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나라 한국, 경기침체냐? 계획된 탈성장이냐의 갈림길

[초록發光] 경제 성장할수록 기후위기와 불평등 심각?

1990년대까지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은 2021년,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해 선진국 대열에 공식적으로 합류했다. 당시 외교부는 개도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된 사례는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이래 57년 역사상 한국이 처음이라며 "우리나라는 '무역은 경제발전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명시한 UNCTAD 설립문서의 비전을 몸소 보여주는 성공적인 사례"라고 자찬했다.

한국은 경제지표만 보면 기적의 나라라 할 만하다.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 연평균 10%에 육박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에도 경제성장률(연평균 4%대)은 줄었지만, 경제규모(GDP)는 20여 년 동안 2.6배 이상 증가했다. 다만 코로나19 시기를 겪었던 최근 5년간 GDP 연평균 증가율은 2.3%로 감소했다.

한국 경제 양적 성장…국민 삶의 질은?

경제가 양적으로 성장한 만큼 국민 삶의 질은 나아졌을까. 국가 간 삶의 질을 측정해 비교할 수 있는 국제 지표로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 개발 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의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4개(기대수명과 기대교육년수, 평균교육년수, 1인당 국민총소득) 지표로 작성된 인간 개발 지수 측면에서는 세계 188개 국가 중 18위, OECD 38개 국가 중 16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의 지수는 OECD 41개 국가 중 32위로 하위권인데, 11개 영역 중 시민참여(2위), 주거(7위), 교육(11위)은 상위권이나, 건강(37위), 공동체(38위), 환경(38위) 등의 영역은 지극히 낮은 편이다. 세계행복보고서에서의 삶의 만족도 순위는 147개 국가 중 59위, OECD 38개 국가 중에서는 36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한국도 통계청 통계개발원에서 매년 '국민 삶의 질 2022'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국민 삶의 질 지표는 국내적 상황과 국제적인 웰빙 측정 동향을 고려해 구축되었다. 보고서는 한국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 달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 수준은 그리 높지 않으며, 다양한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출산율과 급속한 노령화, 높은 자살률 등 사회전반의 활력이 약화되고 있고, 이념적 갈등, 상대적 빈곤, 노사갈등 등 다양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기존 경제 성장 중심의 정책에서 삶의 질 제고로의 정책적 관심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제언했다.

출산율 꼴찌, 고령화 속도·자살률 1위

한국의 출산율은 2004년부터 16년째 OECD 국가 중 꼴찌를 유지하고 있고,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1위 수준이며 독거노인 비율은 2000년 16%에서 2022년에는 20.8%로 늘었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지만 자살률은 10만 명당 25.4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연평균 노동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국가 중 5번째로 길고, 저임금노동자(중위소득의 3분의 2 미달)의 비율은 매우 큰 편에 속한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저임금노동자 비율은 16.0%로, 미국(23.8%), 캐나다(18.7%), 영국(18.0%)보다 낮은 편이나 일본(10.9%)보다 높다.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의 저임금노동자 비율은 10% 미만으로 낮다.

국민의 벌어들인 총소득을 인구로 나누어 산출하는 1인당 실질국민총소득은 2000년 이후 지속 증가했지만, 최근 2018년 이후 증가율이 낮아져서 2020년에는 전년 대비 0.1% 증가에 그쳤다. 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2008년 138.5%에서 2021년 206.5%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의 50% 이하에 해당하는 가구의 비율)은 15.3%로 OECD 국가 중 높은 수준이다.

미세먼지 농도 1위, 탄소배출 10위, 재생E 꼴찌

환경 측면에서는 2020년부터 미세먼지 농도가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25㎍/㎥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1차에너지 공급량은 세계 9위인데 석유(4위)와 천연가스(6위), 석탄(4위)을 수입하면서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5%에 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21년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10위, 누적배출량은 16위를 기록 중이다.

반면에 2021년 전체 에너지 대비 재생에너지 공급량 비중은 2.1%,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6.3%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주요 선진국(수력 비중 높은 국가 제외)의 재생에너지 공급량과 발전량 비중은 미국(8.0%, 20.3%), 일본(7.1%, 21.1%), 영국(12.6%, 41.1%), 독일(15.6%, 40.5%), 이탈리아(18.5%, 41.1%), 스페인(16.7%, 46.6%)으로 한국과의 격차가 상당하다.

2023년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은 8월 2일이었다. 이날은 해당 연도의 생태자원 및 서비스에 대한 인류의 수요가 그 해 지구가 재생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하는 날을 뜻한다. 1년 동안 사용할 자원을 8월 2일에 모두 써버렸다는 의미다. 한국의 생태 용량 초과의 날은 4월 2일로 10번째로 빨랐다. 한국은 1년 동안 사용할 자원을 91일 만에 다 써버린 셈이다. 모든 인류가 한국처럼 자원을 사용하면 지구가 3.85개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1.5도 제한 위한 탄소예산 6년치 남아…기후행동 '태부족'

인류가 지구 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 상승으로 제한하기 위한 온실가스 배출 허용 총량(탄소예산)이 올해를 포함해 6년 치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1.5도 목표를 지키려면 지금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을 급격히 줄여 2035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의 2차 저지선인 '2도 목표'를 달성하려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계의 기후행동은 태부족인 상태다. 최근 발표된 '기후 행동 현황 2023(State of Climate Action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도는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데 필요한 42개 지표 중 41개 지표는 2030년까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궤도에 올라서지 못했고, 기후 행동 속도가 태부족인 지표는 24개, 역주행한 지표는 6개에 달했다.

보고서를 보면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비중이 2030년까지 57~78%까지 높아져야 하고 탈석탄(7배)과 전력 생산 탄소집약도(9배), 건물 운영 탄소 집약도(4배), 대중교통 인프라(6배) 등의 속도가 대폭 빨라져야 한다. 반면에 개인승용차로 이동하는 비율과 세계 철강 생산의 집약도,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 역주행하는 지표들을 빠르게 줄여야 한다.

경제위기 앞에 기후위기와 삶의 질 문제는 뒷전?

전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갔고 한국 경제도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건전재정이 문제이고 경제가 아닌 재정위기라고 평가하면서 경제성장률을 "최소 3%로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경제위기 앞에 기후 위기와 불평등, 삶의 질 문제는 다시 뒷전이 되는 모양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기후 위기와 불평등은 더욱 심해지고 삶의 질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2018년 정책입안자와 연구자, 과학자 238명은 유럽의회에 GDP 성장을 포기하는 대신 인간의 행복과 생태적 안정성에 집중하라고 요구했다. 2019년에는 153개 국가의 1만 1000명 이상의 과학자가 세계 각국 정부에 "GDP 성장과 과잉에서 벗어나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하고 좋은 삶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인류의 공존과 번영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럽의회는 올해 5월 '성장을 넘어(Beyond Growth) 2023 콘퍼런스'를 열었다. 콘퍼런스에서는 인류가 계속 번영하려면 성장 이외의 방식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로 제시됐고. 인류 존속을 위한 탈성장(degrowth)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거론됐다.

한국에서도 성장을 넘어, 탈성장을 위한 논의 필요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인 한국에서 성장 너머(탈성장)의 다양한 대안을 찾는 논의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 중인 탈성장 논의를 다룬 논문과 서적의 번역서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고 최근엔 한 신문사가 '성장을 넘어-모두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국제 포럼을 개최해 탈성장을 다루기도 했다.

탈성장은 에너지와 자원의 과도한 사용을 줄이고 경제 규모를 축소하면서도 더 잘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고, 이 과정은 지속 가능하고 평등해야 한다. 정부 예산을 논의하듯이 늘려야 하는 부분(재생에너지, 대중교통, 공공 제로에너지 주택 등)과 줄여야 하는 것들(화석연료, 내연기관차 SUV, 호화주택 등)에 대한 논의를 통해 무엇을 생산하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를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자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번역된 <미래는 탈성장-자본주의 너머의 세계로 가는 안내서>는 탈성장의 비전을 넘어 탈성장으로 가는 경로, 탈성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탐구하고 있다. 탈성장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는 탈성장이 경기 침체나 긴축을 강요하거나 필연적으로 경제 붕괴와 사회적 재난을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경기 침체는 의도하지 않은 것이고 탈성장은 계획적이고 의도적이다. 경기 침체는 불평등을 악화시키지만, 탈성장은 불평등을 줄이고자 한다.

탈성장이 무엇인지, 바람직한지, 현실적인지, 달성 가능한지를 논의할 수 있게 해주는 친절한 안내서이며 초대장인 이 책의 옮긴이들이 오는 12월 15일(금)에 북토크를 연다. 탈성장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 수 있을지 논의를 시작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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