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은 자신들이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미국과 거래하는 한국 선박의 해협 통과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26일 CBS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한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는 페르시아만(Persian Gulf) 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한국 선박의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우리는 한국 선박의 제원 정보를 사전에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란 군과 관계 당국의 조율 및 검토를 거쳐, 해당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쿠제치 대사는 검토의 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현재 호르무즈 해협의 통과 조건은 전반적으로 지역의 전시 상황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미국과 이스라엘과 관련된 모든 대상에 대해서는 이 해협 통과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일종의 제재를 적용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제재는 페르시아만 지역 국가들의 에너지 기업 및 유전 개발에 투자한 미국 기업과 그 주주들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페르시아만에서 가지고 오는 석유나 가스 중 미국 회사가 투자한 유전에서 나온 시설을 이용하면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불가능한 것이냐는 질문에 쿠제치 대사는 "네. 현재 미국 기업들과 거래하고 있는 기업들은 전시 상황에서 제재 대상"이라고 답했다.
그는 "페르시아만 북부, 즉 이란이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남부 지역에서 미국 기업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사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쿠제치 대사는 "우리 경제가 이미 큰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이에 상응하는 대응이 뒤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실제로 공격이 시작될 경우 호르무즈 해협에도 전시 상황이 형성될 것이라는 점은 트럼프 측에도 분명히 경고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의 판단 기준은 '미국 우선'이 아니라 '이스라엘 우선'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볼모로 삼는 것이 정당하냐는 지적도 있다는 질문에 쿠제치 대사는 "한국과 같은 국가들은 결과보다 원인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이번 공격이 우리에게만 피해를 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그의 비용을 높일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는 이미 공격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러한 모험적 행동이 지역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란의 평화적 핵 프로그램, 그 성격에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호르무즈 해협 문제 모두 결코 군사적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과 관련, 한국을 비롯해 일본 등 동맹국, 심지어 중국에도 역할을 하라고 압박하는 상황에 대해 쿠제치 대사는 "한국이 이 지역에서 벌어진 이 참혹한 사태에 동참하지 않고, 이러한 실패의 공범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상황의 오명은 트럼프 행정부와 네타냐후에게 남겨져야 한다. 트럼프가 스스로 만들어낸 이 위기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25일(현지시간)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이란 프레스 TV와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과와 관련 "우리가 우방국으로 지정한 몇몇 국가에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허용했다. 중국, 러시아, 인도, 이라크, 파키스탄이 통과할 수 있도록 했다"며 "적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도록 허용할 이유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이란혁명수비대(IRGC) 합동 지휘부인 '하탐 알안비야'의 대변인 에브라힘 졸파가리 역시 같은 방송에서 밝힌 성명을 통해 "통항 규칙은 우리가 단호하게 다시 쓰고 있다"며 "통항 허가 발급은 우리가 결정한다"라고 말했다.
쿠제치 대사가 미국과 연계된 한국 선박의 호르무즈 통행은 불가하다며 한국에 정보를 달라고 요청한 것과 관련 26일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정박 중인 배의 인도적인 상황이 발생할 때 안전 조치에 관련된 내용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라고 밝혔다.
앞서 23일 조현 외교부 장관은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과 통화에서 한국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안전하게 통항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아라그치 장관이 한국에 의약품을 싣고 있는 선박이 있는 거냐면서 그렇다면 정보를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통항에 필요한 선박이 있다면 정보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한국 선박 전반에 대한 정보 제공 요청으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업들과 거래하고 있는 기업들을 제재 대상으로 올리고 해협 통항을 불허하겠다는 이란측 입장과 관련해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 측으로부터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고 밝혔다.
정부가 당장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위해 이란과 일대일로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박일 대변인은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앞으로의 사태 추이, 미-이란 간 협상 동향, 관련국 입장 및 유엔·IMO(국제해사기구) 등 국제사회의 논의 등이 복합돼 있다"라며 관련 동향에 따라 이 문제를 진행해 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에 군대를 파병하는 등의 군사 행동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군 자산을 해당 해역에 투입하겠다는 국가가 거의 없어 동력이 만들어지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이 의제가 준비돼 있지 않는 한 이후 한미 차원에서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 호송을 위한 군 투입 문제는 논의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한국 선박은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보급품 충당을 통해 30~45일 정도의 보급품이 있어 당장 급박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선박 및 선원 상태는 계속 관찰 중에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과 이란이 이번주 파키스탄에서 본격 협상을 가질 것이라는 보도와 관련 쿠제치 대사는 "파키스탄을 비롯한 일부 국가 정상들로부터 선의의 메시지를 받아왔다"라면서도 "트럼프가 주장한 협상 및 이란이 일부 제안에 동의했다는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국과 물밑 대화도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현재처럼 침략이 계속되고 우리나라가 불법적이고 잔혹한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적과의 협상을 시작할 어떤 이유도 없다. 오히려 상대가 전력을 재정비한 뒤, 시간이 지나 다시 같은 공격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9일에 종전 협상을 완료할 것이며 곧 대면 협상이 있을 것이라는 보도에 대해서도 쿠제치 대사는 "들은 바 없다"며 "현재 이란의 여론은 우리의 조건이 충족되어 지속 가능한 평화가 보장되지 않는 한, 휴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라고 단언했다.
쿠제치 대사는 "무엇보다 침략이 중단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모험적 행동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보장할 수 있는 제안과 구체적인 메커니즘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 이번 침략으로 인해 우리에게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협상을 통해 재발방지 및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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