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업장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 어째서 법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걸까요? 작은 사업장은 정말 지불능력이 없는 걸까요?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찾기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작은 사업장을 둘러싼 숱한 의문과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 해답을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 연속기고를 통해 독자 여러분과 함께 찾아보려고 합니다.필자주
[배제와 차별을 넘어,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찾기]
① 작은 사업장 노동자 쥐어짜는 ‘다단계 하청구조’ 더 이상 안 된다 / 임용현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 사무국장
② 법은 왜 작은 사업장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가 / 조영신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 운영위원(법무법인원곡 변호사)
③ 지불능력을 이유로 배제될 수 없는 노동권에 대해 / 엄진령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 운영위원
④ 권리보장 요구의 목소릴 더 크게! 작은 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에 함께 나서자 / 이미숙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 위원장
권리보다 편의? 기업 규모에 따른 노동법 차등 적용의 문제
우리 노동법은 기업 규모에 따라 그 적용의 내용을 달리 정하고 있다. 모든 사업장에, 모든 노동자들에게 동일하게 법률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기업일수록 적용되는 내용이 제한적이다. 대표적으로 5인 미만 기업의 경우 근로기준법 등의 내용이 대부분 적용되지 않으며, 중대재해처벌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단지 기업의 규모가 작다는 것, 그것만으로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어야 할 권리 기준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준의 설정은 다분히 사업주 편의적이다. 노동자를 고용해 기업을 운영하며, 당연히 그에 따른 사업주로서의 의무를 져야 하지만 '작은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기업주의 여력이 없을 것이라 가정한다. 심지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도 '매출규모나 영업이익 면에서 영세하여 재정능력과 관리능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헌재 2019. 4. 11. 2017헌마820)하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대다수 조항의 적용 배제를 합리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가정에 따라 사업주에 대해 많은 노동법상의 의무들이 면제되는데, 이는 곧 노동자에게는 권리 박탈을 의미함에도 이 가정은 너무도 손쉽게 이루어진다.
또한 이는 다분히 행정 편의적인 것이기도 하다. 작은 사업장 하나하나까지 노동행정이 미치기 어렵다는 것이 오랜 시간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권리 밖에 머물게 하고 있다(헌재 1999.9.16. 98헌마310). 행정력이 부족하다면 그를 어떻게 채울지, 그래서 노동권 보장 체계에서 누락되는 노동자들이 없도록 해야 함에도 수십 년간 행정력 부족이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 배제를 용인하는 핑계가 되고 있다. 그 결과 작은 사업장이 노동법 위반의 온상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사업주 편의, 행정관청의 편의를 돌려 표현하는 말이 작은 사업장이 '지불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최저임금 결정 시기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작은 사업장이 무너질 것이라는 논리가 등장하고, 법을 다 지키면 기업이 망한다는 보다 저열한 투덜거림을 접하기도 한다. 기업이 있어야 노동자 일자리도 있을 수 있다는 논리는 여전하고, 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기업이 운영된다는 사실은 가려진다.
그런데 기업 규모가 작기에 매출 또한 규모가 작을 것이라는 가정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첫째는 때에 따라 기업의 영업력 부족이 노동권 배제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작은 기업이라도 매출 규모가 크다면 노동법을 모두 적용할 것인지, 라는 순수한 의문이다. 둘째는 노동권을 보장하며 충분한 권리를 보장할 수 없는 이가 타인을 고용해 영업을 행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라는 노동권 보장의 근본적 취지와 관련된 질문이다. 하나씩 풀어보자.
기업의 책임회피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사업장
매출이 상당액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사업장인 경우가 간혹 언론에 보도되곤 한다. 수십억 매출을 내는 사업장인데도 기업 규모를 따지면 5인 미만에 해당되어, 사업주는 큰 이익을 벌어들이면서도 노동법상의 휴가, 시간외근로, 해고 규제 등의 법 조항 또한 회피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사실 어마어마한 기술력을 보유한 것이 아닌 경우라면, 대부분 숨겨진 노동력이 더 있을 수밖에 없다. 상시 근로자 수에 포함되지 않는 파견이나 특수고용화 등을 통해 사업장 규모를 줄여 5인 미만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다.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연차휴가 적용에 대해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권리찾기 모임 월담'(현 월담노조)으로 문의를 한 적이 있었다. 5인 이상이 일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상담을 풀어가던 중, 일부 노동자들이 파견업체를 통해 해당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파견노동자를 제외하니 5인 미만에 해당되었다. 파견업체가 몇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정도의 매출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5인은 넘는 규모일 테다. 결과적으로 파견노동자보다 직접고용된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더 열악해지는 역설적 상태가 되는데, 사실 이 같은 역설은 발생하지 않는다. 간접고용 상태로 인해 파견노동자의 권리는 대부분 유실되기에, 이 회사는 사실상 5인이 넘는 규모로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모든 노동자에 대해 노동법상 노동조건 기준을 대부분 피해가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월담노조가 실태조사 과정에서 만난 또 한 노동자는 스스로를 사장이라고 말했다. 원래의 회사는 노동자들을 라인별로 나누어 다시 소사장에게 불하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과 똑같이 일하지만 그는 사장이 되었고, 하나의 기업은 매우 작은 규모의 회사 여러 개로 쪼개졌다. 이들의 노동이 자아낸 결과물은 다시 그 단계를 거슬러 최초의 진짜 사장에게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진짜 사장은 소사장으로 위장된 노동자를 포함한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들에 대해 고용주로서의 책임을 쉽게 회피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상시 근로자 수란 변동하는 규모다. 30인, 10인, 5인 등 그 이상과 미만을 가르는 경계에 있는 기업의 경우에는 그 적용이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에게는 권리가 확정적이지 않은 상태가 유발되고, 기업들의 적극적인 책임회피 과정에서 작은 사업장이 인위적으로도 탄생하는 것이다. 위 사례들과 같이 파견을 활용하거나, 이른바 3.3%의 소득세를 떼는 특수고용화, 혹은 소사장화 등을 통해서 말이다. 직접 고용 여부를 가지고 상시 근로자 수를 산정하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작은 사업장들이 만들어지고, 그 가운데 기업의 매출, 지불능력 등과 무관하게 노동자의 권리가 박탈되는 것이다. 작은 사업장의 지불능력 부족을 예단하는 순간, 이 같은 책임회피와 권리 박탈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작은 사업장의 여력 부족, 진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작은 사업장들이 많지만, 실제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작은 사업장들도 많다. 그만큼 한국은 영세기업이 많은 나라다. 특히 공단지역은 제조업 작은 사업장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이 작은 사업장들의 흥망성쇠는 주로 상위의 자본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개별 기업의 영업력, 기술력 등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주로 대자본에 납품을 하는 외주하청업체가 밀집해 있는 공단의 업체들은 그 매출이 대자본으로부터 바로 영향을 받는다.
그에 대해 노동자들은 기업의 경계를 넘어 지배력을 미치는 대자본에 책임을 어떻게 지울 것인지에 대해 탐구한다. 다단계 하도급, 외주화된 하청 공정은 기업의 담을 넘어 공단의 작은 사업장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렇기에 공단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자본의 지배력이 행사되거나, 영향력을 미치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를 노동관계 내에서 풀어내기 위해서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결집되고 생산의 흐름을 거슬러 대자본을 상대로 교섭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노동자들의 조직은 미약하고, 제도는 노동관계의 확장을 용인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납품단가연동제가 지난해 10월 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납품단가연동제는 수탁기업이 위탁기업에 납품하는 물품 등에 있어서 주요 원재료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변동하는 경우 그에 따라 납품대금을 조정하는 서면 계약을 맺는 제도이다. 대자본이 단가 인하를 압박해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고, 중소 제조업체가 살아남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의 제도화 과정에 대자본의 반대가 컸던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제도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쌍방 합의를 통해 연동제를 도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으로 인해 협의만 하면서 연동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그 효과는 미미한 상태다. 또한 인건비는 원재료에 포함되지 않기에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효과가 반영되지 못하는 한계도 존재한다.
대자본과 영세자본의 힘의 크기를 조율하지 못하는 제도화는 그대로 노동자들의 권리 크기에 반영되어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를 압박한다. 결국 작은 사업장을 압박하는 것은 대자본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구조이며, 그 수직적 구조가 그대로 아래를 지배하는 힘으로 작동하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현실에 있다. 이 같은 산업구조 속에서 작은 사업장이 흔들리고, 노동자들의 노동의 가치 또한 납품계약 속에서 깎여 나가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의 정점에 자리한 대자본으로부터 공단의 작은 사업장에 이르기까지, 대자본을 향해 가는 이윤의 고리는 촘촘한 반면 그 지배력에 대해 책임을 묻는 구조는 사실상 전무하다 할 정도다.
기준의 합리화로 보충될 수 없는 평등
작은 사업장이 다 열악한 것은 아니다. 만만치 않은 매출규모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중소기업이 쪼개기를 통해 영세기업 여러 개로 위장되기도 하고, 기술력 있는 영세기업이 어느 정도의 매출을 영위하고, 괜찮은 노동조건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산업구조 속에서 불가능한 상태로 몰리기도 한다. 그런 여러 조건을 모두 감안해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어 노동법을 때에 따라 적용한다면 문제가 해결될까. 실제로 5인 미만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매출 기준을 추가해 법 적용을 더 넓히자는 제안도 있다. 그렇게 기준을 좀 더 합리화할 수 있다면 나아질까.
이제 마지막으로 앞서 던졌던 두 번째 질문을 풀어야 할 때다. 최소한의 노동기준인 노동법을 지킬 여력조차 없는 이가 타인의 노동력을 이용해 기업을 영위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노동권 보장체계는 타인의 노동력을 이용함에 있어 권리기준을 설정함으로써 노동자의 삶과 노동을 지킬 수 있도록 한다. 오늘의 보다 안전한 노동, 건강한 삶, 그리고 보다 나은 내일이라는 미래까지 노동자의 노동 속에 담긴 필요 요소들이다. 그런데 기업의 규모에 따라 노동권을 차등하는 제도의 구조는 이 같은 노동권 보장체계의 취지 자체를 뒤흔든다. 그렇게 수십 년을 이어온 결과 작은 사업장은 가장 노동재해가 심각하고, 체불임금이 심각한 열악한 일터의 대명사가 되었다.
노동법제의 준수는 다른 사람의 노동을 통해 기업을 운영할 때 주어지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그를 외면하면서 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얻어지는 이윤을 누리겠다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 책임을 덜어주면서 매출을 올리고,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제도 또한 온당하지 않다. 아무리 합리적인 기준을 둔다고 하더라도 결국 차별의 구조화일 뿐이기에,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노동법 적용이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만이 오롯이 평등을 향하고 있음을 우리는 다시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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