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검찰, CIA 출신 수미 테리 기소 "사치품 받으며 한국 정부 도와준 혐의"

"최상급 스시 사랑하고 디자이너 브랜드 좋아해"…테리 측 "사실 왜곡, 한국 정부에 혹독한 비판해"

미 연방 검찰이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인 한국계 미국인 수미 테리에 대해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했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16일(이하 현지시각)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전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이자 CFR의 한국학 선임연구원인 테리는 이날 공개된 31쪽 분량의 공소장에서 한국의 정보원들을 수년 간 도와줬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 맨해튼 연방 검찰은 테리 연구원이 CIA를 떠난 이후 5년이 지난 2013년부터 한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활동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그가 한국을 위해 일한 대가로 고가의 백과 옷 등의 물건을 수령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테리 연구원이 "최상급 스시를 사랑하고 디자이너 브랜드를 좋아했다"며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코트,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와 루이 비통(Louis Vuitton)의 핸드백,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좋아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테리 연구원이 최소 3만 7000달러 (한화 약 5200만 원)의 부적절한 자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테리 연구원이 "한국 정부를 위해, 그리고 지시에 따라 광범위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법에 따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이를 위반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는 점을 꼽았다.

미국에서는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이 외국 정부나 기관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할 경우 스스로 미 당국에 이를 신고해야 한다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이라는 제도를 두고 있는데, 테리 연구원이 여기에 등록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일을 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맨해튼 연방 검찰의 공소장에는 테리 연구원이 국가정보원 담당자들과 접촉하는 사진과 그 과정들이 자세히 기록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소장에서 연방 검찰은 2013년부터 테리 연구원이 FARA에 등록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를 위해 일했다고 주장했다.

우선 2013년 테리 연구원은 국정원 담당자 1(NIS Handeler-1)과 자주 접촉했는데, 그해 8월 중순 뉴욕 맨해튼에 있는 스시를 파는 식당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이후 그해 10월 경 테리는 이 담당자에게 한국 여성 전문가들과 관계된 행사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연설을 할 예정인데 이에 대한 "생각과 소재" 등을 요청했고, 담당자는 연설 주제의 기본적인 개요를 전달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2014년 <포린어페어즈> 7,8월 호에 실린 테리 연구원의 "한국 전체와 자유 : 결국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이유"라는 글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테리 연구원은 당시 동료에게 한국 정부가 이 글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지불했다고 말했다. 테리 연구원은 6월 경 해당 글을 작성하는 것에 대해 한국 외교부와 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이후 미 연방수사국(FBI)이 2014년 테리 연구원을 소환해 한국 국정원 요원과 접촉에 대해 물었는데, 검찰에 따르면 이 때 테리 연구원은 매우 긴장한 모습을 보이고 어조를 바꾸면서 말도 더듬었다고 전해졌다. 또 당시 테리 연구원은 국정원 요원을 만난 사실을 인정했으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가, 이후 요원의 성(姓)을 언급하기도 했다.

FBI는 당시 테리 연구원에게 "한국의 정책 전문가 집단에서의 당신의 지위를 고려할 때 한국 국정원이 금품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대가로 정보 등을 요구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테리 연구원은 알겠다는 취지로 답했으나 이후에도 접촉은 이어졌다.

2016년 12월 테리 연구원은 한국 외교부에 차기 미 행정부의 당국자가 될 인사들에 대해 접근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이 시기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통령 선거 후보가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에 승리하며 미 정권이 8년 만에 교체되는 때였다.

검찰은 2018년 말에서 2019년 초 테리 연구원이 국정원에 미국 국가 안보 관료들과 만남을 주선하며 고가의 가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테리 연구원은 국정원 담당자 2(NIS Handeler-2)의 요청에 따라 워싱턴 D.C.에서 사적인 만남 자리를 마련했다.

이에 당시 테리 연구원이 근무하던 싱크탱크의 후원으로 사적 만남이 이뤄졌는데, 한국의 국정원장과 미 국방부의 고위 관료, 전직 CIA 고위 관료 등이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국정원 담당자는 테리 연구원에게 감사의 표시로 2845 달러의 코트와 2950 달러의 가방을 전달했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다.

공소장에는 2019년 11월 13일 국정원 담당자 2가 테리 연구원에게 메릴랜드주 체비 체이스에서 2845 달러의 돌체앤가바나 코트를 구매해줬다고 적혀있다. 이후 테리 연구원은 이 코트를 환불하고 이후 4100달러 짜리 크리스찬 디올 코트를 구매했는데, 검찰은 차액은 테리 연구원 본인이 부담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어 이들은 워싱턴 D.C 의 다른 가게에서 보테가베네타의 2950달러 짜리 가방을 구매하기도 했는데, 이 장면은 매장 안에 있는 CCTV에도 찍혀 있었다.

▲ 16일(현지시각) 미 연방 검찰이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인 한국계 미국인 수미 테리에 대해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했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위 사진은 검찰 공소장에 게재된 것으로, 테리 연구원이 가방 구매를 위해 국정원 담당자 2와 함께 매장에 있는 모습. ⓒ미 연방검찰 공소장 갈무리

다음해인 2020년 8월 담당자 2의 후임자인 담당자 3(NIS Handeler-3)은 테리 연구원이 미 정부 관료들 및 비정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화상 워크숍을 주선해준 데 대한 대가로 3450 달러의 가방을 구매해줬다.

2020년 11월 30일 또는 12월 1일 테리 연구원은 "팬데믹 이후 북한 경제 전망"을 주제로 한국 및 미국 정부 관료들과 민간 기업, 비영리단체, 학술 기관 등의 인사들이 참여하는 비공개 화상 워크숍을 주선했다.

담당자 3은 이후 2021년 4월 16일경 테리 연구원과 함께 루이비통 매장에서 3450달러 짜리 가방을 구매했으며, 이들은 이후 대사관 차량을 이용해 스시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사를 마친 뒤 이들은 호텔 루프탑에 위치한 바에 갔다고 검찰은 명시했다.

▲ 미 연방 검찰이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인 한국계 미국인 수미 테리에 대해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했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사진은 미 검찰 공소장에 게재된 것으로, 2021년 4월 16일 국정원 담당자 3과 테리 연구원이 함께 루이비통 매장에 있는 모습. ⓒ미 연방검찰 공소장 갈무리

2022년 6월 17일 경 테리 연구원은 담당자 3에게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국무부 고위 관료, 국무부가 초청한 5명의 한국 정책 전문가들과 함께 가진 비공개 그룹 회의 내용을 두 쪽 분량의 메모로 전달하기도 했다.

2022년 7월 경 테리 연구원은 미 의회의 다양한 인사들을 위한 행사를 마련했는데, 한국 국정원 담당자가 주최하는 행사였다. 테리 연구원은 한국 정보 요원들이 이들에게 접근해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는데, 국정원이 테리 연구원의 싱크탱크 프로그램에 1만 1000 달러를 제공한 직후였다. 이 자금은 테리 연구원이 가지고 있는 "선물" 계좌로 입금됐는데, 이는 자금의 원천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2023년 1~2월 테리 연구원은 공개 석상에서 가진 연설의 주요 내용을 담당자 3으로부터 제공받기도 했다. 그해 1월 10일 워싱턴 D.C에 있는 스시 식당에서 담당자 3은 북한 정책에 대한 요점을 테리 연구원에게 제시했고 그에 따라 테리 연구원은 1월 19일 <포린어페어즈>에 실린 '새로운 북한의 위협'(The New North Korean Threat) 이라는 제목의 글에 해당 내용을 반영했다.

검찰은 테리 연구원이 2023년 4월 18일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2023 한미정책포럼'과 관련해서도 수만 달러의 자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그해 4월 경 한국의 싱크탱크가 행사 관련 비용으로 2만 5418 달러를 테리 연구원이 소속돼 있는 싱크탱크에 지불했는데, 이와 별도로 테리 연구원은 명목상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나온 2만 6035달러 짜리 수표도 받았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 수표는 테리 연구원이 사용하고 있는 '선물'계좌에 입금됐는데, 테리 연구원은 자신이 속해있는 싱크탱크에 자금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주장에 대해 테리 연구원 측은 왜곡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테리 연구원의 변호사인 리 월로스키는 <뉴욕타임스>에 검찰 공소장에 대해 "독립성을 가지고 수년간 미국에 봉사한 학자이자 뉴스 분석가의 업적"을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테리 박사는 (공직에서 떠난 이후) 10년 이상 동안 기밀 정보 취급 허가를 받지 않았으며 한반도와 관련된 문제에 대한 그녀의 견해는 수년에 걸쳐 일관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월로스키 변호사는 "사실 (검찰의) 공소장에서 그가 한국 정부를 위해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기 동안 (테리 연구원은) 한국 정부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며 "사실이 밝혀지면 정부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 명백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테리 연구원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는 지난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미국의 소리>와 인터뷰에서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신문은 테리 연구원에 대한 검찰의 기소에 대해 "미국 사안에 대한 외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법무부가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몇 년간 수십 건의 기소를 이끌어 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테리 연구원은 2001년부터 CIA에서 동아시아 분석가로 근무했다. 이후 2008~2009년에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한국·일본 및 오세아니아 과장을 지냈으며, 동아시아 국가정보 담당 부차관보를 역임했다.

공직을 떠나고 난 뒤에는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 윌슨센터 아시아프로그램국장 등으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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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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