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불평등이 사라진 대학을 위하여

[대학교육 공공성 강화해야 한다] ⑪ 대학 강사의 삶과 노동을 생각한다

지난 7월 11일 대법원은 대학 시간강사의 소정근로시간을 강의시간만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면서 주휴연차수당을 인정하지 않은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이 판결은 대학강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던 과거의 판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수십년동안 논쟁을 거듭해왔던 대학 강사의 소정근로시간 문제를 명료하게 정립했다. 강의만이 아니라 여기에 수반되는 제반 업무도 강사의 교육연구노동에 해당한다고 해석함으로써 초단시간근로자로 간주되었던 강사의 근로특수성을 명확하게 규정한 것이다.

대학과 정부는 부산대 강사들의 '상고이유서'에 따른 '상고이유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했는데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학과 강사가 체결한 근로계약서상의 주당 강의시수가 곧 소정근로시간이다. 설령 강의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포함하더라도 평균 소정근로시간은 15시간 미만이다. 대학 강사는 초단시간근로자이므로 주휴연차수당을 지급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고이유서'와 '답변서'에 제시된 법리 논쟁을 우리 같은 비법조인들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랬던 까닭일까, 사소하다면 사소할 법한 '답변서'의 문구가 눈에 박혔다. 강의 외 업무를 소정근로시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인정한다 하더라도 평균 15시간 미만이므로 어찌해도 결국 초단시간근로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변하는 등 어떻게 해서든지 강의 외 교육연구노동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태도도 우스웠지만, "원고들은 …… 시간강사로 근무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강의 외 근로시간에 대한 임금청구를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주장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말문이 막혔다. 그렇구나. 바로 이 정도가 이들의 '영혼의 무게'였구나.

대학 강사들의 삶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일용잡급직처럼 취급받았다. 매 학기마다 강사 위촉과 해촉이 반복되었다. 강사 연구실이나 휴게실이 없어서 비어 있는 시간에는 차 안에서 강의를 준비하거나 휴식을 취했고, 벤치에서 학생을 상담했다. 대학이나 학과의 결정에 거의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대학 내 사회적 약자였고 유령이나 다름 없는 신세였다. 대학은 이들의 불안한 처지를 십분 악용, 싼값에 그들의 교육연구노동을 가져다 쓰다가 필요 없으면 문자나 전화 한통조차 하지 않았다. 전임교원과 비슷한 임무를 수행했지만 상용근로자(full time)이 아닌 비정규직 단시간 근로자(part time)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과 불공정한 처우가 당연시됐다. 대학원에서 5년, 10년을 연구했던 석사와 박사들의 삶이 이러했다.

그 핍박과 억울함을 참고 견디다가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교육연구노동의 대가를 보상받고자 헌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마당에서 대학과 정부는 그들의 입장과 처지를 위로하거나 사죄하기는커녕 '그동안 아무 말 하지 않았던 주제에 이제 와서 뭘 달라고 주장하느냐.'는 멸시와 비아냥으로 2차 가해를 자행했던 것이다. 그런 줄이야 수십년의 강사 생활에서 보고 듣고 경험했던 일이지만 돈을 앞에 두고 보여준 그들의 민낯은 가련할 만큼 딱했다.

우리 사회는 마치 잠깐 쓰다가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그들을 능멸했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강의료 수준으로 그들을 오랫동안 방치해왔다. 25년이나 계속된 퇴직금 소송에서 반복적으로 패소하면서도 2019년 강사제도 시행 이전까지 아무런 제도적 방책을 내놓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학은 정부의 예산 핑계를 대고, 정부는 대학이 사용자라면서 책임을 전가하고, 국회 역시 다른 노동자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차일피일 대학 강사의 노동을 외면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대학 내 차별은 점점 심화되고 불평등한 체제가 고착화되고 있다.

노동의 가치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비정규직이므로 차별을 합리화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이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무시하는 인권 문제이자 사회 통합의 위협 요인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노동 존중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출발점이다. 노동의 상품화, 인간의 비인간화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회는 건전하고 구성원 모두가 불행해지지 않는다. 노동헌법을 기초했던 김선수 대법관의 지적이다.

대학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의 강사들이 쌓아 올린 학문은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연구 성과는 그들 자신에게만 환원되지 않는다. 대학을 거쳐 사회와 국가로 확산되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문명으로 전승된다. 그들의 교육연구활동은 우리 모두가 향유하는 일종의 사회적 노동이다. 대학과 국가가 나서서 그들의 역할을 존중하고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보전해주어야 한다. 그들을 비인간화의 상태로 놔두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와 대학 공동체가 최소한의 여건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대학답고 교육과 학문 공동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대학, 정부, 국회는 실종의 자신들의 공적 책임을 회복해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그 단초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 판결이 고단한 대학 시간강사의 삶에 지쳐 유명(幽明)을 달리했던 이들을 기억하고, 뙤약볕 아래나 냉골 아스팔트 위를 가리지 않고 노숙하며 투쟁해왔던 비정규교수노조의 땀과 교육연구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대학 비정규교수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씩씩하게 싸울 것이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바로잡을 때까지 그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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