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전제하지 말자는 임종석 주장에 전직 통일부 장관 엇갈린 평가 나와

정세현 "임종석 주장 옳다. 통일 불가능해" vs 정동영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통일 철학과 역대 노력 부정하는 것"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통일보다 평화를 우선하자는 발언을 두고 정세현‧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발언 자체는 동의하나 정치인으로서는 적절하지 못한 언급이었다고 지적했다.

20일 목포 현대호텔에서 2024 한반도 평화공동사업 추진위원회와 노무현재단,(사)한반도평화포럼, 광주광역시, 경기도, 전라남도가 공동 주최하고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한반도 평화행동이 후원하는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 전남 평화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의 토론자로 참석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임 전 실장의 발언과 관련,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2007년 통일 문제에 대해 "우리는 1300년 동안 통일을 유지한 민족이고 외세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분단된 지 60년이 되었다. 이는 우리가 원한 것도, 승낙한 바도 아니다. 어찌해서 이러한 부당한 분단을 우리 민족의 영원한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임 전 장관은 "분단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적대관계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고 항상 전쟁의 불안 속에서 살게 되기 때문에 통일은 해야 된다. 그런데 갑자기 통일을 하려면 전쟁, 흡수통일이 되는데 이는 배격하고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며 "평화적 통일은 갑자기 될 수 없기 때문에 통일은 과정이다"라고 김 전 대통령이 말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완전히 통일을 이룩하기 전에 남북이 서로 오고 가면서 경제‧사회‧문화적으로는 통일된 것과 비슷한 '사실상의 통일 상황'부터 먼저 하자는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통일 방안"이라며 "이 길 말고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는가"라고 말했다.

임 전 장관이 이처럼 통일에 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한 것은 통일을 전제로 두지 말자는 임 전 비서실장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역시 토론회에 참석한 정동영 전 장관은 보다 명확하게 임 전 실장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 전 실장이 "아마 안타까운 심정에서 평화 정책에 집중하자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 같은데 이는 헌법 3,4조를 위반한 것이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 철학과 역대 정부의 평화통일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법이 크게 국가보안법, 교류협력법, 남북관계발전법이 있는데 (통일을 전제하지 않고 두 국가로 규정하면) 교류협력법과 남북관계발전법이 무력화된다. 국가보안법만 남는 후과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그는 "결정적인 것은 북한 내부에 이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중국‧러시아의 간섭과 개입을 어떻게 배제할 수 있겠는가의 문제가 있다"며 "중러는 북한과 동맹인데 우리는 아무 상관도 없는 타국이라고 규정될 경우 우리가 어떤 정책 수단과 개입 근거를 가질 수 있겠는가의 결함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1991년 기본합의서에서 천명했듯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 라고 규정했다"며 "역대 정부가 평화공존과 평화통일 추진해왔던 것을 변경해야 할 어떤 사정도 없다"고 일갈했다.

이들과는 달리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임 전 실장의 주장을 옹호했다. 그는 "임 전 실장의 주장을 '통일포기론'이라고 딱지 붙이는데 저는 그 이야기가 옳다고 본다"며 "제가 박정희 정부 때부터 통일부에서 일했는데 직업공무원 출신으로 남북관계 변천사를 회고해볼 때 지금 시점에서 통일한다? 불가능해졌다"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김정은이 (남한 또는 통일로부터) 도망가서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통일 의지가 사라지고 있다"며 "거기다 대고 헌법에 평화통일을 규정했으니 밀고 나가야한다는 것은 형식논리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실질적으로는 그것이 무슨 감동을 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통일은 윤석열 정부에서 악용되고 있다. 평화는 '힘에 의한 평화'로 치환해서 대북 압박을 정당화하고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통일 이야기하는데 이는 이승만의 북진통일과 똑같다. 북한 붕괴되기 기다렸다가 우리가 주머니 넣으면 통일이라는 건데,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나. 국제정치가 이렇게 복잡하게 돌아가는데"라고 말해 미중 전략 경쟁 시기에 북한이 붕괴하기도 어렵고, 설사 붕괴하더라도 남한이 개입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무력통일과 흡수통일을 배제하고 교류 협력을 활성화하며 통일은 후대에 맡기자고 했다. 임 전 실장이 말한 것과 비슷한 논리"라고 밝혔다.

그는 "남북은 1991년 기본합의서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했지만 이미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며 "민족 내부적으로는 특수관계지만 국제적으로는 두 국가"라고 말했다.

역시 이날 토론회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햇볕정책은 통일 정책이 아니다. 교류협력과 평화를 지향항는 정책이다.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위해서는 남북이 대화하고 잘 지내야 한다"며 "그런데 이것을 바로 '평화를 지키자' 라고 하는 것은 좀 냉소적 접근 아닌가 싶다"며 임 전 실장의 발언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박 의원은 "노태우 대통령 때 사실상 두 국가를 인정하고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그런데 우리 헌법에는 북한이 우리 영토라고 하고 있는 것"이라며 "학자가 주장을 하면 옳지만 임종석은 정치인이다. 정치인이 (일반 국민의 생각보다) 너무 빨리 가면 안 된다"라고 조언했다.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19일 임 전 실장은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기념사에서 "객관적인 한반도의 현실에 맞게 모든 것을 재정비하자"며,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한 "헌법 3조 영토 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하자"며 "국가보안법도 폐지하고 통일부도 정리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는 "언젠가는 정비해야 할 문제여서 차제에 용기를 내어 제기한다"며 "통일이 전제돼 있음으로 인해 적극적인 평화 조치와 화해협력에 대한 거부감이 일고 소모적인 이념 논란이 지속된다는 인식" 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 전 실장은 "상대에 대한 부정과 적대가 지속되는 조건에서 통일 주장은 어떤 형태로든 상대를 복속시키겠다는 공격적 목표"라며 박근혜 정부 '통일대박론'과 윤석열 정부의 '통일 독트린'을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남북 모두에게 거부감이 높은 '통일'을 유보함으로써 평화에 대한 합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목표와 현실적 접근이 공감을 얻는다면 남북이 신속하게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국제 사회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전 실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밝힌 2국가 선언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 관계는 있을 수 없다. 평화적인 두 국가, 민족적인 두 국가여야 한다"며 "평화 공존과 화해 협력을 전제로 하는 새로운 정책이 제시되기를 바란다"며 이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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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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