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았더니 '싸가지 없는' 막내가 되었다…'근육'은 장비에만 필요치 않았다

[전수경의 MZ 여성 그리고 빈곤] 꿈꾸던 영화를 그만둔 이응의 촬영장 이야기

어느 시대에나 영화를 만들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많다. 촬영 현장에 처음 가던 날 '내가 영화를 만든다고?' 들뜬 마음이던 이응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영화'는 '꿈'이라는 말과 어울린다.

영화 제작 현장은 촬영 조명 미술 분장 의상 등 각 부문마다 팀으로 인력이 구성되고 이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팀마다 독자적인 분위기와 업계의 특성이 있어서 차이는 있지만 모든 팀 안에는 수직적 위계가 있다. 촬영팀은 핵심 장비인 카메라를 다루기 때문에 현장에서 영향력도 크고 팀 내 긴장도도 높다. 촬영감독 아래 스태프들은 카메라와 렌즈를 운반하고 설치하는 일부터 촬영에 적합한 기기 설정과 포커스 맞추기, 배터리와 각종 장비 챙기기, 슬레이트와 촬영일지 기록 같은 일을 서열에 따라 나누어 담당한다. 예산과 기한이 정해진 현장에서 날씨와 같은 변수부터 수많은 인력 사이에 생기는 갈등과 소통의 문제까지, 영화 촬영 노동은 총체적으로 매우 거친 노동이다.

이응은 대학에서 영화제작과 편집을 공부하면서 졸업 전부터 촬영 보조로 영화 현장 일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은 늘 영화 만드는 사람이었다.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 이응은 실내에서 하는 편집보다 현장이 잘 맞았다. 체구도 크고 힘도 있어서 촬영 스태프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데 걸림돌도 없었다. 밤샘 촬영도 -현재는 많이 줄었다고 한다-, 불규칙한 생활 리듬도 젊으니까 괜찮았다. 촬영 장비는 언제나 무겁고, 더울 때 추울 때 걱정해야 하는 건 온도에 민감한 장비들이기 때문에 사람보다 카메라가 소중한 것도 익숙했다.

어깨며 허리가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한 건 영화 일을 시작하고 3년이 지나서면서였다. 영화 하나를 하고 나서 다른 현장에 나가기까지 회복기간이 길어졌다. 영화 현장의 스태프들이 산재보험에 가입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눈에 보이는 사고가 아닌 다음에야 허리며 어깨가 아프다고 산재 신청을 할 수는 없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관리해야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다. 마지막 현장이 된 촬영을 마치고 나니 어깨통증이 먼저 오고 통증이 허리로, 골반으로 내려가면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더 이상 못하겠구나' 영화 촬영 현장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이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인터넷을 뒤적이다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 공고를 보았다.

▲ 영화 촬영 현장(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습니다). ⓒ안병호

근로계약서에는 주52시간이라고 되어 있었다. 아침에 시작해서 다음 날 새벽에 일을 마치는 날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4일 일하고 3일 쉬는 패턴에 익숙해진다. 물론 익숙해져도 몸이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응과 마주 앉아 영화 제작 현장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응이 영화 일을 그만두기로 한 이유가 불규칙한 노동과 허리의 통증 때문이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촬영팀은 촬영감독 아래 보통 1조수, 2조수, 3조수, 4조수까지를 기본으로 두고 보조 카메라 감독과 보조 인력이 더 붙어서 10명에서 12명 정도가 촬영팀을 이룬다. 1조수는 촬영감독과 스타일이 맞아서 오래 일하는 경우가 많다. 1조수가 팀장 역할을 하며 팀을 구성한다. 공동작업 경험, 주관적인 평가 기준 등이 고용 여부를 결정짓는다. 좋은 평판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촬영 현장은 육체 노동강도가 높지만 영화는 예민한 작업이기에 둔한 사람, 상황을 잘 못 읽는 사람은 일을 오래 하기 힘들다.

1~2년 차가 4조수 막내, 3~4년 차가 3조수, 4~5년차 부터는 카메라 전반을 담당하는 2조수가 되고 마침내 1조수가 되면 촬영감독 옆에 앉는다. 대부분 1년을 채우면 4조수 막내를 위쪽 단계로 올려주고 다시 1년을 채우면 3조수로 올린다. 이응은 4조수 막내 일을 꼬박 2년 반 동안 하고 3조수가 됐다. 3조수가 되었을 때는 2조수가 하는 전반적인 업무를 다 했지만 계속 3조수였다. '실력도 어디 가서 일 못한다는 말 들어본 적이 없고, 다시 많이 불러주고 팀 안에서 인정도 받았는데' 서열은 올라가지 않았다. '거기는 좁고 보수적인 집단이어서 잡일은 막내가 다 한단 말이에요. 저는 그런 생활을 오래 했는데, 한 단계 올라갔는데도 실질적으로 그 위 단계 업무를 다 하는데도 윗조수로 올려주지 않았어요'.

위 단계로 갈수록 아래 단계의 조수에게 일을 시키는 권한이 생기고 시스템 전반 관리 업무를 많이 하기 때문에 신체적인 노동의 강도가 줄어들 수 있다. 같이 일하는 여자 선배들이 말하길 '직급이 낮을수록 무거운 장비를 더 많이 들고 더 뛰어다니기 때문에' 빨리 한 단계 올라가야 몸이 덜 축나고 그래야 더 오래 일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조언이었다. 예술이나 창작 영역에서는 승진에 표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이 막내 포지션으로 시작한 남자 동료들이 위쪽으로 올라가고, 나보다 늦게 막내로 들어온 남자 사람도 위쪽으로 올라가는데' 여성인 이응만 여전히 막내 포지션에 있던 것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이 필요하다. 설명 대신 여자 선배들은 말했다. '더 독하게 해야 돼!' 이응은 독해지지 못했다. 그만두었을 때 실제로 패배자라는 말을 들었다.

'제가 능력이 안 되면, 장비들을 못 들면 저를 쓰지는 않았겠죠.' 12시간을 촬영한다는 것은 12시간을 거의 서서 일한다는 것이고, 힘을 쓴다는 이야기이다. 렌즈는 무겁고 비싸다. 렌즈 박스는 10~20Kg, 카메라가 15Kg, 카메라를 지탱하는 트라이포드가 15~20Kg이다. 전체 한 세트를 옮길 때마다 35~40Kg을 든다. 온몸을 쓴다. 그러나 아무리 똑같이 일해도 이응도 늘 남성들에게 쳐지는 느낌이었다. '생리할 땐 컨디션이 많이 떨어지잖아요. 화장실도 자주 가야 하고. 화장실이 가까우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야외에서 촬영하면 화장실이 멀리 있어요. 그런 것에 대해서 왜 이렇게 자주 가냐고들 하죠. 나는 흡연자들 담배 피우러 다녀올 때 자리를 지키는 사람인데도' 수십여명의 스태프 중에 이응만 여성이었던 현장에서 이응의 화장실 이용이 모두의 관심사가 되어있고, '여성만 배려해 주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말한 이들이 그 안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영화는 필수로 들어가는 비용이 있기 때문에 시작하면 최대한 많이 촬영한다. 하루 순 촬영을 12시간 하고, 점심 식사, 저녁 식사 시간을 더하면 14시간에서 16시간을 촬영장에서 보낸다. 촬영장에서 조수의 업무와 촬영장 밖에서의 조수의 업무, 두 영역 모두 필수적인 막내의 업무다. 촬영할 때는 그날 촬영에 필요한 씬(scene) 목록을 정리해서 감독과 스태프들이 하루의 할 일을 관리하도록 상기시키고, 식사 시간 전에 식당에 가서 주문한 메뉴대로 밥을 시켜 두고 수저를 세팅하고, 커피차가 오면 촬영 도중에 커피차까지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배달한다. '물 좀 줘' 라는 말이 나오면 이미 늦었다. 목이 마를 타이밍에 알아서 가져다준다. 무엇이든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준비하는 능력자가 막내다. 기타 담배 심부름과 잡일을 한다. 직책이 높은 이들은 촬영장의 필수인력이고 막내는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라고 이응은 말하는데 스케줄 관리와 밥과 커피 없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여성이 더 센스 있고 섬세하다고 생각해서 막내 조수로 여성을 고집'하는 팀장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에게 더 있다고 생각되는 '센스' '섬세'가 영화라는 예술이 요구하는 재능이나 감각과 동일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이응이 긴 막내 서열을 벗어나 3조수가 되었어도 커피 업무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커피는 여자가 타 주는 게 좋다'는 촬영감독들이 있다. 촬영감독이 이응을 자를 권한이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팀의 분위기를 깨지 않는 것이다. 이응은 언제나 웃으면서 커피를 배달했다.

'깡으로 일했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만들고 몸 관리를 했어야 한다' 이응이 말했다. 하루 12시간을 서서 장비를 옮기던 사람이 쉬는 날이라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갈 수 있을까. 촬영을 시작하면 촬영지에서 1~2개월씩 숙소 생활을 하는 일도 많은데 이응의 반성은 적절한 것일까. 기온이 30도가 넘는 여름에 12시간씩 일하다가 더위를 먹어도 빠질 수 없는 것이 현장이다. 이응이 체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액션영화를 찍을 때 문득 깨달았다. 처음 20Kg 트라이포드를 들 때 아무도 드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 팔 힘으로만 들다가 어깨에 무게중심을 맞춰 드는 법을 깨달으며 신이 났던 이응이지만, 무리 없이 하는 일과 간신히 하는 일은 다르다. 카메라를 바로바로 받아주어야 하는데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자신의 직업적 능력에 대한 비관과 동시에 이응은 직업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꺾던 현장의 일화를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했다. '술 먹는데 올래?' 묻던 남성 선배들,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숱한 '호의'에 다른 주소를 말해주고 내려서 걷던 귀갓길들, '웃지 않기'를 실천하였더니 '싸가지 없는' 막내가 되어있는 날들까지, 이응이 말한 체력과 근육은 장비를 드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 덧붙임

김선아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교수가 2020년 발표한 「성주류화 전략의 관점에서 바라본 성평등 영화정책」 논문을 살펴보았다.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한국영화성평등소위원회가 한 '한국영화산업 성평등 정책수립을 위한 연구' 에 따르면 2010년에서 2019년, 10년 동안 개봉한 한국영화 1433편 중에 여성 제작자는 11.2%, 여성 프로듀서 18.4%, 여성 감독 9.7%, 여성 각본 작가 17.4, 여성 촬영감독은 2.7%였다. 촬영을 포함한 기술 직군의 스태프는 절대 다수가 남성이었다. 분장, 의상 직군에서만 여성의 비율이 높았다.

10년간 전체 흥행순위 50위 영화 468편 가운데 여성 주연 영화는 24.4%였고, 남성 주연 영화가 75.6%였다. 여성스태프의 주당 근로일수와 야간근로일수가 더 길고 평균임금은 남성스태프보다 낮았다. 2018년 전국 대학의 연극영화과 입학생의 59%가 여성이었지만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영화아카데미로 가면 여성은 30%로 줄어들었다.

논문은 영화 촬영장에서 위계의 상층부에 있는 이들은 거의 남성이며, 스태프 사이에서도 남성 직군과 여성 직군 사이에 위계가 형성된다고 말한다. 여성 직군의 숙련은 인정받지 못하며 임금 격차가 생긴다. 영화 스태프 안에서 여성의 지위는 지난 10년간 변화가 없었다. 영화 촬영 현장에는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오피스 와이프'와 '꽃' 역할이 있는데, 배우들에게 부채질하기, 추위 막아주기 같은 역할부터 비서, 돌봄 노동 역할을 요구받는다. 김선아 교수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는 관객이 듣지 않는다. 여성은 기술직에 적합하지 않다. 여성은 분장, 의상 같은 직무에 적합하며 돌봄 노동은 일의 일부이다. 여성은 큰 예산 규모의 영화를 다루기 어렵다. 여성의 리더십은 영화 현장에 적합하지 않다'와 같은 편견과 고정관념이 한국 영화산업 안에서 여전히 강력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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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타인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언제나 감탄하고 감사하고 존경한다. 할 수 있는 건 말, 쓸 수 있는 건 글, 고마운 마음을 글로 전하고 싶다. 달리기는 못 해도 걷는 건 조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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