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김종필·안철수는 성공, 그러나 이낙연·이준석·금태섭의 운명은?

'제3지대 신당', 올해 총선에선 성공할까?

설을 하루 앞둔 9일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 김종민·이낙연 공동대표의 새로운미래, 금태섭·조성주 공동대표의 새로운선택, 이원욱·조응천 의원 중심의 원칙과상식이 통합을 선언하고 연휴 뒤 공동창당대회를 열기로 했다.

4개 세력이 발표한 '제3지대 통합신당 창당 합의문'을 보면, 통합신당의 당명은 '개혁신당'으로, 공동대표는 이낙연 대표(총괄선거대책위원장 겸임)와 이준석 대표로 결정됐다. 최고위원은 4개 세력이 각 1명씩 추천하기로 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4.10 총선을 두 달여 남겨놓은 시점에서 이른바 '제3지대'는 이합집산 중이었다. 지난 1월, '이낙연 신당(새로운미래)', '이준석 신당(개혁신당)', '금태섭 신당(새로운선택)', '김종민·이원욱·조응천 신당(미래대연합)', '양향자 신당(한국의희망)'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이들 제3지대 정당들의 성적표는 절망적이지는 않지만 신통하지도 않았다. 2월 1주 갤럽 정례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35%, 국민의힘 34%, 개혁신당과 이낙연 신당 각 3%, 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 각 1% 순이었다.

원내진입을 막는 '3% 봉쇄조항'은 이준석 신당이나 이낙연 신당 모두 자력 돌파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이 고작 원내 의석 1석을 얻자고 신당 창당에 도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20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3석을 얻은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6.79%를 득표했다. 이낙연 신당과 이준석 신당의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 조금 더 높은 숫자다. 이들이 연휴 뒤 공동창당대회를 열기로 한 이유다.

제3지대 명멸 약사 : '3당'은 항상 있었다. 그러나…

소위 제3지대라는 이름은 단지 '의석수 기준 제3당'이라는 기계적 위치와는 성격이 다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 총선거가 여야 2당만으로 치러진 적은 없고, 이에 따라 매번 선거마다 '의석수 3등 정당'은 당연히 배출됐다.

예컨대 1988년 13대 총선 결과는 민주정의당 125석, 평화민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 순으로 4당 체제였지만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을 '제3지대'나 '제3세력'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1여3야', '여소야대' 구도라고 불렸고, 이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하 인명에 직함 생략)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탄생하면서 사실상 1강1약에 가까운 여야 양강 체제로 재편된다.

1992년에는 제3지대라고 부를 만한 정당이 등장했다. '현대 신화'의 주인공 정주영이 이끈 통일국민당이 31석을 얻어 민주자유당(149석), 민주당(97석)에 이어 3당 자리를 차지한 것. 이는 정주영의 대선주자로서의 위상이 바탕이 됐다. 그러나 정주영은 총선과 같은해 연말 치러진 대선에서 16% 득표 후 이듬해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등장, 이후 2번의 총선에서 3당으로서의 존재감을 이어갔다. 15대 총선 결과는 신한국당 139석, 새정치국민회의 79석, 자민련 50석, 통합민주당 15석이었다.

다만 자민련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133석, 새천년민주당 115석에 이어 17석에 그쳤다. 탄핵 역풍 속에 치러진 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 152석, 한나라당 121석, 민주노동당 10석, 새천년민주당 9석, 자민련 4석으로 더 쪼그라들었다.

2004년 총선에서 눈에 띄는 점은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의 약진이다. 민노당은 김종필의 자민련, 이회창의 선진당 등과는 달리 기존 정치세력 내의 분파가 아니라 노동·농민·통일·시민운동가 출신 인사들을 내세웠고, 범(汎)진보진영이라는 카테고리로 민주당 계열 정당과 한데 묶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2000년 원내 진입 이후 20년간은 민주당과도 뚜렷이 구분되는 색깔을 유지해왔다.

다만 전통적으로 '제3지대'의 이미지는 △이념적으로 국민의힘 계열 정당과 민주당 계열 정당의 사이에 위치한 △양당의 대립을 중재하고 타협을 촉구하는 중도적 그룹으로 고착화돼 있다. 민주당의 왼쪽에 있는 진보정당을 '제3지대'로 명명하거나 분류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은 그래서다.

2000년과 2004년에 이어, 2008년과 2012년 총선 역시 명백한 양강 구도였다. 2008년 18대 총선은 한나라당 153석, 통합민주당 81석, 자유선진당 18석, 친박연대 14석,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 3석이었고, 2012년 19대 총선은 새누리당 152석, 민주통합당 127석, 통합진보당 13석, 자유선진당 5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2016년 20대 총선은 1996년 이후 20년 만에 제3교섭단체(국회법상 20석 이상 정당을 의미)가 출현한 이례적 구도였다. 20대 총선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모두의, 심지어 국민의당 자신의 예상까지도 뛰어넘는 결과였다.

그러나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다시 양강 구도로 회귀한다. 한국 헌정사상 최초로 준연동형 선거제를 도입한 기반 위에서, 세계 최초로 위성정당 체제로 치러진 21대 총선거 결과는 양당의 위성정당을 포함하면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180석,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113석, 정의당 6석, 국민의당 3석, 열린민주당 3석 순이었다.

성공사례 공통점은?…핵심은 역시 '대선주자'

결국 국민의힘·민주당 양강 계열 정당과 뚜렷이 구분되는 정체성을 가지면서, 진보정당 운동의 흐름과도 무관한 기성 정치권 내의 '제3분파'가 총선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는 1992년 정주영과 1996년 김종필, 그리고 2016년 안철수로 요약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3당을 이끈 지도자가 명백히 전국민적 인지도를 갖고 있는 대선주자라는 것이었다. 김종필은 박정희 정권에서 중앙정보부장, 공화당 의장,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거의 20년간 지속된 군사정부의 2인자였던 셈이다. 정주영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인사였고, 안철수도 2012년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이었다.

다만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들에게는 '2번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종필의 자민련은 1996년 50석을 기록한 이후 17석, 4석으로 점점 세력이 줄어들었다. 정주영은 총선과 대선이 겹친 1992년 한 해를 화려하게 보냈지만 결국 그의 일생에서 보면 정치 도전은 1회성의 외유에 가까웠다.

안철수는? 2016년 38석을 얻어 새로운 신화를 쓰는가 했지만, 이듬해 대선과 유승민계 바른정당과의 이합집산을 거치며 정치적 위상이 급전직하, 2020년에는 3석에 그쳤다. 안철수가 올해 총선을 앞두고 제3지대 창당을 추진하는 정치인들에 대해 남긴 말은 그래서 눈길을 끈다. 그는 "다 제가 했던 것들 아니냐"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에 3당들이 지금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요. 역대 어느 때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만 지금 상황으로는 유의미하게 성공하기는 좀 어렵다, 왜 그러냐면 사실은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한쪽은 출마 자원, 그러니까 지역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고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영입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그 다음에 또 하나는 다른 당과의 차별화, 이념이라든지 정책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근데 그 둘 다 갖춰진 그런 제3당 세력이 지금은 잘 보이지를 않습니다." (안철수, 2024.1.17 불교방송 라디오)

안철수가 말한 '사람'과 '노선' 역시 결국 유력한 대선주자의 존재로 집약된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가 있으면 사람이 모이고, 그가 제시하는 방향은 그대로 신당의 새로운 정치적 지향이 되기 때문이다. 제3당이 2번째 기회를 갖지 못한 것도 속칭 대선주자의 '유통기한'과 관련이 없지 않다.

안철수가 2016년 4.13 총선에서 38석이라는 의외의 대약진을 거두기 한 달 전 시행된 갤럽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2016년 3월 2주차) 결과는 문재인 16%, 김무성 11%, 안철수 10%였다. 반면 국민의당이 3석을 얻은 2020년 총선 직전 안철수의 정치지도자 선호도는 이낙연 26%, 이재명 11%, 황교안 8%에 이어 5%였다.

대선주자 선호도는 현직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 결과나 차기 대선과의 시간적 거리, 유권자의 정치 관심도 등의 변수에 따라 숫자의 오르내림이 심하다. 눈여겨볼 점은 그래서 지지율 자체가 아니라 순위와 구도다. 2016년의 안철수는 1위 주자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3위였지만, 2020년의 안철수는 군소 후보 중 하나에 불과했다.

올해 총선을 앞둔 제3지대 리더들의 위상은 어떨까? 2024년 2월 1주 갤럽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은지 묻는 주관식 조사 결과는 이재명 26%, 한동훈 23%, 이낙연 4%, 이준석 4%였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16일 '새로운미래' 신당 출범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이 전 총리, 금태섭 새로운선택 대표. ⓒ연합뉴스

기사에 인용된 한국갤럽 2월 1주차 조사는 언론사 의뢰 없이 조사기관이 자체적으로 정례 시행했으며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사흘간 이동통신 3사 제공 무선전화 가상번호에서 무작위 추출한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원 면접(CATI) 방식으로 시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2.7%(총 통화 7871명 중 1,000명 응답 완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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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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