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침략 비판이 반유대주의? 침략 정당화하는 '물타기'

[인권의 바람] 이·팔 사태, 분쟁이 아니라 집단학살이다

"가자지구는 어린이 수천 명의 무덤, 남은 모든 이의 산지옥이다." – 유니세프

유니세프가 쓴 이 표현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이 불러온 참혹함을 뚜렷이 보여준다. 지난 10월 7일부터 11월 9일까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죽은 팔레스타인 사망자만 1만 명이 넘는다. 그중 75%가 아동과 여성, 노인이다. 1967년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이 시작된 후 살해된 아동의 숫자보다 더 많은 숫자라고 한다. 지금 이스라엘은 병원과 학교에 대한 폭격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지상전까지 하고 있다. 한시도 공습을 멈추지 않고 있다.

유엔 총회는 10월 27일 "적대 행위 중단으로 이어지는 즉각적이고 항구적이며 지속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휴전을 담은 '민간인 보호와 법적·인도적 의무 준수'(A/ES-10/L.25) 결의는 찬성 120, 반대 14, 기권 45로 압도적인 찬성으로 채택됐다. 결의안에는 △모든 당사자의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 준수 △가자 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 보장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북부 대피 명령 철회 △불법적으로 억류된 모든 민간인에 대한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석방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대한 평화적 수단을 통한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해결 등이 담겼다.

이는 이스라엘이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을 위반하며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인도적 요구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휴전 결의마저 기권했고, 미국은 반대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수십 년간 점령하도록 가장 많은 무기를 수출하고 군사원조를 한 국가답게, 미국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지지한 것이다.

▲ⓒ(가자시티 로이터=연합뉴스) 가자지구 최대 의료기관인 알시파 병원이 12일(현지시간) 정전된 뒤 인큐베이터에서 꺼내진 신생아들이 침대에 누워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전날부터 알시파 병원의 연료가 바닥나면서 미숙아 2명을 포함해 5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2023.11.13

분쟁이 아니라 집단학살이다

한국 정부는 '하마스의 테러 행위에 대한 규탄과 인질 석방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기에 기권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결의안에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모든 폭력 행위와 불법적으로 억류된 모든 민간인의 석방도 포함됐다. 하마스의 인질 석방도 포함된다. 한국 정부는 사람이 죽어가지만 여러 외교적 경제적 이익을 이유로 인도주의적 입장조차 포기한 것이다.

묻고 싶다. 정말 이스라엘의 말처럼, 이번 이스라엘 공습이 하마스의 공격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근본적인 원인은 75년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불법으로 군사 점령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지원으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군사 점령을 확대했다. 팔레스타인들이 살던 땅에서 팔레스타인들을 쫓아내고 유대인들을 이주시켜 이스라엘 국가를 확대해갔다.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국가를 설립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팔레스타인을 식민 통치하던 영국의 약속과 지원으로 가능했다.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에서 이긴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던 시기였다. 영국은 1917년 11월, 정치적 이유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 건립을 공식적으로 벨푸어 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이 대거 이주하기 시작했다. 1897년 선민의식과 배타적 민족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시온주의가 고안한 '유대인 국가 설립'을 영국이 사실상 지지한 것이다. 그렇게 시온주의와 식민제국주의와 만났다.

그 결과 이들은 1948년 5월 유대인들을 대거 이주시켜 이스라엘 국가를 설립했다. 이스라엘은 나치의 유대인학살을 팔레스타인 침략을 숨기는 데 활용했다. 영국 통치에서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또 다른 식민지배, 억압에 놓이게 되자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저항했다. 이것이 1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전쟁이다.

전쟁 후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 130만 명 가운데 87만 명(UN 통계)이 난민이 됐다. 팔레스타인들은 오랜 기간 자신이 살던 땅에서 쫓겨나 인근 국가에서 난민으로 살거나 팔레스타인 땅에서 죽었다. 팔레스타인들의 저항은 지속됐지만, 미국 등의 지원으로 이스라엘은 더욱 군사적 점령지역을 확대할 수 있었다.

1967년 이스라엘의 기습으로 시작된 3차 중동전쟁(속칭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영토를 네 배나 불렸다.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안을 통해 이스라엘의 철군을 촉구했지만, 이스라엘은 거부했다. 그러나 다른 제재가 없었으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지배를 사실상 추인받은 것과 같았다. 유엔의 군사 점령이라는 규정도 거부하며 이스라엘 정착촌을 더 확대했다, 이스라엘은 2005년까지 가자 지구에서 군대와 정착촌은 철수했으나, 여전히 이 지역의 영공, 해안선, 지상 경계선 등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 국가들의 영토와 국가의 변동은 잦았다. 근대국가 수립으로 영토와 국가가 확정된 후에 다른 나라 땅에 새로운 국가를 수립하는 것은 침략과 전쟁이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유럽인들이 건너가 선주민들을 학살하고 국가를 세웠던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2천 년 전 유대인 고대 왕국의 역사를 근거로 드는 것은 초라하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침략전쟁이며 정착식민주의일 뿐이다.

그러하기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 점령이며, 침략전쟁이라 불려야 마땅하다. 특히 이번에는 팔레스타인을 다 죽이겠다는듯이 공습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인종청소, 제노사이드에 가깝다.

▲ⓒ(칸유니스 AFP=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집을 살피고 있는 가운데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다. 유엔은 전날 유엔 산하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의 운용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2023.11.15

이스라엘 국가의 침략에 대한 비판과 유대인 혐오를 동일시하는 '물타기'

전 세계 시민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중단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시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영국과 프랑스에서 이스라엘 지지자들이 휴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반유대주의'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는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을 멈추라는 시위가 바로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국가이며, 한 국가 내에는 여러 인종과 부족들이 살아간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침략행위를 비판하는 것을 유대인 혐오로 등치시켜서는 안 된다. 그러하기에 수천 명의 유대계 미국인 시민들도 "우리 이름으로 학살하지 말라(Not in our name)"며, 휴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친 이스라엘 세력들은 현재 ‘인종주의’ 프레임을 왜곡해 국가범죄, 전쟁범죄를 숨기려 한다.

물론 침략전쟁이 길어지면서 일부에서 반유대주의, 유대인 혐오범죄가 벌어지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일본 정부가 식민지 범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나 일본군 강제징용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자, 반일민족감정을 보이는 사람들이 범람한 적이 있다. 그때도 인권단체들은 일본 정부가 아닌 일본인에 대한 혐오나 비난은 차별이라는 입장을 취한 바 있다.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국가의 침략행위에 대한 비판은 유대인 혐오가 아니다. 그렇게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이스라엘의 노림수다. 자국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물타기’다.

35년 동안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 민중이야말로 이러한 물타기의 위험성을 잘 알 것이다. 안중근이나 홍범도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제국주의 권력에 저항한 사람들이기에 그들을 독립운동가로 지칭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스라엘도 잘못했고 팔레스타인도 잘못했다는 양비론이야말로 역사를 왜곡하고 진실을 가리는 것이다.

이러한 물타기에 속지 않은 한국의 9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을 꾸렸다. 평화를 원하는 시민들은 이스라엘의 75년 군사 점령을 끝내라고 외칠 것이다. 휴전과 집단학살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져야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을 도왔던 서구 열강들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스라엘이 유엔인권이사회와 유엔의 권고를 듣게 만들 수 있다. 팔레스타인들이 지금도 죽어 가고 있는데, 더 이상 그냥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인간 존엄이 폭격과 침략으로 사라지는 현실에 귀를 기울이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집과 빵과 병원이 폭격으로 불타버린 팔레스타인들에게 최소한의 일상을 돌려줄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17일 저녁 서울 중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국내 인권단체들의 팔레스타인 추모 전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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