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의 '윤석열 영입'으로 한 차례 우회했지만, 여전히 '촛불시대'

[장석준 칼럼] 총선 결과 단상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결과에 관해서는 며칠 새 이미 많은 논평과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대개는 윤석열 정부와 야당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시간 지평이 2022년 대선과 그 후를 맴돌며, 더 길어봐야 2019년 조국 법무부장관 사태를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사건에는 그에 영향을 끼치는 복수의 시간대가 있기 마련이다. 이번 선거도 마찬가지다. 분명 윤석열 정부와 제21대 국회가 벌인 일들이 중대한 영향을 끼쳤겠지만, 더 먼 과거의 일들이 그에 못지않은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아니, 1, 2년 전에 있었던 사건들 역시 어쩌면 더 먼 과거의 대사건이 남긴 잔향 속에서 움직였던 것일지 모른다.

이번 총선에서도, 그런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역할을 한 '대사건'이 있었다. 바로 2016~17년 촛불항쟁이다. 한때 '혁명'이라고까지 불렸으나, '촛불정부'를 자임했던 정부의 실패 이후에는 마치 잊고 싶은 쓰디쓴 옛 기억 같은 취급을 받는 그 촛불시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위상 격하나 망각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여전히 '포스트 촛불', '후(後)/탈(脫) 촛불'의 역사적 시공간 안에 있다. 8년 전 가을에 시작한 한 시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총선 결과는 그 강력한 증거다.

촛불 이후, 아직도 재기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 세력

첫째, 국민의힘의 득표 결과는 정확히 촛불 이후 양대 정당 간 세력균형을 반영한다. 이번에 국민의힘의 비례위성정당 국민의미래는 36.67%(약 1040만 표)를 득표했다. 4년 전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이 받은 33.84%(약 940만 표)에서 약간 늘어난 결과다. 반면에 그 중간에 있었던 전국선거인 대통령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의 윤석열 후보가 48.56%(약 1640만 표)를 얻어 당선됐다.

흔히 주목하는 것은 대선에서 50%에 육박했던 여당 득표율이 35% 수준으로 주저앉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승자독식선거인 대선(결선투표제 없는 한국형 대선) 득표율과 총선 정당투표 득표율은 단순 비교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연합과 조국혁신당의 정당투표 득표율 총합이 50%를 넘었다는 사실과 견줘보면, 대선에서 총선에 이르는 여당 득표율 변화는 '추락'으로 보일만도 하다.

한데 우리가 비교해야 할 대상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촛불항쟁 직후 실시된 2017년 조기대선에서 국민의힘의 더 먼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가 얻은 성적이다. 홍 후보는 24.03%(약 790만 표)를 득표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까지 같은 당 동지였던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득표(6.76%)를 합치면, 30%가 조금 넘는다. 다당 구도로 치러진 이 대선 결과와 이번 총선 결과를 비교할 경우, 국민의힘은 지지층이 오히려 늘어난 셈이 된다.

이러한 득표율 추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촛불 이후 양대 정당 간 힘의 우열이 돌이킬 수 없이 뒤집혔음을 뜻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우위에 있던 것은 국민의힘 전신 정당들이었다. 비록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이 우위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국가기구를 독점해온 세력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2000년대 중반에는 선거에서 중간층의 지지를 끌어올 수 있는 유능한 대중정치가로서 이명박, 박근혜를 배출함으로써 우위를 10년 정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촛불시위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이 '장기 박정희 시대'의 문을 닫고 새로운 상황을 열었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21세기에도 계속 활력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준 두 정치인, 이명박, 박근혜가 모두 교도소에 수감됐고, 이와 함께 그들이 일궈놓은 담론이나 전략까지 다 붕괴했다.

그나마 탄핵 국면에 대두한 태극기 시위 덕분에 핵심 지지층이 재결집했고, 이에 의지해 국민의힘 전신 세력은 가까스로 잿더미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다시 국민의힘 세력 재건에 한계선을 그었다. 태극기 시위대를 단결시킨 극우 이데올로기로는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는 있어도 이명박, 박근혜가 그랬던 것처럼 광범한 동맹을 형성할 수는 없었다. 또한 이런 핵심 지지층에 의지하는 정당을 통해서는 '제2, 제3의 이명박, 박근혜'를 만들어낼 수도 없었다.

다만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서 무소속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영입함으로써 이런 현실을 성공적으로 우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우회'였을 뿐이다. 단지 '시간 벌기'였다. 국민의힘이 재기하려면,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이 최소한 과거 이명박, 박근혜만큼은 새로운 보수 이념을 제시했어야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태극기 시위대' 이데올로기를 빨아들이며 그 화신을 자처했다. 덕분에 국민의힘은 촛불 이후 제기된 어떤 물음에도 아직까지 답을 내놓지 못한 신세가 됐다.

그 결과가, 제19대 대선의 약 25% 득표율보다는 많지만 그래도 야당 전체의 득표에 비해 너무도 열세인 약 35%의 정당투표 득표율이다. 말하자면 백중지세에서 국민의힘 계열 쪽으로 조금 기울었던 양대 정당 간 힘의 균형이 국민의힘 30-40% 대 범민주당 60-70%인 상태로 굳어진 것이다. '촛불 형세'라고나 할까. 앞으로 윤석열 정부의 잔여 임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이 세력균형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촛불연합'의 중간계급 중심성이 더욱 뚜렷해지다

둘째, 조국혁신당의 급부상은 촛불광장에 모였던 시민들 내부의 역학이 다시 한 번,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표출된 결과다. 국민의힘 대 야당의 득표 분포가 촛불 이후 한국 사회 전체의 세력균형을 보여준다면, 야당 전체에서 조국혁신당의 급성장은 촛불연합 내부의 세력균형을 드러낸다.

누가 보든 이번 총선에서 가장 인상적인 현상은 조국혁신당 바람이었다. 정당 형태로만 보면, 조국혁신당은 제21대 총선에서 비록 좁은 의미의 비례위성정당은 아니되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제2비례위성정당 역할을 한 열린민주당의 판박이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적인 시각일 것이다. 이에 더해 조국혁신당은 24.25%에 이르는 새로운 지역구-정당투표 교차 지지층을 형성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13%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수치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조국혁신당의 이념-노선이다. 조국 대표는 "조국혁신당이 정의당을 대체할 것"이라고 했지만, '대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조국혁신당의 성격이 정의당과 너무 다르다. '진보'를 표방하면서도 조국혁신당은 사회 개혁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검찰독재 개혁'에 집중한다. 이 점에서 이재명 대표의 더불어민주당과도 차이가 있다. '진보'가 '사회 개혁'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세간의 상식에 따른다면, 이 말에 더 어울리는 쪽은 현재의 조국혁신당보다는 더불어민주당이다.

선거 후에 발표된 여러 데이터는 조국혁신당의 지지층에도 흥미로운 구석이 많음을 보여준다. 서울만 두고 보면, 부동산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더불어민주당 지지세보다 조국혁신당 지지세가 뚜렷했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과 조국혁신당을 놓고 정당투표를 저울질한 이들이 많았기에, 두 당의 지지층이 확연히 갈라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단 상위 중간계급의 지지도는 조국 대표의 정당이 이재명 대표의 정당보다 높다고 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촛불항쟁 당시를 떠올려봐야 한다. 촛불광장에 모여든 시민들, '촛불연합'은 참으로 다양한 계급, 계층, 집단, 흐름들로 이뤄져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채로운 시민들이 모인 만큼 광장 안의 목소리도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광장을 처음 연 민주노총이 내건 요구도 있었고, 이후 사회운동의 대세가 될 여성들의 외침도 있었다.

그러나 촛불시위가 확대될수록 한 가지 목소리가 다른 많은 목소리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혹은 '탄핵' 요구가 어느덧 다른 많은 외침을 하나로 모으기보다는 가려버리는 역할을 했다. 그 덕분에 촛불광장은 더욱 강력하고 신속하게 제도권 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촛불항쟁이 모처럼 한국 사회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할 기회가 되길 바랬던 이들에게는 실망의 기운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미 이때부터 촛불연합 내부에서 다른 계급, 계층에 비해 중간계급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동한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토요일에 촛불광장에 모이는 이들이 따로 있고, 그렇게 모일 시간도 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이들이 따로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아무튼 국민의힘 세력에 맞서는 데는 적극적이지만 사회 개혁에는 미온적인 한국 중간계급의 특징이 촛불연합의 이후 행로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촛불정부'는 들어섰지만, '촛불개혁'은 답보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이번 선거로 구성된 야당 진용을 살펴보면, 기시감을 떨치기 힘들다. 더불어민주당이 있고 그 주위에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이 포진해 있던 구도는 사라지고,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두 꼭짓점 역할을 하는 구도가 등장했다. 전반적으로, 노동운동 등 사회운동의 목소리는 더욱 약해지고, 중간계급이 끼치는 영향력은 더욱 강해졌다. 촛불연합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의 양상과 유사하다. 아니, 이번 총선 결과는 지금껏 사라지지 않은 그 촛불연합의 투명한 정치적 표현에 가깝다.

이렇게 중간계급 중심성이 유례없이 강화된 야당 진영이 윤석열 정부에 맞서며 만들어갈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물음의 답은 시간이 조금은 지나봐야 감이 잡히겠지만, 그 전에 이미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이번 총선을 통해 촛불연합이 다시금 전성기의 실체를 복원했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지금 우리 시대는 '후-촛불' 시대다.

다음 시대를 열려는 유일한 도전자가 이준석인 세상

이준석이 유독 부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준석은 이번 총선에서 단 세 사람뿐인, 양대 정당 아닌 정당의 지역구 당선자 중 한 명이다. 게다가 새로운미래의 김종민 당선자나 진보당의 윤종오 당선자가 해당 지역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빠진 덕을 봤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유일한 제3정당 지역구 당선자라 할 수 있다.

유별난 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이준석은 이번 총선에서 부각된 인물 중에 유일하게 촛불의 긴 그림자에서 벗어나 있다. 후-촛불 시대라는 규정을 거의 받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촛불이 만들어놓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세력균형에 지배받기보다는 이를 바꾸려 하는 도전자다. 국민의힘 안에서는 이준석의 이런 면모가 당 내 정치에 포획돼 오히려 잘 부각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좀 다르다. 그가 속한 개혁신당이 '개헌'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준석이 구사해온 정치 담론과 전략은 서구형 극우 포퓰리즘의 변형이었다. 그래서 불안감과 걱정이 앞선다. 만약 이준석 세력이 현재 국민의힘으로 굳어진 진영을 재편하는 데 성공하여 '촛불 형세'를 격동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한데 그 주된 자원이 분열과 혐오에 바탕을 둔 한국형 극우 포퓰리즘이라면? 중간계급 중심성이 관철되는 촛불연합에 어떤 방향에서든 불만을 느끼는 이들이 그 깃발 아래에 모여든다면?

복합위기의 진실과 대면하지 못한 채 지루하게 장기 지속되려 하는 '후-촛불'과, 어쩌면 그보다 더 나쁜 방향으로 세상을 몰아갈지 모르는 '탈-촛불'의 모순적 공존. 이것이 제22대 총선이 보여주는 지금 한국 사회의 좌표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하루 앞둔 9일 오후 여야 각 당 대표와 후보자들이 마지막 집중 유세를 펼치고 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용산역 앞 광장에서 선거유세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후보들, 청계광장에서 총력 유세 펼치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후보 등. 사진 아래 왼쪽부터 경기도 고양시 덕양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들과 인사하는 녹색정의당 심상정 대표, 부천시 홈플러스 상동점 광장에서 파이널 집중 유세하는 새로운미래 오영환 총괄선대위원장과 후보들, 화성시 롯데백화점 인근에서 파이널 집중 유세하는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마지막 유세하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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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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