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던 아이, 카페 부점장이 되더니 이제는…

[일하는 발달장애인] 이세민 행복한베이커리&카페 부점장

푸르메소셜팜에 이어 행복한베이커리&카페(이하 행베)에서도 자립의 첫 포문이 열렸습니다. 발달장애인 직원으로 첫 부점장이 된 이세민 씨(31·행베 종로점 부점장)가 최근 홀로서기를 시작한 겁니다.

첫 독립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세민 부점장의 독립에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우선 살 집을 구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는데요. 오랜 논의 끝에 첫 집은 이모가 소유한 빌라의 옥탑방이 되었습니다. 이모 집에 얹혀사는 것이냐고요? 아닙니다. 정식으로 임대차계약을 맺고, 월세와 공과금도 다달이 냅니다. 집안일도 스스로 하고 있으니 독립의 요건은 다 갖춘 셈입니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독립이냐’고 따져 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또래의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그 가족들에게 이세민 부점장의 독립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일할 직장과 주변의 작은 도움만 있다면 발달장애인도 혼자 살 수 있고,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가족의 돌봄 부담이 줄어든다는 뜻도 됩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꿈 같은 일이지요.

▲ 이세민 행복한베이커리&카페 부점장과 어머니 유영남 씨. ⓒ푸르메재단

말이 없던 아이

"아주 어릴 때부터 세민이는 말을 거의 안 했어요. 불러도 대답이 없고, 눈도 잘 맞추지 않고요."

어머니 영남 씨가 보기에도 이 부점장은 또래 아이들과 조금 달랐습니다. 그래도 장애가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후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병원에 가서 지적장애 3급 진단을 받았습니다. "놀이치료부터 미술, 언어, 그룹치료 등 재활치료를 많이 받았어요. 친구들이랑 얘기를 안 하니까 걱정이 됐죠. 조금이라도 입을 열게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학창 시절 내내 '말 없는 아이'였던 세민 부점장은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어렵기만 했습니다.

말 없는 직원

말이 없던 아이는 졸업 후 복지관 내 장애인 카페나 학교 급식 배식, 사무실 등에서 일하며 '말 없는 직원’이 됐습니다. "집에 와서도 일 얘기는 전혀 안 했어요.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죠."

이 부점장이 행베에 입사해 푸르메 가족이 된 것은 '2015년 8월 24일'입니다. 입사일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그는 "커피 만드는 일이 좋아서 지원했는데 손님들 보고 주문받고 음료를 만드는 등 모든 일이 즐겁다"고 말합니다.

"행베에 다니면서 세민이가 많이 좋아졌어요. 집에 와서 동료들과 장난친 얘기도 하고, 가끔 회사 흉도 보고, 일하는 게 재밌다는 얘기도 많이 했요." 영남 씨는 전에 없던 아들의 변화가 반가웠습니다. 이 부점장 역시 자신의 변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편하게 대해주니 제 마음도 편해져서 말이 많아진 것 같아요."

▲ 이세민 행복한베이커리&카페 부점장. ⓒ푸르메재단

첫 번째 도전: 부점장으로 자리 잡기

4년 전, 행베 장애인 직원 중 첫 부점장이 된 세민 씨. 지금은 "다른 직원들을 잘 도와줘서 부점장이 된 것 같다"고 담담히 그 이유를 추측하지만,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낀 것은 기쁨보다 부담이었습니다.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됐어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지만요."

이 부점장과 어머니 영남 씨는 승진 후에도 바뀐 건 별로 없었다고 말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 부점장의 무거운 입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가볍게 올리지 않았고, 무표정한 얼굴은 쉽게 변하는 감정을 담지 않았습니다. 변화에 익숙지 않은 마음은 더 신중한 태도로 나타났죠. 그러면서도 동료와 고객을 대할 때는 조금 더 풍부한 표정으로 조금 더 많이 말하고, 앞서 움직였습니다. '말 없던 아이’가 부점장의 위치에서 멋지게 성장한 것입니다.

두 번째 도전: 홀로서기

이 부점장은 올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가족의 품을 떠나 독립을 시작한 겁니다. "나이도 있고, 안정된 직장도 있으니 세민이도 독립을 경험해볼 때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월세와 각종 공과금을 제대로 낼 수 있을지, 돈 관리는 어떻게 할지, 집안일을 알아서 잘할지 걱정도 정말 많았죠. 몸은 컸어도 제 눈에는 여전히 아기 같거든요."

영남 씨는 아들이 출퇴근할 수 있을 만한 집을 찾기 위해 자매들과 함께 3년간 수십 군데의 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혼자 일어나 출퇴근해야 하니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 가까운 곳들을 우선 고려했어요. 한정된 예산에서 괜찮은 곳을 찾으려니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던 중 언니(이 부점장의 이모)네 빌라의 옥탑방 세입자가 나갔는데 세민이가 그 방을 보더니 제집같이 편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모랑 같이 부동산 가서 세민이가 월세계약서에 직접 도장을 찍었어요."

독립 전까지도 고민이 많았던 이 부점장은 지금 생활에 크게 만족합니다. "처음에는 혼자 살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지금은 혼자라 좋아요. 아무 때나 편하게 누울 수 있고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돼서 편해요."

영남 씨도 걱정을 내려놨습니다. "가끔 집에 가보면 설거지도 깨끗이 해놓고, 집안도 잘 정돈돼 있어요. 알아서 잘하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되죠. 자기 집이 너무 편한지, 본가에 잘 오지 않아서 좀 섭섭해요.(웃음)"

새로운 시작

이세민 부점장은 독립을 시작하면서 푸르메재단에 정기기부를 신청했습니다. 도전을 거듭해 만든 기적 같은 성장의 결과를 장애어린이, 또 다른 장애 청년들과 나누고 싶었답니다. "저와 같은 다른 친구들이 일해서 돈을 벌고 독립도 했으면 좋겠어요."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목표는 '운전면허 따는 것’. 벌써 자신의 차에 앉아 멋지게 핸들을 돌리는 이세민 부점장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고민의 시간은 길었지만 결국 이뤄냈던 그의 지난 행보들이, 어떤 목표든 결국 이뤄낼 것이라는 믿음을 준 까닭입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길을 만들고, 함께 걸어갈 동료를 위해 기꺼이 나누는 이세민 행복한베이커리&카페 부점장의 따뜻한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그가 걷는 길이 푸르메재단의 발달장애 직원들에게, 사회의 또 다른 발달장애인에게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 글은 비영리공익재단이자 장애인 지원 전문단체인 '푸르메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가기 : https://purm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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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메재단

지난 2005년 설립된 푸르메재단은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돕는 비영리단체다. 2016년 서울 마포구에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 장애어린이의 치료와 재활을 돕고 있다. 현재는 어린이재활병원에 이은 2기 사업으로, 학업과 재활치료를 잘 마치고도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발달장애 청년들을 위한 일터 ‘푸르메소셜팜’을 완공해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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