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앞에 선 진보정당, 민주당의 하위 파트너가 될 것인가

[장석준 칼럼] 선택의 기로에 놓인 진보정당운동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에 맞춰 각 정치세력도 진용을 갖추느라 분주하다. 국민의힘은 윤석열-한동훈 균열을 봉합한 뒤에 한편으로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한껏 띄우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한 번 비례위성정당을 준비하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현행 준연동형 선거제도를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진보정당들에 민주당판 비례위성정당인 비례연합정당을 제안했다.

제안을 받은 진보정당들은 저마다 고민에 빠져 있다. 진보당은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녹색당과 정의당의 선거연합정당인 녹색정의당에서는 참여 여부를 놓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제3지대'를 외치던 국민의힘, 민주당, 정의당 이탈 세력들은 드디어 개혁신당이라는 한 대오로 뭉친다는 합의에 도달했다.

숨 가쁜 이합집산과 대열 정비 속에서 언론의 정치 평론은 대개 현재의 급박한 상황과 단기 전망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런 시국에는 과거와 미래를 향해 좀 더 길게 뻗은 시간 지평을 배경으로 현재를 점검하는 시각 또한 필요하다. 짧은 지면으로나마 이런 시각에서 현 상황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3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 추진 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 새진보연합 용혜인 대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민주연합추진단장, 조성우·박석운·진영종 연합정치시민회의 공동운영위원장. ⓒ연합뉴스

'국가관료기구당'과 '주류시민사회당'의 정치 독점

우선 이번 총선에서도 현실의 대부분을 규정하는 중심 요소는 양대 정당이다. 두 거대 정당은 한국 정치를 둘 사이의 비장한 역사적 승부라는 이야기 틀에 성공적으로 끼워 맞춤으로써 2/3 넘는 유권자를 이미 지지층으로 흡수해놓고 있다. 윤석열 정부-국민의힘은 '좌파 기득권 패거리'에 맞서 정권을 지키자고 호소하고, 민주당은 '검찰 독재 정권'인 윤석열 정부를 심판할(탄핵?) 의석을 달라고 부르짖는다. 각각의 틀에 따르면, 민주당은 '친중 친북 좌파'이고, 현 정부-여당은 군부독재를 잇는 '독재 정권'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막상 '독재 정권'이라 부르기에는 엉성하고 허약하기만 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보수우파가 준비했던 담론과 정책을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소진해버리고 촛불 항쟁까지 겪고 난 뒤에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은 사실상 해체 일보직전까지 갔다. 양당 구도에 친화적인 선거제도 덕분에 기사회생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당분간 대선에 승리할 만한 후보를 낼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런 형편이었기에 무소속 정치 신인 윤석열이 그토록 쉽게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이 상황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집권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당을 상대할 새로운 거대 정당의 기반이 될 만한 담론-정책을 제시했다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와 정반대되는 현실 속에 있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 80여 년 역사에서 가장 익숙했던 구호들(반공, 친미, 경제성장, 감세 등등) 말고 다른 어떤 것도 제시한 바 없으며, 지지율은 집권 초기부터 줄곧 30%를 맴돌고 있다.

이런 정부-여당의 상태를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이들이 대한민국 국가관료기구의 상식과 연속성, 영향력을 철저히 대변한다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한때 이명박과 박근혜가 이뤄냈던 시민사회 내 영향력 수준을 복원할 수 없게 된 국민의힘은 윤석열이 상징하는 국가 고위관료층을 투명하게 대변하는 역할을 맡음으로써 양당 구도의 한 축으로 수명을 연장할 길을 찾아냈다. 때로는 '검찰 전횡'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부자 감세'나 '대(對)미일 굴종'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 모두는 실은 한국 사회에서 '국가관료기구당'이 보여줄 수 있는 여러 얼굴들일 뿐이다.

그럼 이들 반대편에 있는 민주당은 정말 '공산전체주의'와 결탁한 '좌파 기득권 패거리'인가? 민주당은 확실히 국민의힘과 대척점에 있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좌와 우의 대결, 보수와 진보의 대결과는 거리가 있다. 그보다는 국가관료기구의 평균적 인식이나 행동을 대변하는 정당과 시민사회 주류를 대변하는 정당 사이의 간극과 경쟁이라 봐야 한다.

촛불항쟁 직후부터 민주당은 '촛불시민'의 정당이라 자임했다. '촛불시민'이 한국 사회에서 극우적인 부분을 제외한 가장 광범위한 시민연합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현 민주당이 2016~17년 당시의 '촛불시민'을 온전히 대변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때도 '촛불시민' 안에서는 한국 시민사회의 주류라 할 수 있는 흐름이 강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촛불시민' 정당이라는 규정이 허위나 기만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정확히 말하면, 민주당은 한국 시민사회의 주류를 대변하는 정당이다.

여기에서 한국 시민사회의 '주류'란 대체로 계급, 계층 측면에서 상위 중산층이거나, 상위 중산층이 되려는 경쟁에 몰입하는 그 바로 아래 계층이다. 학력으로는 대졸 이상이고, 거주지는 수도권이나 광역시의 아파트 단지이며, 대기업 혹은 공공부문의 정규직이거나 전문직이다. 이 범주에 속하는 이들은 숫자보다도 영향력 측면에서 한국 시민사회의 주류이자 다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제6공화국의 승자독식 선거제도에 적응하는 가운데 민주당은 이 집단의 평균을 강력히 대변하는 정당으로 진화해왔다. 촛불항쟁 직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대한민국 국가관료기구보다는 훨씬 더 역동적이며 다양한 시민사회 쪽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현 정부-여당에 비해 좀 더 유연하고 합리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민주당과 그 지지 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대결' 같은 근본적이고 극적인 대립 구도라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양대 정당 사이의 차이보다는 둘의 공통 지반이다.

'국가관료기구당'과 '주류시민사회당'이 함께 독점하는 정치에서 '정치'에 포괄되는 것은 무엇이고 배제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고위 관료층의 평균적 세계관에서도, 상위 중산층의 표준적 세계관에서도 관심 밖인 의제나 쟁점은 모조리 '정치'에서 밀려나고 만다. 불안정 노동, 지역 쇠퇴, 돌봄 위기, 기후 급변 등등. 이것들이야말로 지금 시급하게 변혁을 요구하는 과제들이지만, 양대 정당이 지배하는 한국 정치에서 이들은 결코 중심 의제가 되지 못한다. 윤석열 정부-한동훈 정당만도 아니고 (문재인-)이재명 정당만도 아니라, 양대 정당이 독점하는 정치 질서 전반이 절박한 극복 대상인 이유다.

한국에도 '진짜' 포퓰리즘이 등장하다 - 개혁신당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양당 독점 정치를 넘어설 조짐이 보이기는커녕 그 장벽이 어느 때보다 더 높고 단단하게 다가온다. 단지 두 당이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쏟아내는 진영 대결의 언어들이 윤석열, 이재명, 두 지도자의 한계를 배경으로 막강한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심란한 것은 양당 독점 정치에 도전하고 이를 허물겠다는 시도들이 하나같이 처한 궁지다.

우선 두 당에 대등하게 맞설 제3의 거대 정당을 만들겠다는 흐름, 이른바 '제3지대 신당'이 있다. 사실 제6공화국 역사 내내 주요 선거마다 이런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국민의힘의 전신이든, 민주당의 전신이든 양대 정당 중 한 쪽에서 분당파가 나와 그런 정당을 만들려 하거나, 아니면 진보정당이 제3당이 되겠다고 도전장을 내밀곤 했다. 다만, '개혁신당'으로 모인 지금의 제3당 흐름은 이런 선례들과 다른 구석이 있기는 하다. 양대 정당 중 어느 한 쪽이나 진보정당이 아니라, 이들 모두에서 이탈한 세력들이 결집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전례 없는 '합'이 나아가게 될 방향이다. '개혁신당'이라는 이름을 선점했던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는 여성, 노인,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여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형적 극우 포퓰리즘을 한국 정치에서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구사한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개혁신당에 합류한 전 정의당 정치인들은 민주당을 '포퓰리즘'이라 규정하고 '포퓰리즘에 맞서 자유주의를 수호'하는 것을 가장 긴급한 과제로 제시하며 진보정당에서 이탈했다. 이들이 한데 모였다니, 참으로 기상천외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실은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선례가 있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이다. 2009년 창당해 현재 이탈리아 하원 제4당인 오성운동은 기존 이탈리아 좌, 우파를 모두 비판하며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닌' 새 정치를 보여주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오성운동은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닐 뿐만 아니라, 좌파이기도 하고 우파이기도 했다. 좌파로부터는 기본소득 구상, 친환경 입장, 직접민주주의 등을 받아들였고, 동시에 '불법 이민자 추방'을 내세우며 극우파 지지층을 공략했다. 또한 유럽의회에서는 극우파 의원단에 가입하면서도 국내에서 연립정부 구성 파트너로 중도좌파인 민주당을 선택했다. 정말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닌' 순수 포퓰리즘의 전형이라 하겠다.

개혁신당은 이런 오성운동의 한국판이다. 양대 정당에 대한 대안이 되겠다고 하지만, 두 거대 정당 중 어느 한 쪽에서 이미 봤던 정치의 어지러운 조합이 될 운명이다. 아니, 한국판 오성운동이 되는 것은 그나마 나은 경우다. 원조 오성운동은 극우 쪽에서 포퓰리즘 경쟁에 뛰어든 다른 정당이 이미 둘(북부동맹의 후신인 '동맹'과, 네오파시스트의 후신인 '이탈리아형제당')이나 되는 데다 당 지지 기반도 남부 이탈리아에 쏠린 탓에 남부 서민층의 이해를 대변하며 극우파보다는 중도좌파에 더 가까워졌다.

개혁신당의 경우는 어떨까? 제3지대 신당 추진 세력들이 통합하기 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그 중 단연 앞섰던 것은 10% 가까운 지지율을 보인 이준석 세력이다. 통합 이후에도 개혁신당은 이준석 세력이 구축한 상대적으로 탄탄한 지지 기반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 '이준석'은 극우 포퓰리즘의 한국적 가능성과 가장 밀접히 관련된 이름이다. 따라서 만약 개혁신당이 총선 이후 분열하지 않고 계속 발전한다면,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닌' 포퓰리즘에 머물기보다는 아예 '극우' 포퓰리즘에 기울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지금 양당 독점 정치에 대한 도전이 봉착한 궁지의 첫 번째 사례다. 양대 정당이 독점하던 제6공화국 정치 질서가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이보다도 더 후퇴한 새로운 정치 질서로 대체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낡은 질서의 발전적 대체가 한없이 지연되고 있는 탓이다. 그런데 궁지는 이것만이 아니다.

진보정당운동에 기회가 아니라 덫이 된 선거제 개혁

민주당이 진보정당들에 던진 비례연합정당 제안은 어떤 변명을 덧붙이든 결국 지난 총선에 등장했던 비례위성정당의 반복이다. 이후 4년 동안 비례위성정당을 감히 '잘한 일'이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누구나 반성과 방지 입법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막상 총선이 다시 돌아오자, 준연동형 선거제 아래에서는 비례위성정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그대로, 아니 지난번보다 더 강력하게 재연된다.

지금 이 제안을 놓고 진보정당들이 흔들리고 있다. 4년 전 비례위성정당 제안을 단호히 뿌리쳤던 정의당과 비례위성정당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온 녹색당으로 이뤄진 녹색정의당 안에서조차 이번에는 함께 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만큼 유혹이 달콤한 탓이다. 양당 독점 정치에 도전하려고 출발했지만 바로 그 양대 정당의 지배력 탓에 총선 때마다 생존에 급급해온 진보정당들에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통한 안정적 의석 확보는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의 동아줄과도 같다.

여기에서 우리는 양당 독점 정치에 대한 도전이 직면한 또 다른 궁지와 마주한다. 본래 독일식 연동형 선거제도를 도입하자는 진보정당운동의 선거제 개혁론은 양당 독점 정치에 파열을 내려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막상 준연동형이라는 기이한 변종으로나마 실현된 선거법 개정은 비례위성정당이라는 의외의 꼼수와 결합하면서 양당 독점 정치를 이완시키기보다는 그 도전자들을 덫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새 선거제도 아래에서 진보정당들은 양대 정당 중 한 쪽과 항시적으로 연합하는 위성정당의 운명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받는 처지가 되었다.

혹자는 비례위성정당 방지 입법이 이뤄지든가 국회 총 의석을 늘려 연동형 선거제도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리게 되기 전까지는 이런 고육지책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까지 모든 개혁 성과를 왜곡시키는 힘으로 작동해왔고 앞으로도 의연히 그러할 양당 독점 정치의 중력을 무시한 주장이다. 진보정당들이 비상한 결단으로 대응하지 않는 한, 진보정당들을 민주당의 하위 파트너로 주저앉히려는 힘이 계속 관철될 것이다.

비례위성정당만 해도 그렇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반복된다면, 준연동형 선거제 + 비례위성정당이 한국만의 독특한 선거제도로 정착되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양대 정당이 각기 위성정당을 선거연합 형태로 거느리며 '변형된' 정치 독점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 되면 겉으로는 다당 구도를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양대 정당의 지배력을 별다른 동요 없이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것은 그나마 최악을 면한 경우다. 사실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한 진보정당들이 마침내 민주당의 내부 분파로 통합되는 것이다. 총선이 지나고 2년 뒤에는 지방선거가 닥치고, 다시 1년 뒤에는 대선이 다가온다. 특히 대선은 결선투표제조차 없기에 총선보다 훨씬 더 양당 독점 정치의 중력이 강하게 작동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위성정당의 위상을 받아들인 정당들은 선거연합보다 더 간편한 방식으로 양대 정당 중 한 쪽에 힘을 보태라는 압박에 버틸 명분이나 여력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경우에 진보정당들에는 지금 있는 제한된 지지 기반조차 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각급 선거에 부분적으로 정당명부비례대표제가 도입된 이후 진보정당들은 줄곧 정당투표 득표를 통해 지지층을 형성해왔다. 그 지지층 중 상당수가 리버럴정당(지역구)과 진보정당(정당투표)을 교차 지지하는 것이 진보정당 지지 기반의 한계로 지적되기는 했을망정 어쨌든 정당투표에 한해 진보정당들은 양대 정당과는 다른 선택지로 버티고 있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지역구에서 후보를 대거 단일화한 2012년 총선에서도 이것만은 변함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진보정당들 가운데 대다수가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하게 된다면, 정당투표 도입 이후 처음으로 정당투표용지에서 양대 정당에 맞서는 왼쪽 도전세력이 사라지게 된다. 진보정당 지지층은 지금도 늘어나기보다는 줄어드는 형편인데, 일단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남은 지지층마저 민주당 지지층으로 이동하거나 정치 무관심층이 되면서 돌이킬 수 없이 해체될 것이다. 이렇게 독자 지지 기반을 상실한 정당에 남는 선택지는 해산하든가 아니면 다른 정당에 흡수되는 것뿐이다.

말하자면 진보정당들에 비례위성정당 참여 여부는 단순히 총선 방침을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양당 독점 정치를 뒤엎으려는 도전자로서 '진보정당'이라는 역사적 프로젝트를 어떻게든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마침내 포기할 것인지 결단하는 문제다. 양당 독점 정치는 선거제 개혁이라는 진보정당들의 전략을 이렇게 진보정당들을 포획하는 덫으로 뒤바꾸는 신묘한 능력까지 발휘하면서 지금 한국 사회에 '(찾아봐야) 출구 없음'이라는 절망적인 선고를 내리고 있다.

진보정당, 제6공화국을 넘어설 새로운 방도를 제시해야 한다

물론 한 가지 변수가 남아 있다. 아주 미약하지만, 그럼에도 현 상황에서 유일한 변수이기는 하다. 그것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녹색정의당의 비례위성정당 참여 여부다. 녹색정의당이 결국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에 따라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이 과연 애초 구상대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 판가름 날 것이다. 이에 따른 미세한 차이가 이후 한국 정치에 어떠한 변화의 실마리가 될지(아니면 안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일조차 없는 미래에 비하면, 분명 양당 독점 정치에 더 많은 틈이 열려 있을 것이다.

한데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놓고 올바른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도 반드시 함께 고민해야 할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앞에서 확인했듯이, 양당 독점 정치에 결정적 균열을 내려던 진보정당운동의 기존 전략들이 일단 실패로 끝났다는 엄중한 사실이다. 이제 진보정당운동은 제6공화국 정치 질서에 도전할 다른 구체적 방도를 제시하고 추진해야만 한다.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놓고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이러한 새로운 과제에 대한 명철한 인식에 바탕을 둔 결정이어야만 한다.

선거제 개혁이 벽에 부딪힌 상황에서 무엇이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정의당 안에서 이미 제출된 방안은 제7공화국으로 나아가는 개헌 운동이다. 개정해야 할 헌법 내용이야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것은 말기 상태에 이른 한국의 대의민주주의에 충격을 줄 시민주권의 통로를 여는 개헌이다. 시민이 직접 법안과 국민투표를 발의하며 대통령을 소환할 권리를 보장하는 개헌이다.

이런 내용의 부분적 개헌조차 지금은 실현하기 벅찬 과제로만 느껴지지만, 일단 이런 개헌을 요구하는 운동에 착수함으로써 기성 정치를 새롭게 압박해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제6공화국을 넘어서려는 프로젝트로서 '진보정당'이 끝내 살아남는다면, 생존한 진보정당은 바로 이런 운동을 태동시키는 거점이어야만 한다.

▲정의당과 녹색당의 선거연합정당 녹색정의당이 지난 3일 공식 출범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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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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