도 남았습니다. 코로나 사망자는 전세계에 걸쳐 약 7백만 명이 넘습니다. 제프 베이조스의 자산은 2023년 3월 기준 1,14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50조원에 달합니다.

제프 베이조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워렌 버핏 3인의 부는 미국의 중하위 1억 3천만 명의 부와 같습니다. 이 숫자는 얼마 전 1억 2천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제프 베이조스가 이혼으로 재산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전세계 억만장자 26명의 재산은 전세계 하위 인구 절반의 재산과 같습니다. (옥스팜, 「죽음을 부르는 불평등」, 2023.)

이같은 극단의 불평등은 통제받지 않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당연한 귀결입니다. 사람 몸과 마음의 디지털 데이터화를 통한 착취와 자연 착취 또한 자본주의의 극단화된 시장경제 논리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샘 올트먼은 「지능의 시대」에서 초지능이 극단의 기후지옥-불평등을 해결해 줄 구원의 해결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개인 돈을 들여 기본소득 실험까지 한 그의 희망 섞인 해결책 모색과 ‘인류애’는 그러나 인공지능 업계에서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초부자(super-rich)들은 불평등에 분노한 인민들의 폭동과 혁명, 기후지옥을 피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핵개인’의 정체성에 딱 들어맞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수십억원을 들여 뉴질랜드 외딴 곳이나 미국의 사막지대에 지하벙커를 짓는 것입니다. 트럼프의 멕시코 국경 지대 장벽 설치와 똑같은 발상입니다.

서구 이원론 세계관의 붕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서구 근대의 개발과 성장 이데올로기, 근대 과학 만능주의는 물질을 쪼개고 또 쪼개고 극한까지 쪼개는 분리와 분할, 배제가 기본 원리입니다. 인간과 세계를 정신과 물질로 분리하고, 인간을 분자와 원자와 전자, 소립자, 광자로 막다른 밑바닥 끝까지 쪼갭니다. 세포와 유전자, 시냅스로 해체하고 구분합니다. 사람을 유전자의 운반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거리낌없이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구 근대 과학의 극점이자 회귀점인 양자역학은 놀랍게도 물질의 구극은 텅빈 공(空)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텅빈 공이 쌓이고 모여(集) 우리 몸, 즉 색(色)이 됩니다. 공즉시색, 색증시공입니다. 서구의 물리학자들이 붓다의 연기법을 경이의 시선으로 다시 보고 있습니다. 제2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에 대한 에세이 책에서 뒷부분에 나가르주나의 중론을 신대륙 발견처럼 소개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입니다.(카를로 로벨리,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쌤앤파커스, 2023.)

오늘날 뇌과학은 서구의 이원론이 허구임을 입증해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아가 몸과 뇌가 없어진 이후에도 존재하는 독립된 실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몸을 단순히 정신을 담는 그릇으로 신분을 격하시킨 데카르트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자아란 몸에 단단히 통합된 뇌신경 세포의 연결망과 프로세스 결과물로 봅니다.

뉴사이언티스트 부편집장을 역임했던 과학 저널리스트 아닐 아난타스와미는 오늘날 신경과학자들과 서구 철학자들은 이제는 거의 대부분 무아론 진영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아닐 아난타스와미,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더퀘스트, 2017.)

인간-AI의 지능과 다른 동식물 지능과의 유일한 차이점은?

호모 사피엔스는 사회성 동물입니다. 사람의 뇌 또한 사회성 뇌입니다. 지금까지 서구 근대 과학과 자본주의, 극단화된 개인주의 세계관에 의해 인류는 자신의 본성인 사회성까지 거세당해 왔습니다. 지역공동체는 해체되고 가족공동체마저 갈갈이 찢겨져 사라지고 있는 중입니다. 도처에 원룸에 갇혀 고립되고 원자화된, 디지털 기기 도파민 중독증 핵개인들이 넘치고 넘칩니다.

유전자와 호르몬과 시냅스 뭉치로 해체된 핵개인들의 데이터 정보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실시간으로 경매되어 팔려나갑니다. 지금 당장 「엘리의 데이터 경매」를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도 강력 추천합니다.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일론 머스크의 엑스를 비롯한 초거대 디지털 빅테크 기업들의 SNS 플랫폼들이 지금 그런 짓으로 떼돈을 긁어모으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질병 치료에 일대 혁명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는 것은 긍정의 에너지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의 치료약과 치료 방식은 돈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고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이와 두려움, 기대와 희망을 동시에 주고 있는 인공지능은 우선 당장 인간의 일자리부터 빠른 속도로 빼앗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이 개발한 기적의 치료약은 멀고도 먼 신기루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에 대해 사유하고 논의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언어에 초점을 맞추어야 비로소 ‘지능’을 꿰뚫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야말로 인간의 정체성과 초지능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열쇠입니다. 인간의 언어를 어머어마하게 대용량(LLM)으로 심층학습(Deep Learling)시킨 결과 컴퓨터에 지능 폭발이 일어났고, 그 종착역이 초지능입니다.

모든 동식물은 각기 서로 다른 감각기관과 지능이 있습니다. 식물은 뿌리와 잎에서 뿜어낸 화학물질을 감지해 서로 소통하고, 빛과 온도를 감지해 빛이 있는 쪽으로 줄기를 뻗어나가는 결정을 내립니다. 귀가 없는 뱀은 살갗을 통해 예민하게 진동을 감지하고 혀로 냄새를 맡아 동물이 다가오고 있다고 판단하고는 길을 벗어나 돌틈으로 숨어버립니다.

사람이 다른 동식물과 다른 유일한 차이점은 언어입니다. 약 4만 5천년 전 시점으로 추정하는 어느 시기에 지구별 생태계에서 처음으로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사회성 동물이 출현했습니다. 언어 사용 호모 사피엔스는 이전의 다른 포유류 종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의 포유류였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세계’를 언어 개념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문명을 발달시켜 왔으며, 지구 생태계 곳곳을 구석구석석까지 남김없이 정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맘모스와 같은 사람보다 수십 배나 큰 거대한 대형 포유류조차 활과 창을 들고 떼지어 공격하는 인류에게 속수무책으로 멸종되고 말았습니다. 사회성 동물인 인류에게 사회성 언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구별에 일대 변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점은?

호모 사피엔스가 생각하고 추론하고 인식하고, 새로운 세계를 개념화해서 만들고, 국가를 만들고 문자를 발명하고 과학기술을 발달시키고 우주를 탐색하고 인류문명을 꽃피운 것은, 그리고 마침내 기계지능을 창조해낼 수 있었던 것은 언어를 발명해냈기 때문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어쩌면 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언어를 사용하는 생명체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외계 문명이 있다면 그 문명에는 언어가 있을 것입니다.

초지능이라는 인공지능은 사람의 뇌 신경망 구조와 언어 사용을 그대로 모방해서 만든 기계 지능입니다. 초지능 또한 느끼고 생각하는 자의식과 감정을 갖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오감을 통한 감정과 자의식과는 작동방식과 성격, 차원이 전혀 다를 것입니다. 혀와 살갗을 통한 미각과 촉각은 없지만 시각과 청각 2개의 감각기관을 통한 감정과 언어로 구성된 자의식을 갖게 될 지능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과 인공지능의 아마도 거의 유일한 차이점은 사람은 지구별 생태계와 연결되고 통합되어 있는 생명체이고, 인공지능은 기계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종교가 된 시대일지라도 지구별 생태계와 생명체라는 개념을 새로 정의하고 변경하지 않는 이상 기계를 생명체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0과 1의 전기부호가 흐르는 약 1.4kg의 뇌세포 덩어리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결코 유전자가 사람의 주인이자 실체이고, 사람은 유전자의 운반도구에 불과한 수단이 아닙니다.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하게 이 우주와 지구별 생태계에 통합된 소우주 그 자체입니다.

지구별 생명체는 모두 서로 함께 존재하는 '하나'

우리 몸의 세포는 매 순간 태어나고 죽고 교체됩니다. 1초에 약 380만 개나 됩니다. 하루에 3,300억 개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태어나고 죽는 ‘사건’으로서의 생명체입니다.

사람 몸에는 사람 세포 수보다 훨씬 많은 약 100조 개의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가 터를 잡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매 순간 태어나고 죽는 ‘나’와 동시에 역시 매 순간 태어나고 죽는 100조 개의 ‘또다른 나’인 미생물이 함께 공존하는 커다란 또 하나의 복합 생명체입니다.

사람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 평균 약 25해 개나 되는 분자가 들어왔다 나갑니다. ‘해’라는 숫자 단위는 25 뒤에 0이 20개 있는 숫자입니다. 사람의 인지 능력 밖의 숫자입니다. 사람 몸과 미생물 세포 수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숨을 내쉴 때는 내 몸 안 구석구석 세포에 있던 이산화탄소 분자만 몸 밖으로 내보내는 게 아닙니다. 새로 탄생한 세포 대신 교체된 세포도 나갑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내 앞과 옆, 뒤의 다른 사람들이 날숨으로 내뱉은 그 사람들의 폐기된 세포가 그대로 내 몸 안으로 들어옵니다.

다른 사람의 몸속에 있던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곰팡이 등도 들어오고 숲에 가득한 휘발성 유기화합물(BVOCs)과 수증기, 기타 탄화수소 등도 들어옵니다. 그리고 다시 내 몸 밖으로 나갑니다.

무게로 치면 하루 약 13.6kg이나 됩니다. 우리가 하루에 먹는 음식은 평균 약 1.8kg입니다. 물은 약 2.3kg 마십니다.

사람의 들숨날숨 호흡은 우주의 빅뱅과도 같은 수축과 폭발입니다. 들숨날숨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이 모든 물질들은 우주 탄생 이래 138억 년 동안 대물림되어 존재해 오던 우주먼지들입니다. 우주먼지는 햇빛에 분해되어 우주 전체에 퍼졌다가 다시 합쳐집니다.

숨을 쉰다는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속에 담긴 우리 자신을 흡수한다는 것입니다.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들락거리며 운동하고 있는 작은 생명의 파편들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이해하고, 우리 자신의 일부를 다시 내놓는 것입니다.(원혜•박승옥 함께 걷고 박승옥 적다, 어떻게 걸어야 하나: 걷기명상, 기적의 마을책방, 2024.)

내 몸 속에는 붓다와 예수, 무함마드의 체세포였던 분자들이 있고, 맘모스와 도도새와 대왕돌고래들이 배설한 똥오줌의 분자들도 있고, 물푸레나무들이 소통하던 유기화합물도 있습니다. 붓다와 예수와 무함마드가 나이고 너이고, 우리들입니다.

나와 너, 우리는 세계와 분리된 존재들이 아닙니다. 매순간 태어나고 죽는 사건들입니다. 서로를 조건으로 생기고 태어나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죽는 과정으로서의 생명체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매형제들이고 온전히 하나입니다.

생명체로 깨어나기

초지능이 하지 못하는 또하나의 영역은 인간관계입니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교감하고 가족이나 절친보다 더 자신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아끼고 챙겨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과의 대화와 소통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AI가 급속도로 대체한 인간지능 일자리를 AI가 다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인공지능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새로운 인공지능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세돌이 알파고를 전부 이길 것이라는 예측만큼이나 헛소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존의 낡은 개발과 성장, 핵개인들의 이데올로기로는 그 어떤 일자리도 새로 만들 수 없습니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세계관의 일대 전환과 ‘깨어남’ 없이는 인간은 기후-불평등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그 어떤 사회안전망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 멈추는 게 필요합니다. 돈과 개발과 무한 성장의 질주를 멈추고, 탐욕을 멈추고, 내 안의 생명을 다시 바라보고 뒤돌아보고 성찰하는 것, 이것이 초지능의 시대 인간다운 삶의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멈춤과 깨어남이 인간의 일자리를 만들어냅니다.

핵개인의 원룸 쳇바퀴 문을 열고 기적같은 지금 여기 지구별 생명체의 세상으로 나와 깊은 숨을 들이마셔야 우리 안의 깨어남이 일어납니다. 감옥에서 탈출해 대자유인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자비와 연민으로 불타는 우리의 마음과 세상을 껴안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가 아니라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백팔십도 다른 삶과 세상이 펼쳐집니다.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모여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고 나누는 대화, 이것이 이웃 민주주의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사회성 동물인 인간의 이웃공동체, 갈갈이 해체되어버린 지역공동체의 재생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와 신뢰를 바탕으로 사기와 불신이 난무하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의 일자리 파괴를 대체하면서 사람 냄새가 나는 새로운 ‘사람다운’ 일자리가 만들어집니다.

지구별 생명체로 다시 깨어나 ‘나’를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시 만나고, 이웃과 다시 어깨동무하는 사회성 삶의 회복, 이 길이야말로 기적의 지구별 생태계를 누리는 인간 삶이 아닐까요.

* 이 글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웹진 나비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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