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발의된 노란봉투법, 법리적 쟁점은?

[국회 다니는 변호사] 노란봉투법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오늘 다룰 내용은 뜨거운 감자인 바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입니다. 지난달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 상정됐고, 법안 논의가 한참 진행중입니다.

원래 이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여러 우여곡절 끝에 2023년 11월 9일 위원회 대안으로 처리돼 단일안으로 만들어졌었던 법안입니다. 본회의에서도 압도적으로 가결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같은해 12월 8일 본회의 재의결에서 정족수 부족으로 부결되었죠. 이 부결된 법안을 지금 다시 논의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22대 국회 들어 다시 논의되고 있는 노란봉투법의 의미는 노동법규와 노동법의 역사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가 있어야 그 맥락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33조 1항에서 근로자에게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근로조건이라는 것은 결국,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기타 대우 등 근로관계에서의 노무제공에 대한 반대급부입니다. 예컨대 특정 근로자에게 '임금 300만 원을 지급하고, 하루 8시간을 근무해야 하고, 점심값을 제공한다' 이런 모든 조건이 바로 근로조건(working condition)이고, 이 조건을 보고 노무제공 여부를 개별 근로자들이 결정하는 것이죠. 근로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근로계약을 제공할 필요성은 없겠죠.

하지만 근·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근로를 제공'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또 사측은 압도적인 설비와 자본력을 갖추고 있는 반면, 개별 근로자가 이러한 설비나 자본력에 대응해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긴 어렵죠. 게다가 근로조건은 사회변동에 취약합니다. 물가 상승, 기업 간 경쟁, 전쟁…. 각종 국내외 여러 경제적 변동의 하위조건에 놓이게 되고, 근로조건을 경제·사회적 변동에 맞게 수준을 높이지 못하면 품위있는 삶을 누릴 수 없겠죠.

근로조건을 교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생생하게 보시려면, 영국 산업혁명 초기 시절 탄광 노동자의 삶을 보여준 조지 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이라는 르포르타주를 추천드립니다. 석탄광에서 일하는 광부가 일당 14시간 가까운 노동시간을 감내하는데도, 이들은 본인의 근로조건에 대한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오로지 탄광과 비좁은 하숙집을 오가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죠.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근로자가 어떻게 뭉쳐 사측에 '근로조건'의 입장을 전하고, 그에 관해 협상을 하고,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쟁의행위(파업, Strike)를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는 곧 자본주의의 최소한의 도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핵심입니다.

근로조건에도 많은 하위 개념들이 뒤따릅니다. 사용자와 근로자는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노조의 교섭권한 범위를 어디까지 규정할 것인지, 노조가 쟁의행위를 하는 범위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만일 노조가 쟁의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사업자에게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 이에 대한 배상을 허용할 것인지 등등 많은 법적인 쟁점이 따릅니다.

'근로자'부터 살펴볼까요. 근로자는 당연히 임금, 급료 등의 명목을 통해 사용자로부터 수입을 벌어들이는 사람을 말하겠죠. 문제는 근로계약의 유형이 과거와 다르게 너무나 다양해졌다는 데 있습니다. 예컨대 보험설계사나 골프장 캐디는 보험회사의 보험계약체결을 위해, 골프장의 경기보조를 위해 종사하는 사람이지만, 보험회사나 골프장은 직접적으로 이들과 일정시간을 정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기보다는, 노무를 제공하고 그 노무에서 일정한 수수료 또는 노임 대가를 가져갑니다.(노무도급 내지는 사무위임). 그렇다면 이 분들은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배달산업 종사자(라이더)들의 경우도 동일하죠. 과거는 중국집 배달원이 중국집에 소속된 직원이었다면, 지금은 다릅니다. 개별 배달원들은 배달 앱(쿠○, 배달의○○ 등) 회사들과 개별적인 노무제공 계약을 맺는 사업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노무 제공은 이 회사들의 존재가 없이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특수고용직 형태에 대해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아니더라도,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인지 여부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죠. (2015. 6. 26. 선고 2007두4995 전원합의체 판결 등) 근로자의 범위를 확대해석해야 한다는 데는 판례나 해석관행이 어느 정도 일치해, 일부 반대의견은 있지만 법안 자체에 대한 이견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용자'의 경우는 쉽게 말해 사업주를 뜻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원-하청 수급관계에 놓인 근로자의 경우라면, 도급인 또는 사업주가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하청사업자가 하청근로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란, 조금 과장해 표현하자면 임금배분 역할에 불과한 거죠. 실질적인 노무제공의 혜택은 원청사업자에게 돌아갑니다. 결국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그 노무에 따른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보유하고, 이를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고 있다면(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 등) 이를 사업주로 보자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당연히 사측의 교섭범위가 넓어지게 되고, 내어주어야 할 것이 많이 생기는 것이므로 기업들·사측 단체에서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협상을 통해 어느 정도 양자간의 입장을 조율할 수 있는 문제로 보이나, 문제는 다음 3가지의 핵심 쟁점입니다. 쟁의행위의 범위, 파업시 손해배상, 개별적 손해배상청구.

우선 현행법상 쟁의행위는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만 허용합니다.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분쟁상태'까지를 근로조건의 결정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체불임금을 청산하라'거나, '과거 해고자를 복직하라'는 요구는 '근로조건의 결정'에 포함될까요? 내지는 정부의 노동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쟁의행위를 하거나 사측의 정리해고나 구고조정을 반대한다기 위한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될까요?

다수 학자들이나 법원은 그렇게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는 이미 사실적으로 벌어진 권리-의무 관계에서 비롯한 것을 다투기 위한 것이고, '근로조건'을 결정하기 위한 쟁의행위로 볼 수 없다는 거죠. 다수의 노동조합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해고자 복직 문제입니다. 노란봉투법은 바로 이 쟁의행위를 '근로조건의 결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근로조건' 자체의 문제로 폭넓게 보자는 것이죠. 근로자 자신의 미래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쟁의행위는 당연한 것이고, 과거의 권리분쟁이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형성하는데 느슨하게 기여한 것이 있다고 본다면 폭넓게 이 역시 근로조건으로 보자는 것입니다. 당연히 사측 단체에서는 이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입니다. 쟁의행위를 하면, 조업일수 축소에 따라 회사의 매출감소가 불가피합니다. 쟁의행위가 과격해져, 기계를 파괴하거나, 내지는 공장을 점거하는 등의 행위가 발생하면 사측에 손해가 발생하게 되죠. 지금까지 사측에서 이러한 경우 노조의 파업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동조합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이에 수반해 가압류를 하고, 나아가 개별 조합원에 대해서 연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해오는 사례가 많았죠.

이러다 보니,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조합원이 목숨을 끊는 일도 상당히 있었습니다. 노조 활동에도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하게 되죠. 노란봉투법은 바로 이러한 근로자의 노동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제한하는 것은 예외적으로 폭력·손괴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경우라거나(김태선), 헌법·노동조합관계법에서 정한 목적을 넘어서는 쟁의행위까지만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자는 것(이용우·신장식·윤종오)이죠. 참고로 UN OHCHR(인권이사회)이나 ILO(국제노동기구)는 이러한 손해배상소송이 단순한 권리행사를 넘어 노조탄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한 바가 있었습니다.

또한 파업행위에는 개별 조합원의 공동 파업 참여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조합과 별개로 이러한 개별 조합원에 대해서 공동불법행위책임(민법 제760조)을 묻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 역시 민법의 예외로 보아, 노동조합의 결정에 의한 행위를 개인에게 소구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아울러, 노동쟁의시 신원보증인에 대한 불법행위책임을 면제하는 내용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영국의 경우는 노조에 대해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액 소송에 대한 상한액을 최소한도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개별적으로 위법한 쟁의를 주도한 노조 간부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유사한 판례가 있습니다. 대법원 2006. 9. 22. 선고 2005다30610판결)

유럽 국가들은 대체적으로 이러한 파업참여와 손해배상의 제한을 폭넓게 인정하는 입장인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한국의 사측 단체·기업에서는 이를 찬성할 수가 없는 사안으로 봅니다. 사용자 측의 재산권을 제한하며, 민법상 불법행위 원칙에 반한다거나, '불법행위 조장법이'라고 하고 있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노란봉투법은 다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기본소득당은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정부·여당은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현 정부 하에서 최종 발효는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의석구조가 21대 국회와 크게 바뀌지 않은 이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본회의에서는 가결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은 (큰 정치적 상황변동이 없는 이상)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견으로는 노사관계법의 역사 자체가 사측의 재산권을 합리적인 범위에서 제한하는 사회관계법으로 발전해온 이상 이 법의 향방 역시 이러한 경로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됩니다. 결국 국민들의 여론, 해외입법례 등을 수렴해 가면서 최종 정치적 의사결정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열린 '노조법·방송법 즉각 공포 및 거부권 저지 총파업대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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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박지웅 변호사는 현재 법무법인(유) 율촌의 변호사로 재직중입니다. 국회의원 비서관, 국회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역임하며 국회 입법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연구하며 오랫동안 여러 입법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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