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애는 낳아야 한다고요?

[인권의 바람] 저출생에 호들갑 떠는 사회체제를 직시해야 할때

아이 웃음소리 다시 커지는 서울

명동역 지하철 역사 안에 붙여져 있는 서울시의회가 하는 광고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저출생을 ‘국가 비상사태'라고 규정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여러 저출생 대책을 내놓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부총리급 저출생 대응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했고, 기존 대통령 직속 기관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임신·출산 진료비 바우처, 신생아 출산 가구 주택 구입 및 전세 특례 대출, 아동수당 등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를 두고 정부는 양육자들에게 돈만 쥐어줄 뿐,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저출생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국은 그리 살 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 명동역 지하철 역사에 부착된 포스터.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

저출생의 원인으로 성차별을 지목하는 분석이 많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를 위한 휴직을 하기 어렵고, 아이 돌봄은 여성에게 더 많이 떠맡기면서 고용 단절을 일으킨다. 또한 일터 내 성별 임금 격차와 유리천장(성별을 이유로 승진이나 진급, 연봉 상승이 제한되는 성차별) 문제, 가정 내 가사 돌봄 노동과 과중 등 여성의 성역할에 대한 문제가 많다.

청년세대는 사회 전반의 불평등으로 인해 임·출산을 포기했다. 2010년대 연애와 결혼, 출산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청년세대를 "N포세대"라고 불렀다. 청년세대는 입시와 취준(취업준비) 경쟁을 뚫어내야 하고,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비싼 집세를 감당해야 한다. 불안정한 생활에서 임·출산은 꿈꾸기 어렵다.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의 경우 더욱 불안정하다.

봄과 가을의 시간이 짧아지고 미세먼지를 겪는 등 체감하는 기후위기에서 출산과 육아는 더욱 꺼려진다. 글로벌 여론조사기관인 글로브스캔이 전 세계 31개국, 2만 9,29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0%가 ‘기후변화로 아이를 낳는 것이 꺼려진다'라고 답했고, 한국 경우 59%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기후위기를 겪어야 할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들이 임신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들도 아이를 낳을 수 없다. 한국은 2022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 연간 노동시간 1752시간보다 122시간 많은 장시간 노동 국가이다. 장시간 노동을 하면 임신과 출산을 계획할 시간도, 섹스를 할 시간도 없다.

아이를 낳아도 욕먹는 사회다.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혐오가 퍼져 있는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기란 쉽지 않다. 시끄럽고 문제를 일으킨다는 핑계로 ‘노키즈존'을 설정한 공간들과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피해를 준다며 양육자 특히 여성 양육자에 대해 ‘맘충'이라고 부르는 분위기에서 아이와 밖을 다니기는 어렵다.

저출생, 진짜 문제일까

저출생을 걱정하는 이들은 ‘국가 발전을 위해서', ‘노후에 챙겨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등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젊은 비장애인의 노동력을 낳아야 하고, 노인 부양의 책임이 국가가 아닌 개인과 가족에게 있다니. 이상한 이유다.

이제까지 한국 정부들이 모두 임·출산을 독려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으로 출산율이 증가했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정부는 빈곤 문제를 이유로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다. 심지어 임신중지를 독려하며 임신 초기 임신중지를 무료로 해주는 "월경조정술" 사업과 "낙태버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참세상 번역팀이 번역한 인구균형 NGO 상임이사인 난디타 바자즈의 글은, 가부장제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 출생주의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는 "출생률 감소를 둘러싼 우려는 근거가 없으며, 출생률 감소는 더 많은 재생산의 선택권을 의미하는 긍정적인 추세이고 우리가 가속화해야 할 추세"라고 말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출생주의보다 반출생주의에 대한 잔소리가 훨씬 많다. "그래도 애는 낳아야 하지 않겠니"의 말은 전쟁에 나가기 위해 군대를 꾸릴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던 시절부터 지금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까지 존재하는, 오래되고 익숙한 말이다. 국익과 종교적 관점으로 다뤄지던 출생주의에는 임신을 하고 육아를 하는 ‘사람'의 삶과 권리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빠졌다. 재생산 권리로 임·출산뿐만 아니라 임신중지 권리를 포함하여 논의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저출생'의 고민

만약 저출생이 문제라면, 문제 원인을 먼저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정적인 노동 환경과 성평등한 사회, 공공 돌봄, 기후 정의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서의 변화가 있을 때, 저출생 문제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겨우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저출생이 문제일까.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임신을 강요받았던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로서 비출산을 선택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요구받던 이성애 중심 정상가족이 아닌 새로운 가족 형태를 선택한 것이 정말 문제일까.

저출생은 국가권력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주체들이 만들어낸 현상이 아닌가. 어쩌면 저출생은 억압에서 더 벗어나는 권리적인 방향일지 모른다. 인간이 지구 생태계를 망치는 기후위기 시대에 더 많은 인간이 필요한지,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체제의 문제는 아닌지 면밀히 따져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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