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핵심, 대만 해협의 긴장 완화 방안을 찾아라

[정욱식 칼럼] 평화의 재발명 (17) 한일중 정상회담에 바란다

5월 하순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두 가지 행사가 열린다. 하나는 5월 20일 대만의 라이칭더 총통의 취임식이고, 또 하나는 약 5년 만에 열리는 한일중 정상회담이다.

두 가지 행사가 고도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독립 성향이 강한 라이칭더 총통 취임식에 한국의 정부·여당 인사의 참석 문제를 둘러싼 신경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대만 의원친선협회장인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 등이 취임식 참석을 검토하자, 이를 '하나의 중국' 원칙에 위배되는 '내정 간섭'으로 여긴 중국은 3국 정상회담 공식 확인을 늦추는 등 불만을 나타냈었다.

다행히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13일 중국을 방문해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을 갖고 한일중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5월 26〜27일에 한국에서 3국 회담이 열릴 것이 확실시 된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이 지속적인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최근 대만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커진 상황에서 이것이 재발할 가능성이 언제든지 있기 때문이다. 왕이 부장이 조 장관에게 "한국 측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고 대만 문제를 적절하고 신중하게 처리하면서 양국 관계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에서도 이러한 징후를 읽을 수 있다.

더구나 7월에는 미국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한국과 일본 정상도 참석할 예정이고 이 시기에 한미일 정상회담도 추진되고 있다. 최근 나토와 한미일의 움직임의 핵심에는 양안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며 대중국 억제 및 대만 방어에 군사적 힘을 결집시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일중 정상회담에서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더라도 나토 및 한미일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관계 개선의 토대가 유실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상황 전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갈등의 중핵으로 떠오른 대만 해협 문제의 평화적인 관리 방안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즉,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을 낮추면서 평화적인 현상 유지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만 해협의 현상 변경에는 크게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통일이다. 이와 관련해 한미일은 '힘에 의한 현상변경을 반대한다'며 중국의 무력 통일 시도 가능성에 강한 경계심과 대응 의지를 밝히고 있다. 특히 미국은 2027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기까지 거론하면서 동맹국들의 힘을 결집시키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가 있다. 바로 대만의 독립이다. 특히 독립 성향이 강한 민진당이 연이어 집권에 성공하고 미국 등 여러 나라가 대만을 사실상의 독립국가로 간주하려는 움직임도 강해져왔다. 중국이 가장 경계하는 시나리오는 이 지점에서 잉태된다. 미국 주도의 대만 방어 의지와 능력이 강해질수록 대만이 독립을 추구할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의 눈에는 미국 등이 중국에 의한 현상변경을 반대한다며 대만에 대한 외교적·군사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대만에 의한 현상변경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계한다.

하지만 미국 등에서 제기하는 중국의 대만 침공 준비도, 중국이 경계하는 대만의 독립 시도도 자신들의 강경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장한 측면이 강하다. 필자가 만나본 중국의 전문가들은 대만의 분리·독립 시도가 확연해지지 않는 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리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또 대만인들 다수는 독립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호하고 있다. 미국조차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며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왔다.

최소한의 접점은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국제 질서로 자리잡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의 자율성이 공존하면서 평화적인 현상 유지와 양안간 교류협력의 증진을 도모할 때이고 또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양측 모두 '군사력에 의한 평화'가 오히려 대만 해협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지혜에 의한 평화'를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역할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가치 외교'와 미일동맹과의 군사협력을 앞세우는 접근으로는 가치의 실현에도, 한국의 안전과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정학적·지경학적 단층선에 있는 한국의 손실과 위험만 키워줄 뿐이다. 대만 유사시 우리가 연루될 위험이 상존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시켜줄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번 한일중 정상회담과 7월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미일 정상회담은 한국 외교의 시험대나 다름없다. 이 둘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의제가 바로 대만 문제인 만큼, 윤 정부는 '갈등 유발형'이 아니라 '갈등 완화형' 프로세스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임할 필요가 있다. 특정국을 겨냥하는 형태가 아니라 양안 관계 당사자와 관련국 모두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그러나 최근에는 자취를 감춘 정신을 되살리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1월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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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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