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의 분쟁에서 100명 이상의 민간인을 인질로 납치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이 이어질 경우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양쪽 사망자는 미국인 최소 11명을 포함해 160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에 대한 "몇 세대에 걸쳐 영향을 미칠" 강한 보복을 예고했다. 이번 분쟁이 역내로 번질지 촉각이 곤두선 가운데 미국은 이란 및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에 개입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로이터>, <AP> 통신 등에 따르면 아부 우바이다 하마스 대변인은 9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사전 경고 없이 가자지구의 민간인 지역을 폭격하면 이스라엘 인질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는 "지금부터 사전 경고 없이 우리 국민을 표적으로 삼는다면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붙잡고 있는 인질 중 한 명을 처형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마스는 지난 7일 가자지구 인근 이스라엘 남부를 공격해 수백 명의 민간인을 살해하고 가정집 등에 침입해 100명 이상을 가자지구로 납치했다. 이번 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 사망자 수는 900명을 넘긴 상황이다.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하마스에 인질을 해치지 않기를 요구한다"며 "전쟁 범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뒤 이스라엘은 전례 없이 강력한 보복 공습을 감행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서 687명, 요르단강 서안에서 17명 등 9일 밤까지 704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부상자도 4000명을 넘어섰다. 사망자 중 143명이 어린이, 105명은 여성이다. 10일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침입한 남부를 완전히 수복했고 1500명 가량의 하마스 전투원 주검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9일 방송 연설에서 "우리는 하마스 공격을 이제 막 시작했다"며 "향후 며칠 간 우리가 적들에게 행할 일은 여러 세대에 걸쳐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이터>는 9일 카타르가 미국과 협력해 하마스가 억류한 여성·어린이 인질 일부 해방과 이스라엘에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 여성·어린이 36명 석방을 둔 협상을 중재 중이라고 해당 협상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이 협상을 통해 인질 몇 명이 풀려날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올해 1월까지 이스라엘 안보 보좌관으로 일한 에얄 훌라타는 <뉴욕타임스>(NYT)에 이스라엘이 역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인질과 수감자 교환을 고려할 가능성이 적다고 봤다.
하마스가 인질을 통해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을 꾀할 뿐 아니라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 및 지상군 투입을 완화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이미 1000명 가까운 희생자를 낸 이스라엘의 분노가 극에 달한 가운데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훌라타는 <뉴욕타임스>에 가자지구에 100명이 넘는 인질이 존재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공격으로 인질 중 일부가 의도치 않게 사망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은 "그들을 인간 방패로 삼은" 하마스의 책임일 것이라고 비난했다. 인질 희생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보복 공격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미 매체 <악시오스>는 네타냐후 총리가 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고 해당 통화에 정통한 3명의 이스라엘 및 미국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매체는 네타냐후 총리가 통화에서 "우리는 (가자지구로) 진입해야 한다. 지금은 협상이 불가능하다"며 "길고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백악관과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다.
9일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내 하마스 공격으로 최소 11명의 미국인이 사망했고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중 미국인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뗄 수 없는 파트너"이며 "이스라엘이 자국과 국민을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갖출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동 전쟁 확전 우려에…미 "이란·헤즈볼라 개입 말라" 으름장
이번 전쟁에 이란,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가담해 중동 전쟁으로 번질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은 전력을 전진 배치하며 분쟁 확대를 경계하고 나섰다. 미국은 전날 이스라엘 지원을 위해 최신 핵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를 포함한 항모전단을 동지중해로 이동 배치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9일 방공 장비, 군수품 및 기타 안보 지원 물품 지원을 이미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이러한 태세 강화가 분쟁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는 "이란, 레바논 헤즈볼라, 이 지역 다른 대리인들에 대한 억지 신호"라며 분쟁에 가담하고자 한다면 "두 번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이터>, 미 PBS 방송을 종합하면 이란이 이번 하마스 공격을 도왔다는 보도가 나오는 데 대해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9일 이란이 이번 공격에 가담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서도 이란이 수 년 간 하마스에 무기 및 훈련 등을 제공한 것을 들어 "어느 정도 공모가 있었다는 점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주유엔 이란 대표부는 전날 "팔레스타인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이번 하마스 공격에 이란이 관여한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커비 조정관은 미국이 이번 분쟁에 지상군을 투입할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 세력 헤즈볼라는 이미 8일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분쟁 지역인 골란고원 내 이스라엘 점령지를 향해 박격포 등을 발사했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은 헤즈볼라의 참전은 레바논 뿐 아니라 이란까지 이스라엘의 공격 대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을 키우기 때문에 현 단계에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짚었다. 이얄 지세르 텔아비브대 교수는 매체에 "미국이 개입할 경우 광범위한 지역 전쟁에서 이란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가자지구 물·식량 공급 끊고 "완전 봉쇄"…민간인 고통 가중
<로이터>에 따르면 많은 하마스 지도자들조차 알지 못했던 지난 7일 기습 공격 뒤 이어진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분쟁 시작 뒤 가자지구에서 18만7518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가 가자지구 학교에 13만7427명을 보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9일 "우리는 인간 동물과 싸우고 있다"며 가자지구로 향하는 전기, 식량, 가스 등 모든 공급을 끊고 "완전 봉쇄"를 선언했다.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은 미국 등 서방 정상들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및 민간 시설 폭격에 대해 대응 자제를 촉구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9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정상은 공동성명을 내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하고 단합된 지지를 표명하고 하마스와 하마스의 끔찍한 테러 행위에 대한 분명한 규탄"을 표명했다. 이어 "우리는 이러한 잔혹 행위로부터 자국과 국민을 방어하려는 이스라엘의 노력을 지지할 것"이며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어떤 세력도 이번 공격을 악용해 이득을 취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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