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을 두고 한국 언론은 환호했습니다. 차별과 폭력, 저임금과 착취에서 벗어나려 한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파업은 성별임금격차를 비롯한 성차별을 개선하는 힘이었습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을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여성노동자들의 자리마저 삭제하려 합니다. 여성노동자들이 싸워 쟁취한 성과마저 지우려합니다. 이에 한국에서도 2024년 3월 8일 여성의 날을 여성파업으로 돌파하고자 합니다. 41개의 단체와 노조가 모여 2024여성파업조직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연재 기고 '역행하는 시대, 우리가 멈춘다'는 2024여성파업의 의미와 현재에 대해 말합니다.
"짐 많이 쌀 필요 없어요. 금방 내려올 건데 뭐. 아니 이 캐리어는 뭐야, 어디 여행가요? 몸 하나 올려 보내는 것도 버거운데! 캐리어 놓고 일단 몸만 올라가요! 빨리 빨리!"
2019년 7월 1일 오전 3시, 우린 이런 대화를 나누며 서울 캐노피(톨게이트 지붕) 지붕에 이삿짐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갔다. 도명화 당시 톨게이트지부 지부장과 조합원들이 휴게소에서 우동 한 그릇씩 먹고 캐노피에 올랐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났지만, 우린 아직 내려오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끌어 내리면 다 죽는다’며 협박을 했다. 우린 그렇게 '안' 내려 왔다.
'설마 1500명을 해고하겠어? 그것도 공기업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에이, 설마...'
그러나 한국도로공사(이하 도로공사)는 우리를 해고했다. 2019년 6월 30일 직접고용을 외쳤던, 비정규직 천오백 명이 집단해고 되었다. 도로공사는 잘못이 없다며 뻔뻔했고 외주사 계약만료라 해고가 아니라고 한다. 그건 그들이 믿고 있던 법이고, 현실은 하루아침에 노동자가 길거리로 쫓겨나는 해고였다. 그렇게 1년간 해고의 협박과 자회사의 회유 속에 버티던 1500명이 10년, 20년을 지켜온 일터에서 쫓겨났다.
서울캐노피 점거팀은 날이 밝자 텔레비전 뉴스에 나왔고, 지부장과 점거팀을 뒤로한 채 우린 청와대로 갔다. 청와대 100미터는 접근할 수도 없었다. 경찰은 방패와 차벽으로 우리가 근처에 접근하는 것조차 막았다. 우린 그곳에서 노숙 투쟁을 시작했다. 눈뜨면 방패와 싸우고, 경찰에 연행되고, 119 응급차에 호송되었다. 갈비뼈에 금이 가는 것쯤이야 진통제로 버텼다.
사실 그 당시는 뼈가 부러져도 부러진 줄도 모르고, 이후에야 부상 사실을 알게 된 조합원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납 여성노동자들의 평균연령은 50대를 넘었다. 곧 퇴직할 조합원도 몸을 아끼지 않았다. 경찰의 방패와 차벽이 우릴 해고한 것도 아닌데, 왜 날이면 날마다 그것들과 싸워야 하는지 속이 터져 나갔다.
"우린 해고될 겁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해온 짓을 보면 해고를 해도 열두 번은 할 놈들 입니다!"
조합원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들이 해고의 충격파에서 좀 더 쉽게 헤어 나올 수 있게 계속 이야기한 점도 있다. 또한 파업권도 없는 우리가, 그것도 여성노동자가 3교대에, 회사일에, 집안일에, 가족까지 돌보며 투쟁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했다. '해고가 되어 다행이었다'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냐 하겠지만, 그 당시 우리들은 바지사장들의 외주하청에서 1년씩 연장하며 살아가는 하루살이 인생이었고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었다. '이젠 그런 삶을 끝장내자, 이 투쟁으로 끝장내자.' 그런 마음이었다.
'3교대 하랴 집안일 하랴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투쟁만 하니 할 만하다'는 조합원도 있었고, 집안일 내팽개치고 뭐 하는 거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남편들 등쌀…. 그것도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해 갔다. '내가 없어도 아이들은 학교를 가고, 내가 없어도 세탁기도 돌아가고, 내가 없어도 명절 상은 차려졌고 김장도 하더라.' 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스스로 가두었을까 후회도 됐다.
어느 날은 열대야 폭염 속에서 겨울 패딩을 준비하라고 발언했다. 조합원들은 "우리 부지부장이 드디어 미쳤구나" 했다고 한다. 삼복더위에 롱패딩을 왜 사라는 건지…. '우린 금방 끝낼 생각 없다'는 걸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긴 투쟁이 될 거라고,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조합원들에게 전하는 뜻이기도 했다. 겸사겸사 실제로 롱패딩을 사는 조합원도 있었다.
청와대 노숙 투쟁, 캐노피 점거 투쟁 98일, 도로공사 점거 투쟁 143일, 민주당 의원실 점거 등 긴 투쟁의 나날을 216일 채운 끝에 우린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그렇게 2020년 5월 14일 도로공사에 복직할 수 있었다.
파업 투쟁을 하며 우리는 변했다
톨게이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지만, 우리는 세상을 놀라게 하고자 투쟁한 것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차별받던 우리의 상황,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여성은 차별받아도 된다는 인식 속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버텨왔던 세월, 그리고 더 이상 무서울 것도 물러날 곳도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싸울 수 있게 만들었고, 우리 힘으로 온전히 싸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동지들의 끊임없는 연대에 감동했다.
여성은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지, 나약하거나 차별받아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대 온 동지들은 '힘을 주고 가려 했는데 힘을 받고 간다'라는 말을 참 많이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해고자인데도 길바닥에서 하늘을 이불 삼아 잠을 자고 빗물에 밥을 말아먹어도 우린 즐거워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이제 제대로 세상을 보게 된 내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었다. 그걸 본 연대자들이 좋았나보다.
태어나 처음 유치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조합원들은, 씻을 수 있었다며 자랑했고, 오랜만에 편히 잤다고, 한번 가볼 만한 곳이라고, 너스레를 떨고 말을 했다. 경찰차에 호송되어 울고불고 하는 모습을 이미 다 보고 들었는데도 그 사실은 쏙 빼고, 무슨 엄청난 경험담을 자랑하듯 늘어놓는 조합원들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언제 우리가 경찰서 유치장을 가볼 거라 생각이나 했을까? 살면서 경찰서 유치장을 갈 일이 있기는 할까? 힘들었던 자신보다 걱정하는 동지들을 위해 별거 아니라며 누구든지 가게 되면 꼭, 씻고 오라고 그게 우리의 권리라고 얘기를 하는 조합원들이 너무 당당하고 멋져 보였다.
누군가 "부지부장님, 우리 투쟁은 언제쯤 끝날까요?" 하고 물어오면 나는 "오늘 끝내드릴까요?" 하고 되물었다. 언제든 투쟁은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느냐? 지금 끝내도 되냐? 후회 없겠느냐?" 라고 나는 조합원에게 되묻곤 했고, 조합원은 '물어본 내가 미친년이지' 하며 돌아서 갔다.
나는 힘들어하는 조합원들을 보면서도 위로는커녕 내가 먼저 경찰에게 시비를 걸어 소란을 피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투쟁이 언제 끝나느냐고 물었던 조합원이 어느새 내 옆에서 나보다 더 큰 소리로 경찰과 싸웠다. 그 모습에 나는 안도했고, 그렇게 조합원들은 투쟁할 때 멋진 여자들이었다.
아무 잘못을 안 했어도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던 우리 수납노동자들에게 투쟁은 돌파구였다. 나를 깨고 나올 수 있는 돌파구, 세상에 내가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소리를 낼 수 있는 돌파구, 숨구멍이었다. 매일이 즐겁기야 했겠냐마는, 이혼하자는 남편에게 '지금은 바쁘니 투쟁 끝나고 얘기하자'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다는 걸 투쟁으로 알았다. 투쟁 전에는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이었겠나 싶다. '내가 없으면 우리 집은 아무것도 못해'가 아니라, '내가 필요한 자리는 지금 이 투쟁현장이야'라고 말할 수 있었다. 톨게이트노동자의 투쟁은 여성노동자를 변화시켰고 여성노동자의 가족도 변화시켰다.
3.8 여성파업은 시작일 뿐
우리는 직접고용을 선택했고 도로공사 직원이다. 하지만 투쟁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투쟁 중이다. 위험한 업무에 대해선 작업중지를 하고, 제대로 된 업무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작은 차별조차 용납하지 않고 지금도 투쟁 중이다.
이번 3.8 여성 파업에는 두 개 사업장이 쟁의권을 갖고 파업한다. 한국처럼 정치파업이 부정당하는 노조법의 한계가 있는 현실에서 이번 파업의 의미는 특히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여성파업의 요구는 비정규직이 많고 성별임금격차가 큰 한국 현실에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구안은 △첫째, 성별임금격차 해소 △둘째, 돌봄 공공성 강화 △셋째, 일하는 모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고용안정과 비정규직 철폐 △넷째, 임신중지에 건강보험 적용과 유산유도제 도입 △다섯째, 최저임금 인상이다.
먼저 여성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를 상징하는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크며, 26년째 1위다. 톨게이트 노동자만 보더라도 정규직이 되었지만, 임금은 최저임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성 일자리가 저임금인 구조를 없애야 한다. 둘째 요구안은 돌봄 공공성 강화다. 돌봄노동이 여성에게 전가되는 현실을 구조적으로 막고자 예산 및 인력확보, 돌봄노동자, 임금 및 노동조건 강화를 내걸고 있다. 돌봄의 시장화가 아니라 돌봄에 대한 국가책임, 공공성 강화다. 앞서 여성에게 돌봄이 전가되는 현실은 여성노동자의 파업 투쟁을 막는 기제로도 작동한다.
셋째, 일하는 모두의 노동권 보장, 고용안정과 비정규직 철폐다.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간접고용이나 특수고용노동자로 있어서 임금 및 노동조건에 있어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해마다 겨울이면 해고 위험에 시달리지 않도록 비정규직 제도를 없애야 한다. 건강보험 고객센터처럼 공공부문에서도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사업장이 많다. 3월 7일과 8일 우리가 파업하는 이유다. 넷째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과 유산유도제 도입이다.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여성들의 건강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없어 여전히 위험한 상태다.
마지막 요구안이 최저임금 인상이다. 여성 노동자의 약 36%가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으며, 최저임금 미만 여성노동자 비율은 21.1%나 된다. 최저임금 인상은 여성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전반적으로 올릴 수 있는 방도다.
여성파업을 제안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과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머뭇거렸을 것이다. 이번 여성파업은 일터만이 아니라 집안의 가사노동을 거부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들었다. 그러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나부터다.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 엄마, 아내, 딸, 며느리, 그 자리를 내려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도 노동자라는 걸 잊지 말자는 것이다.
불합리함과 차별에 익숙해지지 말고, 억울하다고 말만 하지 말고, 우리가 움직이고, 나부터 움직이자, 그래서 우리의 자리를 당당히 찾아야 한다. 누가 찾아주지 않는다. 하루 여성파업을 한다고 이 나라를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시작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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