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그러니까 '격노' 했다는 건가요, 안 했다는 건가요?

[박세열 칼럼] '바이든-날리면'의 재연, 尹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

이상한 답변이었다. 대통령의 우주에서 채상병 의혹은 본인과 분리돼 있었다.

9일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질문은 '대통령실의 외압 의혹과 대통령이 국방부 수사 결과에 대해 질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입장을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실과 그 대통령실을 관할하는 대통령 본인이 외압을 행사했느냐고 묻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수사관계자나 향후 재판을 담당할 관계자들도 모두 저나 우리 국민들과 똑같이 채상병 가족과 똑같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열심히 진상규명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답한다.

채상병 사건 조사 결과가 뒤집히고 경찰에 이첩된 자료가 회수되는 과정에서 왜 대통령실이 전방위적으로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대통령은 "저나 우리 국민들과 똑같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갈음한다. 사실 원하는 답변은 간단한 거였다. 대통령이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두고 '격노'했는지 안했는지, 격노 후 이종섭 국방부장관에 전화해 무슨 지시를 했는지, 박정훈 전 수사단장의 주장대로 일부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라고 지시한 적이 있는지 밝히면 된다. 그런 적이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된다.

항명죄로 재판받는 수사단장이 대통령을 이번 사태의 '키맨'으로 지목했는데, 대통령은 이 사건을 마치 제3자 보듯 관전하고 평가하고 있다. 기시감이 드는 일이다. 본인이 직접 한 발언을 두고도 뜬금없이 '진상규명'을 요구한 건 과거에도 있었다.

2022년 9월 26일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사태 당시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에서 '이번 순방 과정에서 행사장에서 나가면서 말한 부분이 논란이 됐다. 입장이 궁금한다'는 질문에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그와 관련한 나머지 얘기들은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된다"고 말했다.

며칠 전 뉴욕 방문 때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발언한 게 맞는지, '이XX들'은 누구를 가리키는지 '바이든'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날리면'이라고 말한 게 맞는지,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는데 본인이 한 말과 그 보도를 두고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대꾸한다. 그때 한국에선 대통령 발언이 어떻게 들렸는지 묻는 웃지 못할 '여론조사'가 성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본인 발언에 대해 단 한번도 본인 입으로 해명한 적이 없다. "사실과 다르다"면서 그 "사실"이 무엇인지조차 법원에 외주를 줬다.

이런 걸 시중에선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한다. 본인 행위에 대한 '진상 규명'을 기다리는 희한한 풍경은 채상병 사건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도 재연됐다.

대통령은 핵심을 알면서 피해가고 있거나, 핵심을 아예 외면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토드 로저스 교수 등은 '거짓말의 제 3유형'인 '호도성 거짓말(lies by paltering)'을 제시했다. 폴터링(paltering)의 사전적 의미는 '말끝을 흐리거나 얼버무리는 일', '불성실하게 발언 또는 행동하는 것', '고의적으로 불분명하게 만드는 것' 등이다. 그들은 거짓이 아닌 문장들을 이용해 대중을 호도하는 것도 '거짓말'로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에게 '성적 관계나 부적절한 관계가 없었냐'고 '과거형'으로 물었는데, 클린턴은 "부적절한 관계는 없다(There is no relationship with Rewinsky)고 '현재형'으로 답해 위증을 피해간 사실이 '호도성 거짓말'의 대표 사례다. 예를 들면 '당신은 어떠한 행위를 했나요?"라고 물었을 때 "아니오"라고 답하는 게 아니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답하거나 "그런 행위는 가능하지 않다"고 답하는 식이다.

문장 하나하나 떼 보면 거짓말은 아니지만, 본질과 관련이 먼 사실을 나열해 논점을 회피하거나, 완전하지 않은 표현으로 해석의 여지를 두거나, 선택적이고 편향적인 단어들을 사용하거나, 나아가 '적반하장'과 같은 과장된 화법을 동반하는 걸 '호도성 거짓말'이라고 한다. 주로 정치인들의 화법에서 발견된다.

채상병 특검은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핵심이다. 채상병 사망 당일 대통령의 심경을 물은 게 아닌데, 갑자기 국방부장관을 '질책'했다는 사실을 장황하게 나열하고(본질과 관련 없는 사실), 대통령의 관여 여부를 물었는데 "납득이 안된다 하시면 그때는 제가 특검하자고 먼저 주장하겠다(과장된 화법)"고 답한다. 대통령의 행위가 있었는지 YES냐 NO냐 물었는데, '진상규명을 기다려야 한다'는 식의 화법으로 대꾸하는 건 자신을 객관화하지 않고 '심판 받는 자'의 입장을 (의도적으로) 망각한 채 '심판자'의 입장에서 사안을 내려다보는 경우다.

비슷한 사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다. 국정농단 사건 초기 그는 미르재단·K재단 의혹에 대해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 자금 유용 등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애초 이 문제의 핵심은 '재단 자금 유용' 따위가 아니었다. 본인은 후에 국정농단 몸통으로 밝혀져 특수부 검사들에 의해 처벌 대상이 됐다. 이런 식의 '회피 화법'은 주로 자신이 한 행위를 감추려 하거나, 자신의 행위에 문제 의식을 못 느끼는 일종의 '피의자 화법'과 매우 닮아 있다. 범죄 심리학자들이나 피의자를 오래 다뤄온 검사 출신들은 익숙할 것이다.

전시도 아니고 '평시 작전'에서 병사가 숨졌다면 당연히 해당 지휘관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휘관의 혐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른 중대한 권력형 비리 의혹 두 가지가 파생된 건 예상 밖이었다. 첫째는 한 군인의 명예에 관한 것이고, 두번째는 대통령이 연루됐을 지 모를 권력형 비위 의혹과 관련된 것이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다. 또한 그 조사가 틀릴 수도 있고, 임성근 사단장이 죄가 없다는 게 나중에 밝혀질 수도 있다. 사단장의 책임 여부는 해병대 수사단, 경찰, 검찰 기소, 법원 판결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정식 절차를 통해 입증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수사 결과가 뒤집히면서 박정훈 대령은 군인으로서 가장 치욕적인 죄명으로 입건된다. 박정훈 대령의 군인으로서 생명줄을 완전히 끊어버린 것에 다름 아니다.

왜 '기소 단계'도 아닌 '수사 단계(정확히는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및 이첩 단계')'에서 이런 사달이 벌어진 것일까? 엘리트 검사는 수사가 곧 최종 결론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특히 특수부 검사들은 그렇다. 검사가 혐의가 없다고 하면 없는 것이고, 혐의가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다. 혐의가 있다고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기소하는 게 특수부 검사의 속성이다. 하지만 이런 특수부 검사식 리더십이 검찰청이 아니라 대통령실에서 행사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임성근이 죄가 있든 없든 관계 없다. 본질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은 수사를 한 군인을 치욕적인 방식으로 모욕을 주고 군인 생명을 끊어버린 처사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의 권한이 부당하게 행사됐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이제 본질을 비켜가는 동문서답 대신, 대통령이 본인의 입으로 스스로 밝혀야 한다. 초동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해서 수사 결과를 뒤집으라 지시했는가? 예스든 노든 그에 대한 답을 원한다. 그리고 그 대답이 맞는지, 그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원한다.

윤 대통령은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모두발언을 집무실 책상에 있는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명패 뒤에서 했다. 책임감 없는 유체이탈 화법은 이 명패의 의미를 두 배로 반감시키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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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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