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업적쌓으려고" 故채 상병 생존동료, '임 사단장' 직접 고소했다

"물에 들어간 건 '사단장' 지시 때문 … 사건 왜곡 두고 볼 수 없어"

"저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정당한 지시를 받고 작전을 하다가 사망하거나 다친 것이 아닙니다. 사단장과 같은 사람들이 자기 업적을 쌓기 위해 불필요하고 무리한 지시를 했기 때문입니다."

고(故) 채 상병 사망사건 당시 채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다가 가까스로 구조된 동료 해병 A씨가 임성근 해병 제1사단장을 고소한다.

A씨는 25일 군인권센터를 통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임 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7월 경북 예천 내성천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당시 채 상병과 함께 수중 수색작업에 투입된 해병대원으로, 지난 24일 전역해 현재 민간인 신분이다.

A씨는 이날 오후 2시께 공수처에 임 사단장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번 고소는 수중수색 당시 A씨가 겪게 된 '치상사건'에 대한 당사자 고소로, 지난 9월엔 A씨의 어머니 B씨가 업무상과실치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임 사단장을 공수처에 고발한 바 있다. (관련기사 ☞ "엄마, 내가 못 잡았어" 故채 상병 생존동료의 이야기)

A씨는 사건 당시 채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다가 구조된 후 사고에 대한 기억과 채 상병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등으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려왔으며, 이후 '사고 책임을 분명히 규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 사단장에 대한 당사자 고소를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권센터는 A씨가 사고 이후 진행된 군의 후속 대응을 지켜보며 "하급 간부들만 문책의 대상이 되고, 정작 잘못된 지시를 내린 임성근 사단장 등 지휘부가 책임을 면피하고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것을 보며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임 사단장은 지난 8월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을 둘러싼 '해병대 수사외압' 사태가 진행된 끝에 현재 채 사병 사건 관련 혐의자에서 제외된 상태다.

▲지난 9월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해병대 실종자 수색 사고 생존자 가족의 임성근 해병1사단장 고발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어머니가 인사하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A씨는 "여전히 OO이를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며 채 상병 사망 이후 이어진 군의 대응방침에 문제를 제기했다.

사고 당시 '동료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온 A씨는 "OO이 부모님께 당시의 상황과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유족들과의 면담 자리에는 간부들이 동석해 쉽게 말을 꺼낼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지휘부는 사건 처리에 아무 관심이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채 상병 어머니가)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사고 다음 날 한번 뵙기는 했었습니다. 간부님들이 OO이 부모님을 만나야 한다며 집합을 시켰습니다. 생존 병사들과 OO이 부모님이 따로 만나는 면담 자리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지휘관, 간부님들이 다 같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사고를 겪은 해병들을 위로한다고 찾아왔던 사령관님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다시 정상적으로 임무 수행을 해야 한다는 말을 했고, 사단장님은 사고 이후로 단 한 번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다들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 OO이와 우리가 겪었던 일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A씨는 사고 당시 해병 장병들에게 내려진 '물속으로 들어가라'는 지시가 임성근 사단장 등 해병대 지휘부로부터 나왔으며, 그 같은 무리한 지시가 임 사단장의 '해병대 홍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색 당시) 사단장님이 화가 많이 났다고 그랬고, 간부님들은 다들 압박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라며 "물속에서 실종자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지만,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사고 직후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채 상병 소속 중대 카카오톡 대화방 지시사항에 따르면, '사단장이 물에 들어가지 않는 수색방식을 질책했다', '사단장이 물에 들어가 바둑판식으로 수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등의 전달사항이 전파된 후 해당 중대는 수중수색 작업에 투입됐다. (관련기사 ☞ 故 채수근 상병, 사단장에게 '물 들어가라' 지시받았다)

당시 대화방에 내려진 사단장 지시사항을 살펴보면 사단장은 "슈트 안에도 빨간색 츄리닝 입고 해병대가 눈에 확 눈에 뜰 수 있도록 가급적 적색 티 입고 작업"하라거나 "웃는 얼굴 표정 안 나오게 할 것"이라며 군용 '얼룩무늬 스카프(버프)'를 모든 장병에게 착용하도록 지시하는 등 '해병 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관련기사 ☞ "빨간 옷 입고 눈에 확 띄게" 장병 죽은 대민지원, 해병대는 '홍보' 강조)

A씨는 “물에 들어가라는 지시도, 안전엔 관심 없이 복장과 군인 자세만 강조하는 지시들도 사실 별로 놀랍지 않았다. 평소 부대에서도 사단장님이 보여주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라며 “수색이 보여주기식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러다 사고 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미 많았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났다”고 설명했다.

또한 A씨는 군의 책임자 처벌 등 후속대응에 대해서도 "OO이 영결식 이후 대대장님이 보직 해임됐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은 책임질 것이라고 약속하며 저희들을 챙겨주던 중대장님도 얼마 전 다른 분으로 교체됐다"라며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꼬리 자르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방부는 박정훈 전 수사단장이 수사결과에 임 사단장 등 8인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것에 대해서 '초급간부의 혐의 적시가 문제'라는 입장을 보이며 경찰에 이첩된 수사자료를 회수하고 박 단장 보직해임 후 국방부 조사단을 통해서 수사결과를 변경했지만, 조사단이 내놓은 수사결과에선 오히려 임 사단장 등 ‘윗선’의 혐의가 삭제된 채 하급간부 2인의 혐의만이 적시됐다.

A씨는 "언론에서 연일 박정훈 수사단장님이 겪고 있는 일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걸 봤다. 사단장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OO이와 저희가 겪은 일을 책임져야 할 윗사람들은 책임지지 않고, 현장에서 해병들이 물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던 사람들만 처벌받게 되는 과정도 보고 있다"라며 "사고의 당사자로서 사고의 전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라고 이날 임 사단장 고소의 취지를 밝혔다.

그는 "보여주기식 작전을 하다가 부하를 잃었는데 잘못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윗사람들을 보며 끈끈한 전우애란 다 말 뿐인 거란 걸 알았다"라며 해병대에 대해 본인이 느꼈던 자부심과 소속감이 무너졌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A씨는 입소 전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해병대에 자진입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A씨는 "저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정당한 지시를 받고 작전을 하다가 사망하거나 다친 것이 아니다. 사단장과 같은 사람들이 자기 업적을 쌓기 위해 불필요하고 무리한 지시를 했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오늘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공수처에 고소한다"고 이날의 입장을 표명했다.

군인권센터 측은 "당사자가 사고 전후의 상황을 직접 수사기관에 밝힐 수 있게 된 만큼 공수처의 성역없는 수사가 신속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래는 이날 군인권센터가 발표한 A씨의 입장문 전문이다.

▲경북 예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숨진 고 채수근 상병의 분향소가 마련된 포항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관에서 해병대원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 고 채OO 상병 사망 사건 생존 해병 입장문

필승!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제7포병대대에서 복무하였고, 2023년 10월 24일 자로 만기 전역을 명받은 해병입니다. 저는 오늘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살과실치상죄로 고소합니다.

저는 2023년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진행된 호우피해복구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미 언론에 많이 알려진 것처럼 7월 19일 사랑하는 후임 고 채OO 상병, 동기 B병장과 함께 실종자 수색을 진행하던 중 급류에 휩쓸리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밤마다 쉽게 잠들기 어려운 날들을 보냈습니다.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떠내려가며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순간, 그 와중에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 가던 OO이의 모습이 꿈에 자꾸 나타났습니다.

여전히 OO이를 지키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미안했던 마음에 물에서 건져지자마자 모래사장을 따라 무작정 OO이가 떠내려간 방향으로 뛰어갔던 것 같습니다. OO이 부모님께 당시의 상황과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사고 다음 날 한번 뵙기는 했었습니다. 간부님들이 OO이 부모님을 만나야 한다며 집합을 시켰습니다. 생존 병사들과 OO이 부모님이 따로 만나는 면담 자리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지휘관, 간부님들이 다 같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누구 하나 믿고 따르기 어려웠습니다. 영결식 날엔 홍보 사진을 찍으러 온 건지 친목 모임에 온 건지 조문을 온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던 정치인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정치인의 수행원은 비 맞고 도열해 있는 해병에게 자기가 들고 있던 의원 우산을 좀 들어달라고 하더니 유가족과 인사하는 의원 사진을 찍는다고 유가족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들 곁을 따라다니기에 바빴던 사단장 같은 장군들도 보았습니다. 특종 취재라도 나온 마냥 슬퍼하는 해병들을 밀치고 다니며 짜증을 내던 기자들도 있었습니다. 사고를 겪은 해병들을 위로한다고 찾아왔던 사령관님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다시 정상적으로 임무 수행을 해야 한다는 말을 했고, 사단장님은 사고 이후로 단 한 번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다들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 OO이와 우리가 겪었던 일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실종자 수색 기간 내내 부대 분위기가 어땠는지 저희는 압니다. 사단장님이 화가 많이 났다고 그랬고, 간부님들은 다들 압박감을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물에 들어가라는 지시도, 안전엔 관심 없이 복장과 군인 자세만 강조하는 지시들도 사실 별로 놀랍지 않았습니다. 평소 부대에서도 사단장님이 보여주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물속에서 실종자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지만,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들어갔습니다. 수색이 보여주기식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러다 사고 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미 많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났습니다.

OO이 영결식 이후 대대장님이 보직 해임되었습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은 책임질 것이라고 약속하며 저희들을 챙겨주던 중대장님도 얼마 전 다른 분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이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꼬리 자르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병사인 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힘들었지만 군병원이나 부대에서 하는 상담은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상담하거나 진료 본 내용이 사단장에게 보고될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든 책임을 피하려는 사단장님의 입김이 닿는 곳에다 제가 겪은 일을 믿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1년 6개월 전, 부모님의 만류에도 제 의지로 해병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복무하는 동안에도 해병대라는 자부심이 컸습니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해병대 입대를 권유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제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해병대는 허상이었을까요? 3개월 간 너무 많이 실망했습니다. 보여주기식 작전을 하다가 부하를 잃었는데 잘못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윗사람들을 보며 끈끈한 전우애란 다 말 뿐인 거란 걸 알았습니다.

언론에서 연일 박정훈 수사단장님이 겪고 있는 일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걸 봤습니다. 사단장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OO이와 저희가 겪은 일을 책임져야 할 윗사람들은 책임지지 않고, 현장에서 해병들이 물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던 사람들만 처벌받게 되는 과정도 보고 있습니다. 전역을 앞두고 지긋지긋한 시간을 보내며 많이 고민했습니다. 사고의 당사자로서 사고의 전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입니다.

이제 저와 제 전우들이 겪을 필요 없었던 피해와 세상을 떠난 OO이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에 대해 정당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공수처에 고소합니다. 저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정당한 지시를 받고 작전을 하다가 사망하거나 다친 것이 아닙니다. 사단장과 같은 사람들이 자기 업적을 쌓기 위해 불필요하고 무리한 지시를 했기 때문입니다. 윗사람들은 늘 그런 유혹에 빠집니다. 책임을 묻지 않으면 같은 피해가 반복될 것입니다.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곧 OO이를 만나러 현충원을 찾아 가볼 생각입니다. OO이 앞에서 우리나라가 당당한 나라일 수 있기를, 해병대가 떳떳할 수 있는 조직이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런 사람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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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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