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日 사도광산 강제성 수용 안했는데도 유네스코 등재 동의

강제성 여부 아예 협상 안했다더니…외교부 "일본에 요구했으나 최종적으로 수용 안해" 말바꾸기

조선인 강제 노역이 이뤄졌던 사도(佐渡)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 정부는 당초 조선인 노동자들의 노역에 대한 '강제성' 표현에 대해 일본 측과 협상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일본과 이를 협상했으나 관철시키지 못한 채 등재에 동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실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관련 일본과 협상 시 '노동을 강요당했다'는 영어 표현인 'force to work' 삽입 여부를 협의했냐는 질문에 대해 외교부가 "전시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과거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일측에 요구하였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수용하지 않음"이라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이는 외교부의 당초 설명과는 다른 대목이다. 지난 7월 26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강제성 표현에 대해 협의했냐는 질문에 대해 "강제 노동의 정의가 뭐냐 부터 들어가서 끝이 없는 말싸움이 된다. 일본은 일본식대로 얘기하고 우리는 우리식대로 얘기하고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논의를 이번에는 하지 않고 말씀드렸다시피 일본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을 한 것"이라며 아예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답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외교부가 강제성 표현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일본의 의사를 받아들이고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에 동의한 것인데, 외교부는 그간 강제성 표현이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2015년 일본 측의 발언에 강제성이 포함돼 있다며, 이 문안이 들어가 있다면 일본도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2015년 7월 5일 일본 측 사토 구니(佐藤地) 유네스코 대사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군함도 등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의 등재 확정과 함께 "수많은 조선인 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against their will) 연행되어 가혹한 환경에 서 노동을 강요당했다(forced to work)"고 밝혔었다.

이재정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에서도 외교부는 "우리는 '2015년 문안'이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최저한이며, 그보다 후퇴하는 문안은 국내적으로 수용 불가하다는 입장하에 협상"했다며 "이에 최종적으로 일본대표는 "(2015년 합의를 포함한) 과거의 약속을 명심한다"는 발언을 하게 된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2015년 발언에도 문제가 있다. 사토 구니 대사의 발언 다음날인 7월 6일 현 일본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시 외무상은 'forced to work'가 "강제 노동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이 때문에 2015년 합의를 포함한 과거 약속을 명심한다는 일본의 표현이 강제성을 인정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외교부의 설명과 이재정 의원실에 제출한 외교부의 답변 등을 종합해볼 때 강제성 표현과 관련해 정부가 직접적 표현을 요구하지 않고 2015년 발언을 확인하는 수준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한일 간 합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강제성 문제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골자로 한 역사 인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양측이 합의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를 합법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일본은 국가총동원법 등에 의해 조선인 노동자가 사도광산에서 합법적으로 '노동'을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식민 지배를 불법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제에 의해 사도광산에 강제 동원되어 노역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강제성 표현을 직접적으로 포함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일본과 합의한 것을 두고 일본의 식민사관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정부에 "사도광산 등재를 둘러싼 외교협상의 과정과 내용, 전모를 공개"하고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 제공을 일본 정부에 요청"하라고 촉구했다.

우 의장은 "일본 정부는 군함도 등재 결정 직후부터 강제동원‧강제노동을 부인했고, 이후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여론전을 펼쳐왔다"며 "이번 세계유산위원회에서도 일본 대표는 강제노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해 강제성을 재차 부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도 정부는 이를 용인하고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했다. 불법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의 피해국인 '대한민국 정부'로서 합당한 대응을 촉구한 국회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할 뿐만 아니라 국민적 상식과 보편적 역사 인식에서 크게 벗어났다. 매우 잘못된 일이다. 심각하고 강력한 유감의 뜻을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사도광산 관련해서 우리 정부 입장과 협상 결과 그리고 의미에 대해서는 그간 여러 계기에 소상히 말씀드린 바 있다. 오늘 국회의장님의 입장문은 저희가 정중히 잘 읽어 보았다. 내용을 잘 검토해서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국회 측에 설명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국회에 사도광산과 관련한 자료를 제출했냐는 질문에 "협상 전후에 자료 및 설명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협상 참여했던 대표, 국회 담당 당국자 등이 가서 자료 드리고 설명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가 사도광산 강제동원 대상자의 유족들을 찾아뵙겠다고 했는데 실제 실행했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찾아뵙고 설명을 드리려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는데 아직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구불구불하고 좁은 에도시대 갱도와 달리 비교적 넓게 매끈하게 뚫려 있다. 사도광산에는 2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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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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